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매각, '유연한 매각가 설정'해야 성공
입력 2016.10.11 07:00|수정 2016.10.12 12:14
    FI들에게 까다로운 우리은행 과점주주 투자
    예보 지분 20% 오버행·FI 매각 시점 비슷…"분산 방안 마련해야"
    "할증 아닌 할인도 고려해야"…유연한 매각가 예정가 대응 필요
    • 우리은행 과점주주 구성을 위한 예비입찰에 국내·외 전략적·재무적투자자 18여곳이 참여하면서 정부 체면이 섰다. 최대 8%를 인수하겠다고 밝힌 한국투자증권을 비롯, 인수 후보들이 밝힌 지분 규모는 최소 82%, 최대 119%에 달했다. 매각 예정 지분 30%의 최대 4배다.

      모양새는 좋지만 인수 희망 주식수와 참여 배경 정도가 담긴 인수의향서(LOI)로는 민영화 성공 여부를 점치긴 일러 보인다. 사모투자펀드(PEF)를 비롯한 재무적투자자(FI)들은 이번 투자에 대해 '어려운 딜'이란 평가를 내놓고 있다. 기대 수익률도 낮지만 투자 회수에 있어 걸림돌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18곳 가운데 FI는 12곳으로 추산된다.

      익명을 요구한 PEF 관계자는  "사외이사 추천권, 예보와 우리은행간 체결된 경영정상화이행약정 해지, 우리은행 경영에 정부 입김 최소화 등 과점주주 참여자들에게 여러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듯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인센티브라고 볼 만한 게 없다"고 평가했다.

    • ◆사외이사 추천해야 하나

      우리은행 지분 4% 이상을 새로 낙찰받은 투자자는 사외이사(비상무이사 포함) 1명을 추천할 수 있다. 그러나 과점주주 체제가 돼 우리은행 기업가치가 오르고 주가도 목표 가격에 도달했을 때 투자회수에 유리한 쪽은 사외이사를 추천하지 않은 곳이다.

      과점주주는 사외이사 추천 여부에 따라 주식 처분 제한 기간이 다르다. 최소한 추천 이사 재임 기간에는 주식 매각이 안 된다. 추천하지 않을 경우 주식매각이 제한받는 기간은 6개월에 그친다.  또 추천한 사외이사가 사임하면, 투자 회수를 위한 대량 매도 신호로 읽힐 수도 있다. 내부자 정보 이용 논란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사외이사 사임 후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그 사이 주가가 하락한다면, 투자자는 경영 참여 기회도 잃고 투자 수익도 잃는다.

      FI들이 사외이사를 추천하지 않는다면 정부 입장이 난감해진다. 전략적투자자(SI)와 FI간의 균형이 잡힌 새로운 지배구조를 보여주겠다는 게 이번 민영화 목표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사외이사뿐만 아니라 비상무이사도 추천할 수 있도록 했다. FI를 겨냥한 인센티브다. PEF들은 비상무이사로 직접 이사회에 참여하는 편이 기업가치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 PEF 관계자는 "대학교수, 또는 전직 금융인들을 사외이사로 추천하기 보다는 PEF 운용역이 직접 이사회에 참여하는 게 우리은행 기업가치 개선을 위해 더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PEF들이 모두 비상무이사 추천 의사만을 밝히면 사외이사를 추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부 입장은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

      ◆주가 기대치는 비슷하다…예보 지분 20% 오버행 또 오버행

      우리은행 주가에 대한 기대치가 과점주주별로 크게 다를지도 않을 상황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FI라면 대부분 주가 전망이 비슷하다"며 "매각을 원하는 시점도 비슷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내가 팔고 싶어하는 시점에 남도 팔고 싶어한다'는 얘기다.

      '남'에는 1대 주주인 예금보험공사도 있다. 정부 발표안을 보면 과점 주주 매각 후 예보 보유 지분에 대해선 매각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주주간 매각 시점을 조율할 수도 있겠지만 각자의 이해관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조율 역시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주가가 오르면 블록딜 매각이 나오고, 다시 주가가 오르면 블록딜 매각이 예상되면 우리은행 주가는 오랫동안 오버행(OverHang) 국면을 벗어나기 어렵다. 우리은행 하루 거래량은 150만~300만주 정도다. 우리은행 지분 4%는 2704만주다.

      FI 입장에서 보면 과점주주로 참여하되 다른 과점주주들보다 가장 먼저 주식을 받아 사외이사(비상무이사 포함) 등을 추천하지 않고 주가가 오르면 매각하는 게 수익률을 높이는 데 훨씬 더 유리하다.

      다른 측면에선 연기금ㆍ공제회 등의 자금으로 프로젝트펀드를 조성, 우리은행 과점주주가 되는 방안은 블라인드펀드를 활용하는 PEF에 비해 수익성 측면에서 불리하단 얘기이기도 하다. 프로젝트펀드를 결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 때문에 우리은행 주식을 뒤늦게 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매각 제한 기간이 길어진다.

    • ◆해법 '유연한 매각가'…전략적투자자 비중 높여야

      정부는 과점주주 결정에 정성적 부분을 고려하겠다고 했지만 더 앞선 원칙은 '주당 인수가격'이라는 입장이다. 시장 전문가들도 이번 매각 배경상 주당 인수가격이 중요하지만 본입찰에도 FI부터 SI까지 고른 참여를 이끌어 내려면 '유연한 매각가' 설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인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26일 발표한 기업분석 보고서에서 "매각방안 발표 이후 주가는 10.7%(종가 기준 8월23일 1만250원→9월23일 1만1350원)증가했다"며 "투자자의 매입부담이 증가한 상황에서 매각 예정가격을 높게 제시하면 지분매각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이번 매각이 사실상 지분 30%를 소수의 투자자들에게 블록(Block)으로 파는 거래인 만큼 시가대비 할증이 아닌 할인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FI와 SI들이 투자 기간을 길게 가져갈 수 있는 의무와 유인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예보에겐 지분 매각 기회를 보장하고, 과점주주 형태 이사회 구성 기간도 1년 정도가 아닌 3년까지 길게 구성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예비입찰에 참여한 한 PEF 관계자는 "과점주주 중 SI 비중이 높아야 오버행 이슈가 다소 완화될 수 있고, 그 다음으론 주당 매각 예정가를 시가 위아래로 넓게 구성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통해 평균 매각가에 대한 판단, 과점주주들에 대한 정성적인 판단이 결합돼야 이번 우리은행 민영화가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11월 중순 경에 본입찰을 실시하고 낙찰자를 선정해 연내 우리은행 민영화를 완결지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