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모집은 거뜬"…유동성 넘치는 시장ㆍ설 자리 없는 은행 인수금융
김진욱 기자 | marketwarrior@chosun.com | 2017.04.20 07:00
Edited by 현상경 부장 | hs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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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한국證, 더블유게임즈-DDI 인수금융
증권사, 초대형 IB 자본 확충 후 적극 영업
인수금융 시장 잠식 속도 더 빨라질 전망

더블유게임즈의 더블다운인터랙티브(Doubledown Interactive, DDI) 인수는 국내 M&A시장의 유동성이 꽤 풍부하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받는다. 국내 증권사와 사모펀드(PEF)가 모여 덩치가 2배나 큰 회사를 인수하는데 필요한 1조원을 뚝딱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그간 M&A 시장의 주요 참가자였던 은행 인수금융 부서들은 설 자리가 없었다.  덩치 크고 의사결정이 느린 은행들이 신(新) 산업 M&A에서 자리매김을 못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더블유게임즈가 DDI 인수에 투입하는 자금은 9425억원. 더블유게임즈와 스틱인베스트먼트 PEF가 각각 3500억원·3000억원을 출자한 특수목적법인(SPC)이 인수금융 주선사인 삼성증권을 통해 3000억원을 조달한다. 스틱인베스트먼트는 투자금의 절반인 1500억원을 한국투자증권으로부터 빌렸다.

인수 금액이 1조원에 이르러 국내 게임업계 M&A 사상 최대 규모지만, 이 거래는 '조용히' 진행됐다. 국내에서 법적 규제를 받는 사행성 게임업종 특성 상 클럽딜(club deal) 형태의 자금 조달이 주로 이뤄진다. 참여자가 많아 소문이 빠른 바닥임에도 관련 정보가 금융권에 미리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은행권에는 자금 지원 요청이 없었다. 대신 한국투자증권·삼성증권 등 전업계 증권사가 참여자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오래 전부터 인수금융 시장이 시중은행의 '텃밭'처럼 여겨지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드문 사례다.

2~3년 전부터 인수금융업에 뛰어들었던 증권사가 어느새 시중은행을 대체하고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금융당국이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 정책을 내놓으면서 인수금융 시장 참여도가 높아졌다. 자본을 확충한 뒤 자기자본 투자(PI) 가능 금액이 늘었고, 재매각(sell-down) 실패 위험을 고려할 필요가 없어 주선과 인수에 적극 나서는 상황이다.

한 증권사 인수금융 담당자는 "자본 확충 이후를 기점으로 은행에 돈을 구하러 다니지 않게 됐다"면서 "오히려 요즘에는 좋은 고객과 투자처를 찾아 영업을 확대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은행은 증권사와 달리 고객 영업에 적극적이지 않은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현상은 특히 게임과 같은 신산업 인수금융이 필요할 때마다 여실히 드러났다. 작년 하반기 40억달러(약 4조5720억원) 규모의 넷마블게임즈-플레이티카(Playtika) 인수 시도에서도 거래 구조를 짜고 인수금융을 제공하기로 했던 주요 주체는 NH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이었다. 올 초 7억달러(약 7970억원) 규모의 넷마블게임즈-카밤(Kabam) M&A에서도 인수금융 주선자 목록에는 증권사(NH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삼성증권·미래에셋대우)만 이름을 올렸다.

반면 시중은행에서는 이 같은 인수금융 요청을 받았더라도 투자 결정을 내리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은행은 유형자산을 보유한 제조업을 선호한다. 그동안 쌓은 경험치에 의해 가치 평가(valuation)를 정확하게 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반면 사용자(user) 등이 주요 자산인 인터넷·정보기술(IT)업체는 적정한 가치를 매기기가 어렵다.

은행이 증권사처럼 공격적인 인수금융 투자에 나서기 어려운 요인도 거론된다. 은행 인사 평가 체계가 대표적이다. 은행은 거래 성사에 따른 수당을 증권사처럼 많이 지급하지 않아 유인이 떨어진다는 것. 한 시중은행 인수금융 담당자는 "더블유게임즈에 투자했다고 가정하면 '은행이 사행성 게임사를 인수하는데 자금을 댄다'는 비난을 받을 우려가 있다"면서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 결정을 내릴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증권사의 인수금융 시장 잠식 속도는 더 빨라질 전망이다.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서다. 특히 중견·중소기업의 증권사행(行)은 계속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도 투자확약서(LOC) 작성이나 PI 등 인수금융 분야의 제반 업무를 전부 수행할 수 있다"면서 "오랫동안 거래해온 단골 증권사가 없거나 그룹 내 증권사를 보유하고 있지도 않은 중견·중소기업의 경우 자본시장 통로 확보를 위해서라도 인수금융 파트너로 은행 대신 증권사를 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4월 19일 09:16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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