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컴버블'에 빚진 IT 공룡들, 투자신뢰성 제고 노력해야
입력 2017.07.20 07:00|수정 2017.07.21 10:17
    [Invest Column]
    • 2000년 ‘닷컴버블’은 재앙이자 희망의 씨앗이었다. 투자자들이 쥐고 있던 주식은 하루 새 쓸모 없는 휴지가 됐다. 동시에 나중에 등장하는 국내 IT 공룡들이 자라날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 닷컴버블로 그 많은 돈들이 듣도 보도 못한 ‘IT’ 시장으로 유입됐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IT 공룡들은 멸종했을테고, 지금 우리는 구글에서 검색하고 페이스북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며 중국 기업들이 만든 게임을 즐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국내 IT 공룡들은 그 ‘버블’에 일정 부분 빚을 지고 있다. 네이버나 카카오, 엔씨소프트, 넥슨 등 창사한지 20년, 또는 20년 가까이 된 기업들은 당시에만 해도 주식 시장에 이름도 올리지 못한 상황이었다. 버블 이후 수많은 경쟁자들이 쓰러지는 상황에서 그들은 살아남았고, 투자자들의 관심을 독차지 할 수 있게 됐다. 국내 코스피시장에서 네이버의 시가총액은 27조원에 달한다. 넷마블은 12조원, 엔씨소프트는 8조원, 카카오는 6조7000억원이다. 일본에 상장돼 있는 넥슨은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시총 10조원을 돌파했다.

      IT 공룡들은 투자자 입장에선 IT 산업의 투자 여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 동시에 창업가들에겐 동기 부여가 된다. 사실상 세습이 이뤄지는 재벌가를 제외하면, 자수성가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기업인들은 그들뿐이기 때문이다. IT 공룡의 수장들은 말 그대로 ‘성공의 아이콘’이 된 셈이다. 그런데 일련의 불미스러운 일과 시장에 불신을 일으킨 사건들은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금융당국은 엔씨소프트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모바일 게임 '리니지M' 출시 전 주가가 폭락했다. 엔씨소프트 경영진이 '리니지M'과 관련한 정보를 이용해 미리 주식을 팔아 시세 차익을 노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엔씨소프트는 앞서 2012년에도 블레이드앤소울 출시 직전 김택진 대표가 회사 지분 14.7%를 넥슨에 팔아 약 8000억원을 현금화하며 논란을 불러 일으킨 전례가 있다. 주요 임원들도 주식 매도에 동참하며 투자자들의 공분을 산 바 있다.

      넷마블게임즈 경영진은 상장 이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보유 지분 일부를 매각해 투자자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 매각 시점이 공모에 참여한 상당수 기관투자가의 보유 지분 보호예수(락업) 기간이 풀리기 직전인 6월 초에 집중됐다는 점이 이슈가 됐다. 매도 물량이 시장에 출현하기 직전에 최대한의 차익을 노린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넷마블이 도의적 책임을 다하지 않은 점에 대해 상장 주관 증권사들은 기관투자자의 항의를 받아야 했다.

      김정주 넥슨(NXC) 대표는 재판이 진행 중이다. 김정주 대표는 작년 7월 진경준 전 검사장에게 넥슨 주식 8537주를 비롯해 9억원대에 달하는 뇌물을 건넨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법원은 작년 12월에 1심에서 김정주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항소심 선고는 21일에 열린다.

      자동차, 조선 등 주요 수출산업들이 불황에 빠지면서 IT 산업은 새로운 투자처로 부상했다. 국내 기관투자가를 넘어 글로벌 사모펀드(PEF)들도 국내 주요 IT 기업들에 투자를 검토하면서 기대감은 더 커지고 있다. 그런데 도덕적 해이에 버금가는 경영진들의 연이은 '실책'은 투자자들의 인식 제고에 찬물을 끼얹었다.

      판교테크노밸리는 한국판 실리콘밸리를 목표로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는 창업과 폐업, 성공과 실패가 끊임없이 이뤄지는 생동감 넘치는 공간이다. 현실의 판교는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고착화하고 있고 몇몇 IT 공룡들이 주름잡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고 있다. 업계와 금융시장에선 더 이상 제2의 네이버, 제2의 넷마블은 나오기 어렵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로 가득하다.

      IT산업의 변혁을 예고하는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버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자금들이 이 시장에 유입돼야 한다. 불신이 팽배한 것도 현실이다. IT기업에 대한 기관투자가들의 투자 검토는 여전히 보수적이고, 신용평가사들은 신용등급을 올리는 것을 어려워한다.

      업계에선 IT기업들이 자초한 결과라고 푸념한다. 성공의 스토리텔링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이 보기엔 IT 공룡들은 한국판 손정의, 마윈 대신 한국의 재벌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이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편리하고 즐거운 삶을 사는 것을 목표로 하는 IT산업의 공리주의적 측면도 생각해 봐야 한다. IT업계 생태계 구축도 그 일환이고, 스타트업 기업들에 많은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 IT공룡들은 닷컴버블로 쓰러져 간 선배들에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빚을 다시 후배들에게도 넘겨줄 의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