産銀 손 떠난 한국GM, 文정부 구조조정 정책 가늠자 될까
입력 2017.08.16 07:00|수정 2017.08.18 10:53
    한국GM 부진에 철수설까지…GM 10월이면 지분 매각 가능
    채권 없이 지분만 가진 産銀, GM 계획에 영향력 행사 불가
    한국GM 효율화 필요…GM 의사 결정 시 정부와 협상 가능성
    정부 9월 구조조정안 수립…시장 주도·고용 문제 등 고심할 듯
    • 한국GM이 실적 부진에 한국 시장 철수설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2대주주인 산업은행이 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방안은 마땅치 않다. 지분을 정리할 수도 지원에 나설 수도 없는 상황에서 미국 GM과 합의한 견제장치의 효력도 3개월이면 끝난다.

      미국 GM 입장에선 매력도가 예전만 못한 한국 사업장을 유지하기 위해선 산업은행, 나아가 그 키를 쥔 정부와의 협상이 필요할 수 있다. 협상 테이블이 차려진다면 정부로서도 고용 유지와 지원 필요성 등을 놓고 고심해야 한다.

      정부는 조만간 기업 구조조정의 큰 틀을 제시할 계획인데 한국GM이 정부 정책의 첫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산업은행은 GM과 10년 이상 관계를 맺고 있다. 2002년 한국GM 설립 당시부터 주주로 참여했고 대규모 장기대출도 지원했다. 실적이 악화하던 상황에 원군으로 참여한 산업은행은 GM과 협약에 따라 주요 의사 결정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Veto)를 확보했다. 한국GM 자산 20% 이상 처분 등 중요 결정을 위해선 산업은행의 동의가 필요하다.

      문제는 오는 10월 16일이면 협약이 만료된다는 점이다. GM은 그 전까지는 한국GM 주식을 한 주도 매각할 수 없지만 그 이후엔 어디에든 매각할 수 있다.

    • 올해 초 GM 최고경영자는 부진한 사업장을 정리하고 이익이 나는 지역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적자를 이어오던 독일 브랜드 오펠을 매각했고 수익이 나지 않는 인도 등 신흥 시장 철수도 예고했다. 실적 부진으로 자본잠식에 빠진 한국GM의 철수설이 끊이지 않는 배경이다. 한국GM이 존속하고 경쟁력을 되찾기 위해선 효율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은행이 할 수 있는 역할은 거의 없다. 산업은행은 GM과 협약 기간 중이라도 주식을 처분할 수는 있지만 GM이 1대 주주로 남아 있는 한 연관 사업을 하는 업체, 즉 자동차 업체에는 매각할 수 없다. 실적이 악화한 상황에서 자동차와 무관한 업체가 관심을 가질 가능성도 크지 않다. 그나마도 자본잠식으로 가치는 없고, 정치권의 매각 반대 압박은 연례 행사가 됐다.

      국책은행이 섣불리 지분 정리에 나섰다가는 GM의 한국 시장 철수를 정당화 할 명분을 만들어 주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GM은 산업은행 보유지분을 같이 팔 수 있는 드래그얼롱을, 산업은행은 GM의 지분 매각 시 함께 팔 수 있는 태그얼롱을 각각 가지고 있으나 회사의 매력도가 떨어진 지금 상황에선 사문화된 권리다.

      한국GM이 처한 상황이 실적이 부진한 여느 기업들과 다르다는 점도 문제다. GM은 한국 실적이 좋았던 2010년을 전후해 산업은행 차입금을 상환하고 미뤄뒀던 배당도 실행했다. 한국GM의 작년 말 기준 차입금은 약 3조원에 달하는데 모두 GM으로부터 빌린 것이다. 채권금융회사 주도 구조조정의 실효성이 힘을 잃어가고 있긴 하지만, 한국GM은 대출채권을 앞세워 영향력을 행사할 채권단조차 없는 상황이다.

      산업은행이 이제 와서 대규모 자금 지원에 나서기도 어렵다. 그간 대우조선해양 등 대기업 구조조정에서 제대로 된 원칙이 없었단 비판이 많았고, GM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도 되지 않은 상황이다.

      산업은행이 손 놓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협약을 연장하자는 뜻을 GM에 전하기도 했으나 굳이 다시 족쇄를 찰 필요가 없는 GM은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GM은 수조원을 한국GM에 대출하고 차입금도 상환하는 등 가능한 노력을 해왔었다.

      이런 사정상 한국GM의 거취는 결국 우리나라 정부와 미국 GM의 협상에 따라 갈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강조해온 대로 시장 주도에 맡긴다면 GM의 결정을 바라보면 될 일이다. 그러나 고용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정부가 수많은 일자리가 걸린 문제를 손 놓고 있기도 어렵다. 앞선 기업 지원 과정에서 ‘대마불사’란 비판을 받은 사례가 많았던 점도 고려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GM이 철수를 고려한다면 협약 유효기간도 얼마 남지 않은 산업은행의 2대주주 지분으론 막을 힘도 명분도 없다”며 “사업장 유지를 놓고 GM이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국책은행의 지원 등 여러 요구 조건을 제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선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가 기업 구조조정의 컨트롤 타워를 맡을 전망이다. 오늘 9월까지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 그 직후 산업은행과 GM의 협약이 만료되는 한국GM 문제가 가장 먼저 테이블에 올려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한국GM은 지금까지 금융회사를 통한 관리가 어려웠었고 시장 논리에만 맡겨두었다간 점진적이 아닌 일거에 고용 문제가 발생할 여지도 있는 사안이라 정부의 고심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