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 안이함?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이 남긴 아쉬움
입력 2017.03.29 07:00|수정 2017.03.30 09:30
    [Invest Column]
    •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타고난 덕장(德將)으로 손꼽힌다. 27일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도 조 회장은 특유의 온화한 미소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바닥부터 다진 현장 감각에 더해진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조 회장의 핵심 경쟁력이다.

      다만 그가 간담회에서 던진 메시지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알맹이'보단 '구호'가 앞섰다. 구체적인 실행방안에도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위기감이나 절박함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과거 신한사태에 대해 두루뭉술 원론적인 답변만 하고 넘어간 건 앞으로의 신한금융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흔들림없는 1위·글로벌·디지털로 요약되는 조 회장의 '비전'은 기시감을 느끼게 했다. 지난 7일 위성호 신한은행장이 취임하며 남겼던 일성(一聲)과 거의 비슷해서다. 좀 과장하자면 월드 클래스 '은행'이 월드 클래스 '금융그룹'으로 단어만 바뀐 정도였다.

      해외 진출 전략으로 내놓은 '글로컬리제이션'(현지 사정에 맞춘 해외 진출)도 그다지 새로운 것도 아니다. 베트남에서의 성공 사례가 있긴 하지만, 아직도 시장은 국내 금융사가 동남아시아에 진출해 실패한 사례를 더 많이 기억하고 있다. 조 회장의 비전은 이런 우려를 씻어줄만큼 구체적이진 않았다.

      KB금융그룹의 추격이나 비은행부문의 경쟁력 하락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도 부족하다는 인상을 남겼다. 증권과 생명 모두 덩치와 실적이 업계 5위권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특화영역을 찾아서 1위, 궁극적으로 시장 1위 사업자'라는 비전은 뜬구름처럼 느껴졌다.

      인수합병(M&A)이나 합작투자(JV) 같은 인오거닉(Inorganic) 성장을 이야기했지만, 이 역시 "국내보다는 해외에 기회가 많을 것 같다"며 동남아시아 진출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날 간담회의 핵심 사안 중 하나는 조 회장에게 '과거 신한사태를 매듭짓고 적폐를 청산할 의지가 있느냐'였다. 지난 9일 대법원 최종판결이 나온데다, 신상훈 전 신한금융 사장의 스톡옵션 행사가 맞물려있어 초미의 관심을 끌었다.

      조 회장이 내놓은 답변은 여기서도 미진한 구석이 많았다. 표현적으로는 원론에 가까웠다. '조직을 위한 마음', '직원들이 많이 울었다', '부정적으로도 낙관적으로도 생각할 필요 없다' 등의 말이 열거됐다. 결론은 "미래지향적인 입장에서 봐야 하지 않을까"였다. '조직의 미래를 위해 어느정도는 덮고 가겠다'는 뉘앙스로도 해석될 수 있는 말이었다.

      당장 위 행장, 김형진 신한금융투자 사장 등 예전 '라응찬 라인'의 인물들이 대거 중용되며 그룹 안팎에서는 '제2의 신한사태' 가능성까지 언급되고 있는 판국이다. 조 회장의 의지와 책임감이 담긴 발언을 기대했던 안팎의 시선은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한동우 전 회장을 고문으로 추대한 것 역시 의문이 남는 결정이다.

      신한금융이 전임 회장을 고문으로 사내에 남긴 건 전례없는 일이다. 그룹 경영전반에 대한 자문역이라지만, 시장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한 전 회장의 영향력이 유지되며 생길 수 있는 경영 간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전 회장은 지난해 5년의 사외이사 임기가 만료된 남궁훈 전 이사회의장을 기타비상무이사로 재선출하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는 사외이사 연임 제한 규정을 우회한 꼼수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 당시에도 한 전 회장이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신한금융은 회사를 리딩뱅크로 이끌어 온데다, 임기만료·정년을 맞이해 '아름다운 퇴장'을 택한 한 전 회장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고문 자리를 마련했다. 그러나 신한금융은 물론, 국내 다른 금융그룹의 역사에서 전직 회장을 고문으로 추대하는 일이 왜 없었는지 고려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간담회 이후 금융시장 이곳저곳에서는 부정적인 촌평이 나왔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한 회장 재임기간 내내 리딩뱅크라는 간판 아래 안주해온 신한금융이 체질변화를 해낼 수 있을 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조 회장의 과거에 대한 정면돌파 의지나 순혈주의 타파에 대한 고민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며 "조 회장이 국내 1위 금융그룹 수장으로서 시장에 처음으로 던지는 메시지에 대한 공부나 준비가 부족한 게 아니었나 싶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