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신종자본증권, '희소성·해외등급' 덕봤다
입력 2017.07.24 07:00|수정 2017.07.25 09:40
    금리 3.95% 확정 발행, 아시아 보험사 중 가장 낮은 수준
    시장점유율·안정적 신용등급 높이 평가...투자처 다변화 필요
    보험사들 자금조달 이어질 것으로...수요 확보 등 넘어야할 산도
    • 교보생명보험이 해외에서 대규모 신종자본증권 발행해 성공한 배경으로 '희소성'과 '해외신용등급'이 꼽히고 있다. 회계기준 변경 이슈에도 시장점유율 등 기업의 본질가치는 변화가 없을 거라는 투자자들의 판단과 높은 신용등급, 그리고 한국계 생명보험사의 첫 신종자본증권 발행이라는 점이 흥행의 원동력이라는 분석이다.

      교보생명은 이달 말 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5억 달러(한화 약 56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다. 미국 국채 5년 만기 수익률 대비 스프레드 2.09%를 가산한 3.95%로 금리를 최종 결정했다. 최초 제시 금리보다 55bp 낮은 수준이다.

      교보생명이 이달 초 진행한 수요조사에는 예정 모집 규모의 15배 수준인 75억달러의 요청이 들어왔다. 수요를 확인한 후 가이던스를 4%로 낮췄음에도 수요예측에서 약 70억달러 규모의 물량이 모집됐다. 주관사 측은 아시아 투자자 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 투자자가 몰리며 수요가 충분하다는 점을 확인했고 회사 측에 3%대의 금리를 제안했다. 첫 해외조달인만큼 조심스러웠던 교보생명도 투자자 수요에  자신감을 얻어 금리를 3.95%로 확정했다.

      국내 생보사로선 첫 발행인데다, 2021년 새 보험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을 앞두고 있어 글로벌 시장에서 이를 어떻게 평가할지 미지수였던 상황이다. 그럼에도 교보생명은 역대 아시아 보험사 신종자본증권 중 가장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해외 로드쇼에서 투자자들은 한국의 보험업 현황과 자본 건정성 관리 방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회계제도 감독 규제 변화에 대한 영향과 교보생명의 향후 대응 방안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 밖에도 ▲과거에 판매한 고금리 확정형 상품에 대한 대처방안 ▲ 교보생명의 불안정한 소유구조 ▲해외 투자 비중 확대에 따른 헤지 전략에 대해 질문이 잇따랐다.

      '명쾌한 답변'이 어려운 질문들이었지만, 로드쇼 후 해외 투자자들은 앞다퉈 주문을 넣었다. IFRS17이 회계적 이슈로 회사의 수익성이나 본질가치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교보생명은 국내 시장점유율 3위를 유지하고 있는 대형사인데다, 해외 평가사로부터 유일하게 평가등급을 받았다. 무디스는 교보생명에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와 같은 'A1(안정적)'의 신용등급으로 부여하고 있다. 투자자들에 콜옵션 행사전까지 재무 안정성이 크게 위협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었던 이유다.

      신종자본증권은 30년 만기이지만 5년 경과 후 중도 상환할 수 있는 콜옵션이 붙어있어 투자자들에게도 부담이 되지 않는 조건이었다는 평가다.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미국 국채 5년물 금리에 약 2%를 가산한다. 10년 후에는 1%의 스텝업(Step-Up) 금리가 추가된다.

      교보생명이 해외시장에서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이유 역시 해외투자 비중을 확대해 운용 경쟁력을 높이고, 새로운 회계제도 도입을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목적이 커 투자자들도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본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글로벌 시장에서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다이이치, 니폰 등 일본 대형 보험사들은 4%대 초중반의 금리를 받아들였다. 교보생명이 이보다 낮은 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었던 건 '희소성'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위해 신규 수요처를 찾는 장기 해외 투자자에 시기적절한 투자처가 됐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한국 보험사가 시장에 나온 적도 처음이고 당분간 (교보생명의 뒤를 이어) 발행할 곳도 없어 사실상 유일하다"며 "투자 국가 다변화를 꿰해야 하는 포트폴리오 구조를 감안해 수요가 몰린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글로벌 시장에 유동자금이 많았던 점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해외 자금 조달에 성공하면서 교보생명의 환 리스크도 분산됐다는 평가다. 교보생명은 2년전 9%의 비중을 차지하던 해외유가증권 투자규모를 지난해 말 17%까지 늘렸다. 운용규모는 13조원에 달한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이번에 달러(USD)로 조달한 자금은 대부분 해외투자에 활용할 계획이며 원화(KRW)로 전환할 필요가 없다"며 "그간 부담했던 환 헤지에 소요된 비용이 감소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화생명과 교보생명 등 국내외에서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성공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증자와 후순위채 발행으로 한정됐던 보험사들의 선택지가 늘어났다. 당장 올해 말부터 예정되어 있는 RBC제도 산출 기준 개편에 대비해 보험사들의 자금조달은 이어지고 있다. 최근 동부화재와 현대해상은 후순위채를 발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 시장의 경우 한화생명이 상반기 5000억원 규모 자금을 확보한 이후 중소형 보험사에 대한 수요를 찾기 어려워 신종자본증권의 추가 발행은 이어지지 않고 있다. 해외 발행을 진행할 경우 해외 신용평가사의 글로벌 신용 등급을 보유해야 하지만 교보생명 외엔 아직 평가를 받은 생보사가 없어 새로운 사례가 나오기까진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