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투자자, "맥킨지·BCG·베인 출신 회사엔 투자 안 해요"
입력 2017.05.12 07:00|수정 2017.05.15 09:56
    '양날의 검' 된 컨설팅펌 경력…벤처투자 시장서 외면
    "답을 찾는 것보단 만들어 내는 데 익숙한 탓"
    화려한 인맥에 성격 다른 투자금 섞여…까다로운 사후관리
    • #"맥킨지 출신 창업자가 제출한 사업계획서를 검토하다보면 빠르게 정리는 잘 되어있는데 핵심적인 내용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보고를 위한 보고'에 매우 익숙한 느낌이랄까..." (A벤처캐피탈 업체 운용역)

      #"같은 컨설팅펌 출신 인맥을 활용해 사모펀드나 자산운용사 등에서 받는 투자가 꽤 많다. 이런 투자자들은 자금 투입후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면 곧바로 투자금 회수에 나선다. 이런 투자자가 많은 회사에 투자하기 꺼려지는 게 VC로선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B벤처캐피탈 업체 운용역)

      맥킨지·베인·BCG 등 내로라하는 컨설턴트 출신 CEO가 스타트업 기업 설립에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자금을 대는 벤처 투자자들 사이에선 '컨설팅펌 출신' 을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아예 이런 회사에는 투자를 안하겠다는 방침까지 나오고도 있다.

      전직 컨설턴트들이 창업 일선에 나서는 것은 어제오늘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성장 궤도에 오른 위메프나 요기요 등이 맥킨지 출신 대표가 차린 회사로 시장에 자주 회자됐다. 리멤버(BCG)·피플펀드(베인)·파운트(BCG)·마켓컬리(맥킨지) 등도 컨설팅 업체 출신 대표가 만든 회사다.

      컨설팅 업체 출신 한 스타트업 대표는 "컨설팅 회사들이 IT 또는 신산업에서 수주를 많이 못받고 있었고, 시장에는 벤처투자 자금이 많이 풀렸다"며 "이를 유심히 따져본 컨설턴트들이 신사업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벤처투자자들은 이런 컨설턴트 출신 창업자들이 '고객사에 컨설팅 하듯' 회사를 운영할까봐 두려워한다.  빠른 문서 작성·넓은 네트워크·보고에 최적화된 업무성향 등을 갖추고 있을 뿐 사업 본연에 대한 관심이나 열정이 오히려 부족하지 않느냐는 의미다.

      국내 A 대형 벤처투자회사 관계자는 "사업보고서를 보고 있으면 다른 회사 컨설팅을 해준듯한 모양새"라며 "겉보기에는 화려해보이지만 정작 어떻게 수익을 낸다라든지, 어떤 희소성이 있다든지 하는 가장 중요한 알맹이가 부실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다른 대형 벤처투자회사 관계자는 "투자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창업주와 얘기하다보면 컨설턴트 출신답게 이런저런 논리를 들이밀다가 결국 밸류에이션을 무조건 높게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러다보니 투자심의위원회까지 열고도 투자의사를 접은 경우가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

      혹여 난관을 딛고 투자를 받더라도 사업 도중에 발생한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발생했을때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추진력이 부족해 사업이 망한 경우도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컨설턴트 출신 창업주들의 폭넓은 네트워크가 오히려 독(毒)이 된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인맥을 활용해 여기저기서 투자금을 모으다보니 벤처투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자금도 섞이고 이 과정에서 사후관리가 꼬여버릴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

      벤처 투자자들은 당장 실적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투자금을 회수하기보다 단기적인 부침이 있더라도 후속 투자를 진행한다. 장기적으로 회사를 관리해야 이른바 '잭팟'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 컨설턴트 출신들은 '동문'(Alumni)'들이 다수 포진해 있는 사모펀드(PEF)나 자산운용사 등에 손을 벌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런 자금은 벤처투자와는 달리  '추가투자'에 인색한 편이다. 어느 정도 성장한 기업에 투자하여 구조조정이나 사업재편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데 익숙한 자금이지 벤처투자처럼 초기 기업에 돈을 대고 기다리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중소 VC업체 관계자는 "벤처기업이 폐업하는 이유는 대부분 추가 자금 조달에 실패해 사업을 유지할 자금이 없기 때문"이라며 "회사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일단은 어느 정도 믿고 가는 것이 필요한데, 다른 성격의 투자금이 많은 회사의 경우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어디 출신은 어디가 어울린다'라는 법은 없지만 컨설턴트들은 아무래도 남의 회사에 '훈수' 두는 일에 능숙한 만큼 직접 창업하기보단 차라리 VC 등 투자단이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