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노트7 사태로 힘 받은 엘리엇 제안…주주들 '솔깃'
입력 2016.10.20 07:00|수정 2016.10.21 15:43
    "배당 확대하라" 제안 매력 커져
    전자 내 의사결정구조 비판 제기
    이사회 다원화 주장 동의 가능성
    주주들 의견 모아 2차 압박할 듯
    • 갤럭시노트7 쇼크가 삼성전자와 주주들간 관계에도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가 그 중심에 서있다. 삼성전자의 경영 구조에 의문을 갖게 된 주주들이 엘리엇의 주주 제안에 동조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엘리엇이 지난 3일 삼성전자에 보낸 주주제안 서신의 핵심은 '주주 가치 제고'다. 쌓인 현금 중 30조원을 특별배당하고, 잉여현금흐름의 75%를 주주에게 환원하며, 사외이사 확충 등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재평가를 받으라는 것이다. 현재 삼성전자 지분율 0.62%에 불과한 엘리엇이 이런  제안을 현실화하려면 다른 주주들의 동조가 필수적이다.

      갤럭시노트 7 쇼크는 이런 엘리엇에 다른 주주들이 동조할만한 대의명분을 만들어줬다는 지적이다.

      이번 쇼크로 한때 170만원을 돌파해 200만원을 향해 가던 삼성전자 주가는 단 이틀만에 10% 넘게 급락했다. 7조8000억원의 어닝서프라이즈를 예고했던 3분기 예상 영업이익은 5조2000억원으로 3조원 가까이 증발했다.

      당장 주가 하락으로 피해를 본데다, 성장성과 수익성이 모두 줄어든 상황에서 주주들은 배당을 확대하라는 제안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실제 대규모 특별 배당이 이뤄진다면 주가 하락으로 인한 손실을 배당으로 만회할 수도 있다.

      30조원을 배당한다해도 엘리엇에 돌아가는 배당액은 1800억여원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엘리엇의 제안을 두고 애초에 아군을 포섭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 쇼크가 삼성전자 경영 구조의 근본적인 결함에서 발생했다고 평가하는 시각마저도 엘리엇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빌 조지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최근 한 미국 경제전문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삼성전자의 이사회는 모두 한국인만으로 구성돼 한 방향으로만 생각한다"며 "(이번 같은 사고를 방지하려면) 의사결정구조를 다원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삼성전자 이사회가 한국인·남성만으로 구성돼 주주 구성원을 대표할 수 없다던 엘리엇의 평가와 같은 맥락의 주장이다. 이런 지적은 앞으로도 반복적으로 제기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엘리엇은 삼성전자에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최소 3인의 사외이사를 추가로 선임하자고 제안했다. 갤노트7 쇼크로 삼성전자의 이사회 구성과 의사결정 구조에 의문을 가지게 된 주주라면 엘리엇과 입장을 함께 할 동기가 충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미 엘리엇은 주주 제안 후 이에 찬성하는 다른 주주들의 의견을 취합해 한 번 더 압박하는 전술을 선보인 바 있다. 삼성전자에 주주 제안을 하기 5개월 전인 지난 5월, 미국기업 CDK글로벌에 행한 공격이 대표적이다.

      이때 엘리엇은 CDK글로벌에 사업구조 변경·배당 확대 요구 등 삼성전자와 거의 비슷한 제안을 내놨다. 그리고 한 달 후, 다시 한 번 서신을 보내 다른 많은 주주들도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며 실행을 압박했다. 이런 사례를 고려하면 삼성전자에도 조만간 다른 주주들의 동조 의견이 담긴 추가 서신이 전달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엘리엇은 내년 3월 정기주총 시점 기준, 회계장부열람권·주주제안권 등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조하는 주주들이 늘어나 지분율이 1.5%를 넘어서면 임시주총 청구권도 확보할 수 있다.

      엘리엇은 확대된 발언력을 바탕으로 주주총회에서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예컨데 금전과 주식 외에 '현물'도 배당할 수 있게 하고, 이사회의 결의외에 '주주총회의 결의'로도 배당을 할 수 있게 바꾸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삼성물산에 제안한 내용이기도 하다.

      사외이사 선임 시도도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단, 사외이사는 사외이사후보 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한 자만 선임할 수 있다. 내년 정기주총 6개월 전 서한을 보낸 건 그 사이 관련 교섭을 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미국 등 다양한 국적으로 구성된 여성 이사 추천이 전망된다.

      엘리엇은 지난 3월 삼성물산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취하한 후 곧바로 4월 블레이크캐피탈과 포터캐피탈을 세워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패배'의 기억이 남아있는데다, 차근차근 준비해온 만큼 앞으로 오랜 기간 삼성전자에 날을 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의 대응 방안은 아직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주주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11조원 규모로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기로 했지만, 갤럭시노트7 쇼크로 빛이 바랬다는 평가다.

      삼성전자에 대한 삼성그룹의 지분율은 18%에 불과하다. 외국인 지분율은 50%가 넘는다. 내년 주총이 표 대결 양상으로 흐른다면 지난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때처럼 8.7%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해묵은 국부유출-애국주의 논란이 다시 번지며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이 추락할 수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엘리엇의 제안에 비현실적인 부분은 있더라도 주가 부양과 주주 가치 제고 측면에선 나쁘지 않다"며 "삼성전자가 엘리엇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주주들이 납득할만한 논리나 다른 주주 환원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