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업 발주 봇물에 컨설팅사 나홀로 호황…'AGAIN 1998?'
입력 2017.02.16 07:00|수정 2017.02.17 10:16
    '조용한 호황'누리는 글로벌 '빅 3' 컨설팅사
    불확실성 직면한 대기업·정부 문 두드려…10년 전 패닉 '재현?'
    '유효성 없는 전략'·'고객 맞춤형 보고서'라는 내·외부 비판은 과제
    • 맥킨지(McKinsey & Company)ㆍBCG(Boston Consulting Group)ㆍ베인(Bain & Company) 컨설팅사 ‘빅3’가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국정 혼란과 경제 불확실성의 확대가 이어지면서 정부ㆍ금융회사ㆍ대기업등이 수시로 컨설팅사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다시 맥킨지·BCG·베인 '빅 3' 찾는 정부·대기업…전략 평가는 ‘글쎄’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컨설팅사가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았다. 당시 맥킨지가 발표한 '한국재창조 보고서'를 기점으로 대기업과 정부가 유력 컨설팅사를 앞다퉈 찾았던 현상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대기업뿐 아니라 산업 구조조정 큰 틀을 짜야 할 정부도 컨설팅사의 목소리를 빌리고 있다.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요 산업의 '구조조정 및 경쟁력 강화방안' 발표에 앞서, 각 글로벌 컨설팅사에 관련 보고서 작성을 맡긴 사례가 대표적이다. 조선업은 맥킨지, 철강업은 BCG, 화학은 베인이 맡았다.

      하지만 각 컨설팅사가 내놓은 전략의 '유효성'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특히 외부에 공개된 정부발(發) 구조조정안은 전략 컨설팅사의 '한계'를 보여준 사례로 회자된다. 보고서 공개 이후 해당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선 “드러난 사실들에 대한 짜깁기성 방안과 '알아서 하라'는 방침밖에 없는안”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지배적이다.

      조선업 구조조정 컨설팅을 맡은 맥킨지는 ‘말바꾸기’가 논란이 됐다. 4년전 대우조선해양에 "해양플랜트부문 사업 비중을 높여라"고 조언했던 맥킨지는 지난해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의 의뢰로 진행한 컨설팅에서는 "해양플랜트 부문은 잔여 수주계약을 이행한 뒤 철수하라"고 조언했다.

      철강업 컨설팅을 맡은 BCG는 '후판 공급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후판 공장 3곳을 폐쇄해야 한다'는 요지의 컨설팅안을 제출했다. 철강사 관계자들은 “공급과잉이니까 공장을 폐쇄하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컨설팅 업체는 개별 업체 간·중국 등 역내 국가 간 이해관계가 복잡한 상황에서 공급과잉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혜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성토했다.

      화학업을 맡은 베인의 컨설팅도 외부의 신랄한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당시 경쟁력 강화 방안에는 ▲테레프탈산(TPA) ▲폴리스티렌(PS) ▲합성고무(BR) ▲폴리염화비닐(PVC)을 공급과잉 품목으로 지정해, 추가 증설 대신 고부가 제품으로의 전환을 유도한다는 방안이 포함돼있다.

      화학 업계 전문가는 “화학업계를 조금만 아는 사람이 보면 ‘대기업 석유화학사 어느 곳에도 타격이 없고, 정부는 생색낼 수 있는 네 가지 소재를 절묘하게 선정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미 두 가지 소재(TPA·PS)는 모 화학사가 고부가제품 전환 투자를 하고 있어 '정부 정책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고, 나머지 두 가지(BR·PVC) 제품이 공급 과잉이라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컨설팅사들이 산업적 통찰력은 없고 의뢰인이 가장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준다는 선입견만 강해졌다”고 덧붙였다.

      컨설팅사도 이런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 당시 구조조정안에 참여한 컨설팅사 파트너는 “사실 컨설팅사의 역할은 '포스코·LG화학·대우조선해양'등 각각 개별 기업의 전략을 짜는 곳이지, 전체 산업 구조조정안을 짜는 건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산업 내 기업들과의 네트워킹을 쌓는 차원에서 나서긴 했지만, 시작부터 한계는 있었다”고 항변했다.

      ◆결국 필요한 건 '이름값'?....자조감에 떠나는 임직원은 '내부 고민'

      이처럼 '입맛에 맞고, 외부에서 승인받은 보고서'를 얻기 위해 컨설팅사를 고용한다는 지적은 대기업·금융사 등 민간 영역에서도 여전하다. 여전히 정부 혹은 오너, 아니면 CEO·CFO 등 C-레벨급 주요 경영진의 판단을 '정당화'하는데 이름을 빌린다는 평가가 나온다.

      '맥킨지·BCG·베인'라는 여전히 시장에서 '통하는' 회사들만 자주 고용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는 것. 오히려 과거 대형 3사를 위협하던 B&MC, ADL, AT커니, L.E.K 등 중·소형 컨설팅사들은 한국 시장을 떠나거나 입지가 크게 줄었다. 최근 경기 침체로 기업들이 비용을 통제하면서, 대기업 부장급 실무진단에서도 활발히 일어났던 전략 제공 목적의 발주가 크게 줄은 영향으로 해석되고 있다.

      대형 컨설팅사 관계자는 "대기업들은 새로 전략을 짜달라고 요청하는 게 아니라, 주로 자신들이 내린 내부 결정과 판단이 맞는지 외부에서 검증하는 용도로 컨설팅사를 찾는다"고 설명했다.

      내외부적으로 시계(視界)가 줄어든 금융회사들도 유력 컨설팅사의 이름을 자주 빌린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지난해 BCG에 중·장기 해외진출 로드맵을 맡겼다. 컨설팅사의 보고서를 빌어 동남아시아 등 해외 진출을 위한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당시 시장에선 윤 회장이 이미 해외시장 진출을 저금리·저성장 장기화에 수익성이 악화된 은행권의 숙원 사업 중 하나로 점찍어 뒀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신한금융투자도 BCG에 경쟁력 강화 방안을 의뢰, 유상증자가 필요하다는 결과를 받아내기도 했다.

      거버넌스 이슈와 분쟁에 휘말린 그룹들 역시 컨설팅사에 의존한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은 작년 검찰 조사 이후 시장에 약속한 '구조개편안'을 맥킨지에 의뢰했고, 맥킨지는 작년말 롯데그룹 정책본부를 축소하고 그룹을 4개의 큰 부문으로 나누는 내용의 개편안을 전달했다. 일각에선 "그룹이 그린 그림을 맥킨지가 요약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대기업 관계자는 "컨설팅사들에게 새로운 전략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 내부에서 만든 전략에 숫자를 붙여서 '증빙'을 해달라는 용도로 활용해왔다"라며 “만약 성과가 좋지 않더라도 책임 공방에서 피해갈 수 있는 방어막을 만들어놓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컨설팅사 내부 직원들도 이런 분위기를 인지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파트너들이 주도하는 프로젝트가 점차 사라지다보니 스스로 갑,을이 아닌 ‘병·정’으로 부르고 있다”며 “단기간 바짝 고객 입맛에 맞는 자료를 만들고, 다른 곳으로 이직하거나 전직하는 분위기도 팽배하다”고 전했다. 이직이 잦아지다보니 "장기간 한 산업을 전담할 수 있는 전문가 양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컨설팅사의 하소연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