현대證 직원들 "KB식 의사결정 답답하네"…통합 잘될까
입력 2016.08.29 11:30|수정 2016.08.29 11:30
    본부장급 전결 체제서 은행식 체제로 전환 "느려서 멀미날 정도"
    PF 등 더 이상 추진 쉽지 않고 청사진도 '아직'
    핵심 의사결정은 '은행맨'들이…"현대證 적응 쉽지 않을 것"
    • 현대증권이 새 주인이 된 KB금융그룹과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멀미'를 호소하고 있다. 기업 문화나 의사결정 속도가 너무 달라 적응 기간이 생각보다 오래 필요할 것 같다는 것. 은행 출신 경영자들이 현대증권을 관리하는 가운데 화학적 융합이 수월하게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지난 5월 현대증권을 인수한 KB금융그룹은 곧바로 명함에서 현대증권 로고를 지웠다. 현재 현대증권 임직원들의 명함엔 'KB증권 (現 현대증권)'이라는 이름이 새겨져있다. KB지주는 이달 초엔 현대증권의 완전자회사 편입을 선언했으며, 오는 11월초까지 관련 절차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표면적인 통합은 속도를 내고 있지만, 현대증권 내부 사기는 이전보다 떨어져있다. KB지주가 현대증권 내부 '관리'에 들어가며 은행 특유의 의사결정 속도에 대해 답답하게 느끼는 직원들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취임한 윤경은 현대증권 사장은 각 본부장의 전결권을 강화했다. 특히 기업금융 부문의 자율성이 커졌다. 본부장급에서 '수익성이 높고, 리스크는 감내할 만 하다'고 판단하면 대부분 속도감있게 사업이 진행됐다.

      이런 의사결정 속도에 힘입어 2012년 불과 3억원에 불과했던 현대증권 IB부문 영업이익은 지난해 1245억원으로 불어났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대한 지급보증과 매입약정이 핵심 수익원으로 부상했다.

      현대증권은 인수 후 은행의 리스크관리팀으로부터 사업에 대한 검토를 받고 있다. 이전 같으면 2~3일 안에 실행 여부가 결정됐던 사업이 검토에 2~3주씩 걸리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특히 부동산PF의 경우 KB금융에서 탐탁치 않아해 더이상 주력 사업으로 삼기 힘들 것이라는 말이 현대증권 내부에서 정설화되고 있다.

      대형증권사의 한 임원급 관계자는 "현대증권 내부 임원들이 KB금융의 의사결정 속도가 상상이상으로 느리다며 투덜거리는 모습을 최근 여러번 봤다"며 "수십년간 독립계 증권사로 생존해온 현대증권이 은행의 문화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속도의 차이'는 이 뿐만이 아니다. KB지주는 현대증권 인수가 확정된 후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를 고용했다. 맥킨지는 은행-KB증권-현대증권이 참여하는 통합 태스크포스(TF)에 합류해 향후 증권사의 청사진을 짜는 컨설팅 업무를 수행했다.

      3개월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비전은 명확하지 않다. 현대증권 한 관계자는 "산탄데르은행 등 여러 해외 사례를 검토하고 이를 어떻게 적용할지 한동안 회의가 진행됐는데 지금 막상 나온 결과물은 많지 않다"며 "은행 쪽의 의사결정 속도가 너무 느려 답답하다"고 말했다.

      현대증권과 KB증권 통합 후 업계 5위권의 초대형 IB를 이끌 수장이 누구일지 역시 안갯 속에 싸여있다. 초여름을 전후해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일부 인사를 염두에 두고 인터뷰를 진행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러는 사이 현대증권의 영업력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주식연계증권(ELS)은 보수적인 평가기준이 적용되며 늘리기 어려워졌고, 수수료 기반 비즈니스는 의사결정 속도가 느려지며 적극적으로 드라이브를 걸기 힘든 상황이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대형증권사 경영 경험이 없는 KB지주가 무난히 현대증권과의 통합을 이뤄낼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장 통합추진단 단장인 이동철 전무부터 증권업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낮다는 지적이다. 은행 지점장 출신인 이 전무는 KB생명과 KB지주에서 주로 경력을 쌓았다. 지주 콘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는 김옥찬 사장 역시 은행 출신으로 비은행 부문은 신용평가사(피치아시아)와 보험사(SGI서울보증) 경험이 전부다.

      현대증권의 한 임원은 "윤종규 회장이 와서 인수배경(증권이 할수 있는 건 은행도 할수 있다. 증권이라고 특별한 것은 없다. 그런데도 증권을 산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벌어보라고 산거다)을 설명했지만 직원들의 대다수가 별 자극을 느끼지 못했다"며 "KB지주 인수이후 오죽했으면 취임초 반발을 샀던 윤경은 사장이 내부 직원들간에 (긍정적으로)재평가되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