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 열풍에 기업 '몸값'만 올라...후속투자 되레 휘청
입력 2017.01.24 07:00|수정 2017.01.25 10:23
    벤처투자자ㆍ기업들 모두 울상...VC, "손실 우려로 투자 망설여져"
    "눈높이 조정·회수 사례 늘어야 벤처 투자 활발해질 것"
    • 지난해 새롭게 결성된 벤처펀드의 규모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시장에 쌓인 벤처 투자금 역시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투자 받는 벤처기업은 물론, 벤처캐피탈(VC) 업체 등 기관투자자들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투자대상 기업들에 대한 가격 '버블'로 인해 후속투자가 어렵고 투자금 회수 또한 원활하지 않아서다.

      23일 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2016년 한해 동안 1191개사에 총 2조1503억원이 신규 투자돼 전년도에 이어 증가세를 이어갔다. 모태펀드를 운용하는 한국벤처투자 관계자는 "작년 한해 동안 새롭게 결성된 벤처펀드가 늘면서 시장에 벤처자금이 쌓였고 이에 따라 신규 투자도 함께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투자금만 벤처투자 시장에 많이 풀렸을 뿐 실제 투자 집행이 많이 이뤄진 상황은 아니다. 과다 유동성으로 인해 기업들의 몸값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작 기업들은 기업들대로 후속 투자를 받지 못해 기업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 지난해 12월까지 초기단계(창업 이후 3년 이내) 기업 투자 비중은 36.8%로 2015년에 비해 5.7%포인트 증가했다. 반면 중기(3년 초과 7년 이내)·후기(7년 초과)단계 기업 투자 비중은 줄었다. 2013년엔 후기단계 기업 투자 비중이 49.8%에 이르렀지만 지난해엔 34.5%를 기록하며 지속적인 감소세를 이어갔다.

    • 한 VC업체 운용역은 "초기단계 투자가 증가했다는 것은 그만큼 후기단계 투자가 줄었다는 의미"라며 "벤처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투자금을 유치해야 하는데 몸값이 지나치게 높아지면서 선뜻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때 적절한 투자금을 유치하지 못해 고사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모바일 콘텐트 플랫폼 업체인 P사는 2014년 1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1000억원 규모의 투자금을 조달했으나 수익성 확보가 늦어지면서 후속투자 유치에 실패하며 직원을 감축했다. 바이오 업체 S사 역시 최근 100억원 규모 후속 투자 유치에 나섰으나 투자금을 받지 못했다. 초기 투자 유치 당시 책정한 500억원 규모의 기업가치가 너무 높아 기관투자자들이 투자를 망설였기 때문이다.

      다른 VC업체 운용역은 "초기 투자 유치 이후 단순히 추가 투자라는 이유로 매출이 가시화 하지 않았음에도 기업가치를 높게 책정하는 업체들이 적지 않다"며 "특히 바이오 업체의 경우 초기에 높은 몸값을 인정 받아 자금을 조달했다는 점 때문에 임상결과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기업가치를 100억원, 200억원씩 높여 부르는 일을 쉽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VC업체 운용역은 "추가 투자 유치를 위해 기업이 스스로 몸값을 낮추는 방법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디밸류에이션을 하면 초기 투자했던 투자자들이 비싼 값에 샀던 지분을 저렴하게 되팔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므로 불가능한 것과 다름 없다"고 설명했다.

      투자금을 원하는 기업 뿐 아니라 VC 등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궁극적으론 벤처 투자가 또다시 위축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마저 나온다.

      또다른 VC업체 운용역은 "몸값이 지나치게 높게 형성돼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시장에 자금만 쌓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적정가치보다 더 많은 자금을 투자하는 일도 비일비재 해지면서 손실 가능성까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바이오 업체의 경우 기술특례상장 등 회수 창구가 마련돼 있지만 다른 업종의 경우 장외매각이나 상환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바이오 외 업종들에서 실적 성장이 이뤄지고 의미 있는 회수 사례가 많이 나와야 시장에 벤처투자금이 많이 쌓인 보람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국내 VC들의 투자금 회수방안은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M&A)보다는 장외매각 및 상환(55%)에 치중돼 있다. IPO에 선뜻 나설 수 있는 기업이 아니라면 장외시장에서 지분매각도 어렵기 때문에 회수가 쉽지 않은 셈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중소·벤처기업의 주식(구주)을 사고 파는 세컨더리펀드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등 회수방안 마련에 힘쓰고 있지만 시작단계 이므로 세컨더리펀드를 활용한 회수가 활발히 이뤄지기까진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모태펀드 관계자는 "벤처펀드에 시장 자금이 많이 모인 것은 긍정적이나 투자자와 기업 간 눈높이 조정은 물론 충분한 회수 창구 마련, (투자 받은)기업들의 실적 성장 등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벤처 투자가 오히려 위축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