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산업 수직계열화에 제동…'배급 vs 상영' 양자택일 직면한 CJ·롯데
입력 2017.07.20 07:00|수정 2017.07.21 10:18
    배급·상영 겸업 금지 방안 논의
    배급사업 하락세, 선호도 떨어져

    CJ, 방송콘텐츠에 집중할 수도
    롯데, 동남아 영화관 시작 확대
    "두 그룹, 상영 위주로 재편할 듯"
    • 올 여름 극장가는 다시 한번 '마블'이 장악했다. 히어로 영화 ‘스파이더맨:홈커밍’이 흥행 독주를 펼치며 누적관객수 600만명을 돌파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흥행몰이를 하는 중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내 영화업계는 불편하다.

      스파이더맨은 주말에만 무려 2000여개에 달하는 스크린에서 1만번 넘게 상영됐다. 매출액 점유율로는 80%, 상영점유율도 60%가 넘는다. 국내 영화계의 고질적인, 특정 영화가 과도하게 상영되는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다시 한번 주목 받게 됐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를 중심으로 ‘영화산업 독과점 개선 방안’ 간담회가 진행됐고 스크린 독과점 제한, 더 나아가 배급과 상영의 겸업을 금지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현 정부의 기조를 감안하면 대기업의 영화산업 수직계열화에 큰 제동이 걸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국회에 상영·배급 겸업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이 계류 중인 상황에서 문체부가 관련 간담회를 열었다”며“업계에선 이를 영화산업 수직계열화 관련 규제 마련에 속도를 내겠다는 시그널로 이해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작년 말 국회에 발의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영비법)’ 개정안의 타깃은 영화산업 공룡인 CJ그룹과 롯데그룹이다. CJ그룹은 제작자 JK필름, 투자·배급사 CJ E&M, 멀티플렉스 상영관 CJ CGV를 갖고 있다. 롯데그룹은 투자·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 극장 롯데시네마를 거느리고 있다. 영화업계와 금융시장에선 두 그룹이 배급과 상영 중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면 기업가치 측면에서 배급사업을 포기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영화제작에 참여한 창업투자회사 관계자는 “전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고,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의원 시절 영비법 개정안을 발의했던 만큼 그에 대한 성과를 내려고 할 것”이라며 “업계에선 수직계열화에 제동이 걸리면 CJ와 롯데 모두 상영관 위주로 사업을 재편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전했다.

      양사의 배급사업 선호도가 떨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 배급 경쟁에서 CJ E&M이 NEW(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에 밀리자 이미경 부회장이 진노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롯데 역시 경쟁력이 떨어지는 배급사업에 대한 미련이 없고 경영권 분쟁 불씨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정부 기조에 역행할 명분이 없다”고 전했다.

      실제 매출 기여도 면에서 배급사업의 존재감은 미미한 수준이다. 작년 말 CJ E&M 전체 매출에서 영화 배급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0%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역시 다르지 않다. 롯데그룹 전체 영화 부문 매출에서 배급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안팎인 것으로 추정된다.

      때마침 CJ그룹의 영화 사업부들이 모두 올해 상암동을 떠나고 있다. CJ CGV는 하반기에 용산에 새 둥지를 튼다. CJ E&M 영화사업부는 7월말 삼성동으로 이전하고 대신 그 자리는 방송사업부에 넘겨준다. 시기적으로 공교롭다보니 CJ그룹의 영화사업 구조 개편설이 불거졌다. 영화 관련 사업을 CJ CGV로 일원화하고, CJ E&M이 영화 제작·배급에 거리를 두는 대신 방송사업에 집중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회사는 이런 해석이 과도하다고 부인하고 있으나 CJ그룹의 최근 '영화'와 '방송' 실적을 비교해보면 개연성이 적지 않다. 방송은 계속 벌어들이는 반면, 영화는 까먹는 추세다. 지난 3년간 CJ E&M의 방송부문은 꾸준한 매출 성장세를 기록, 작년 처음으로 매출액 1조원을 넘어섰다. 영업이익도 2년 연속 400억원을 넘겼다. 반면 하락세로 접어든 영화부문은 지난해 200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남겼다.

    • 실적 여파는 각 부문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세간의 화제가 됐던 나영석 PD의 '알쓸신잡'은 시청률 7%를 넘기며 비지상파 프로그램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CJ E&M의 방송콘텐츠 장악력은 명실상부 1위 자리에 올랐다는 평가다. 반면 CJ E&M이 배급을 맡고  김수현 주연, 그룹 에프엑스 출신 설리의 출연으로 주목을 받았던 영화 '리얼'은 누적관객수 50만명도 못넘기며 흥행에 참패했다.

      사업 안정성 측면에서도 영화보다는 방송이 유리한 측면이 있다.

      영화는 5편 중 2편 미만으로 흥행에 성공하는데 제작비 규모에 비해 수익성은 낮다. 직배사의 국내 투자 본격화로 시장 참여자가 늘어나며 경쟁이 가열되는 점도 부담이다. 반면 방송은 한 프로그램당 2개월 이상 방송되며 각종 광고 수입과 판권 판매 등 다양한 수익원을 기대할 수 있다. CJ E&M이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의 상장을 추진하고, CJ헬로비전으로부터 방송콘텐츠용 플랫폼 '티빙'을 가져온 것 역시 방송사업의 영향력을 감안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이런 기류는 CJ E&M 내부에서도 쉽게 감지된다.  일단 "방송사업부는 잇따라 해외 진출도 하며 사업 확장에 여념이 없는데 영화사업부는 그동안 뭘 했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영화사업부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미경 부회장이 장기간 공석인 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방송업계의 잔뼈가 굵은 김성수 대표의 영향력이 더 커질 수 있었던 배경으로도 풀이된다.

      CJ와 롯데가 '극장체인' 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한 것도 배급보다는 상영관 사업을 선택할 여지를 키우는 이유로 꼽힌다.

      CGV는 중국에만 80개가 넘는 극장을 운영하고 있고 베트남 메가스타, 인도네시아 블리츠, 터키 마르스 등 현지 수위업체들을 잇따라 인수했다. 롯데도 국내 최초로 베트남에 진출해 주요 도시에서 29개 영화관을 운영 중이고 중국에도 40개관 이상을 갖고 있다. 상영관 사업만 놓고 보면 결국 해외 진출만이 답이라는 평가다. 국내 시장은 포화 상태에 다다랐고 수익성도 악화 추세다. 규제 이슈도 항상 있다. 특히 롯데는 확장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국내에서 CGV를 따라잡고 마트, 백화점 등 롯데쇼핑의 쇼핑몰에 입점시켜 동남아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롯데시네마 내부에선 2년 내 CGV 매출 규모를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다른 관계자는 "CJ와 롯데가 해외 현지 선두 업체 인수나 합작법인(JV) 설립 등을 두고 경쟁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어떤 식으로든 이번 정부에서는 대기업의 '영화제작·배급·상영'을 겸업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글로벌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 등 해당 기업들의 성토도 없지 않지만 재벌 개혁 요구의 목소리가 큰 상황에서 재계의 운신 폭은 크지 않아 보인다. 투자자들 역시 영화 제작·배급 보다 상영관 사업으로 선호도가 옮겨 갔다. 이 경우 남은 배급산업이 어떻게 처리되느냐도 업계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