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 공룡 '스튜디오드래곤', 방송계 독과점 우려
입력 2017.07.20 07:00|수정 2017.07.21 10:17
    분사 1년만에 케이블·지상파 채널 돌풍
    스타 작가 대거 영입...신입 작가 육성도
    방송 제작도 '투자'여력 있어야...대기업 제작사에 일감 몰릴수도
    • “김은숙 작가가 쓴 드라마에 전지현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드라마를 마다할 방송사가 있을까요”

      갓 돌이 지난 신생 외주 드라마 제작사가 방송 업계의 판을 뒤흔들고 있다. 지난해 5월 CJ E&M이 드라마 사업본부를 분할해 설립한 스튜디오드래곤이 그 주인공이다. 스튜디오드래곤은 편성권을 무기로 드라마 제작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쳐온 지상파 방송사로부터 '독립'이 가능한 유일한 제작사로 꼽힌다. 이는 곧 업계의 재편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스튜디오드래곤의 핵심 경쟁력은 콘텐츠 공급력과 작가진이다. 제작사들은 한 해 1~2건의 드라마 제작을 목표로 사업을 구상하지만, 스튜디오드래곤은 올해만 8편의 드라마를 선보인다. 현재 방송 중인 '비밀의 숲', '듀얼' 등의 드라마가 스튜디오드래곤의 작품이다.

      다작이 가능한 건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낼 작가진을 갖췄기 때문이다. '도깨비'를 집필한 김은숙 작가와 '별에서 온 그대'의 박지은 작가, 그리고 '대장금'의 김영현·박상연 작가가 현재 스튜디오드래곤에 소속돼있다. 스토리의 비중이 큰 드라마는 작가의 능력은 흥행을 좌우할 주요 척도 중 하나다. 평판이 좋은 작가의 작품은 지상파 편성 여부를 가르는 최대 요소기도 하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지난 1년새 적극적인 인수합병(M&A)으로 이 같은 경쟁력을 갖췄다. 분사 직후 제작사인 화앤담픽쳐스와 문화창고를 인수했고, 같은 해 역시 제작사인 KPJ를 사들였다. 문화창고 소속인 배우 전지현 씨도 스튜디오드래곤의 소속 연예인이 됐다. CJ E&M 드라마사업본부의 기존 역량에 히트작을 만들어낸 중견 제작사의 노하우와 자산이 더해졌다.

    • 이 과정에서 작가들과 '피를 나눈' 것도 눈여겨 볼 점 중 하나다. 주요 작가들에게 스튜디오드래곤의 지분을 제공한 것이다. CJ 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3사(문화창고, 화앤담픽쳐스, KPJ) 인수 당시 주요 작가와 연예인, 경영진에게 예우 차원에서 지분 스왑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스튜디오드래곤 상장시 이들 작가는 최대 2배 가까운 차익을 얻을 수 있다. 이들의 지분 가치는 각각 수억~수십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분 관계를 통해 스튜디오드래곤과 유명 작가들이 장기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것이다. 드라마 제작 업계 관계자는 "지분 관계로 얽혀있어 경쟁 제작사들이 스타 작가를 섭외하기는 어려워진 구조"라고 언급했다.

      신인 작가 육성 시스템도 갖췄다. '인재 육성 인프라'는 최근 수년새 엔터기업들의 성장 및 상장 과정에서 무형 자산으로 인정받는 경우가 많아졌다. 기존엔 직접 카메라 앞에 서는 '스타'가 자산으로 인정됐다면, 스튜디오드래곤의 경우 '작가'도 자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드라마 제작 업계의 판도가 크게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생존에 가장 적합한 구조라는 평가다. 이전엔 지상파 방송국의 입김이 쎘다면, 최근 드라마 콘텐츠에 대한 인식은 제작사와 방송사, 투자자의 '공동 투자' 대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자본력과 '성공 경험', 그리고 유명 작가를 보유한 제작사에 점점 더 일감이 몰린다. 이런 경쟁력이 없는 제작사는 도태되는 현상이 뚜렷하다.

      게다가 스튜디오드래곤은 편성의 압박에서도 자유롭다. 모회사인 CJ E&M은 16개의 방송채널을 갖추고 있다. 케이블방송이라도 작품성이 인정되는 드라마는 지상파만큼 시청률이 나오는 세상이다. 일단 일정 퀄리티 이상으로 작품을 만들기만 하면, 방송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있다. CJ라는 우산이 외주 제작사의 최대 약점인 '불안정성'을 어느정도 보완해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긍정적인 부분만 있는 건 아니다. 스튜디오드래곤의 막강한 경쟁력이 '권력'으로 바뀌며 드라마 시장을 독과점 구조로 바꿔버릴 거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자칫 지상파도 케이블에서도 '스튜디오드래곤제' 드라마만 보게 될 수 있다.

      또 유명 작가들과 제작진을 자본력으로 끌어올 경우 중소형 외주 제작사들이 설 곳은 사라진다. 콘텐츠의 질과 양에서 밀리는 중소형사의 파산도 예상된다. 경쟁 구도가 약화된 시장엔 질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는 지적이다.

      스튜디오드래곤이 지나치게 상업적인 관점에서 드라마 시장에 접근할 경우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간접 광고(PPL)의 범람과 중간 광고 등으로 인한 시청자 불만이 줄어들지 않고 있는 상황인 까닭이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올 연말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다. 국내 첫 드라마 제작사 상장사로서 시청자의 편익과 주주들의 이익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는 평가다.

      드라마 제작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1000억원 가까운 수익을 창출하는 등 드라마 제작 시장의 부가가치는 점점 커지고 있다"며 "무서운 속도로 핵심인력을 흡수하는 대기업이 향후 드라마 콘텐츠 시장의 선순환을 무너트릴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