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면죄부 받았다'…高자세 일관한 산업은행의 품격
입력 2016.09.27 07:00|수정 2016.09.28 12:06
    [Invest Column]
    • 19일 한진해운사태 관련 긴급대책 회의. 한진해운의 기업회생절차를 담당하고 있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 부산항만공사 그리고 산업은행 담당자들이 모였다.

      긴급한 요청이었다. 추석연휴를 마친 월요일 오전, 서울지법 파산부는 같은 날 오후 5시 긴급회의를 열기로 결정하고 관계부처 소집을 요청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설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자리였다. 오전에 요청 받은 항만공사 관계자는 부산에서 상경했다.

      한진해운 컨테이너선 절반이상은 각 국가의 주요항구에서 입·출항이 거부됐다. 하역을 하지 못해 공해상에 떠다니고 있었다. 한진해운이 하루에 지급하는 용선료는 약 20억원. 회생절차 돌입 이후 400억원이 넘었다. 회생절차 개시 이후 발생한 채권은 모두 공익채권으로 분류돼 모두 갚아줘야 하는 탓에 빚은 꼬박꼬박 쌓였다.

      하역작업에 차질이 생긴지 약 3주가 지나면 화주들의 손해배상청구가 시작된다. 이미 화주들의 손해배상이 청구되고 있었고 3주차에 접어드는 지난 19일부터는 놓쳐서는 안될 마지막 '골든타임'이었다.

      선박에 갇힌 선원들은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었다. 식량과 식수가 고갈되는 상황에서 말 그대로 선원들의 '생존여부'가 달려있었다. 서울지법 관계자가 부산에 내려가 선원노조를 만나 처음 들을 말 또한 "선원들의 생존권을 보장해 달라"는 요구였다.

      대한항공의 600억원 지원은 번번히 이사회에 막혀 불투명했다. 조양호·최은영 회장의 500억원 사재출연으론 2000억원이상 필요한 물류대란을 막기엔 부족했다.

      속내는 달랐겠지만 법원은 서두에 "자금지원과 관련한 내용을 일체 꺼내지 않겠다"고 했다. 이달 초 긴급자금 지원을 요청한 법원의 제안을 산업은행이 이튿날 단칼에 거절한 탓이다.

      법원의 당시 자금지원요청은 이례적이었다. 전례가 없었다. 회사를 살리겠다는 목적보다 당장의 물류대란을 해소하겠다는 목적이 컸다. 제네럴모터스(GM), 일본의 JAL(일본항공) 구조조정 사례서도 거액의 공적 자금이 투입돼 정상화에 성공했다고 강조했다. 법원 내부적으로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차례 자금지원을 거부한 산업은행은 19일 긴급회의에선 더 힘을 얻었다. 대통령이 한진해운을 겨냥해 고강도 비판을 내놓은 지 일주일 만이었다. 정부의 책임론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대통령은 13일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식의 운영방식은 묵인하지 않겠다"고 했다. STX조선해양에 DIP자금지원을 결정하고 협조의사를 밝혔을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정부로부터 '면죄부'를 받은 산업은행은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한 것은 한진해운의 탓이며 망할 걸 알면서도 한진해운에 짐을 맡긴 화주들의 탓도 있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차관급 인사가 참석한 자리에서도 산업은행 구조조정 실장은 고(高)자세로 일관했다. 현재의 사태 설명에 "그럼 망하는 거네"라는 식의 답변도 했다고 한다.

      한진해운 사건과 관계 깊은 한 관계자는 "화주나 한진해운에서 노력에 의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상황에서 독려차원에서 이 같이 이야기하면 모르겠지만, 누구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자리에서 국책은행이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당연히 자금지원은 물 건너 가는 듯 했다. 여론에서 조기 청산가능성이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21일 저녁, 대한항공 이사회는 한진해운이 받게 될 매출채권을 담보로 60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바로 다음 날 산업은행은 500억원의 재원을 마련 한진해운에 지원하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그마저도 한도대여 제공 방식으로 한진해운 시재금, 오너일가 사재출연분, 대한항공 지원금을 모두 투입하고 부족자금이 발생해 '불가피'하게 필요할 경우 투입하겠다고 했다.

      산업은행은 보도자료를 통해 "선적화물 운송차질로 인해 초래되는 국가경제적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책금융기관의 역할 수행'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돈은 가장 나중에 쓰고, 가장 먼저 갚아라"며 3주만에 500억원 마이너스통장을 열어준 '국책은행'다운 품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