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SK의 배터리 강행 의지…투자자 기대감은 ‘물음표’
입력 2017.08.17 07:00|수정 2017.08.21 09:32
    조단위 투자 이어 조직개편까지…공격적 행보 가속
    전기차 '패키지 전략' 펼치는 LG, '하만 활용법' 요청한 삼성
    선수주 후증설 전략 시장 대응 가능할지 관심
    •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배터리 부문에서 공격적인 진입 의지를 연이어 밝히고 있다. 지난 6월 배터리 부문에 조(兆) 단위 투자 계획을 공개한 데 이어 사업부를 CEO 직속으로 옮기는 조직 개편까지 단행했다.

      회사의 진입 의지가 구체화할수록 오히려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점점 깊어가고 있다. 이미 세계 수위권 업체로 성장한 LG, 삼성보다 투자 결정은 늦어졌다. 설득력 있는 추격 전략 대신 단순히 설비 증설 계획만 내놓는 '전략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다. 일각에선 그룹 전기차 사업을 이끌어온 최재원 부회장의 가시적 성과를 위해 무리한 속도전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SK이노 전기차 배터리 '강행'…최재원 부회장 후방 지원

      그룹 및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연초부터 배터리 사업을 두고 사업 확장 여부를 고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 배터리 수요 증가로 인한 리튬·코발트 등 핵심 원재료 가격의 폭등, 완성차 업체들의 배터리 공급 가격 인하 요구 등 녹록지 않은 시장 환경이 배경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사내 전략팀을 통해 내부 논의를 거쳐 공격적인 진입을 결정했다. 이후 대규모 투자계획 발표, 조직 개편 등 구체적 안이 시장에 공개됐다.

      전기차 배터리 사업은 최재원 SK그룹 수석 부회장이 애착을 가지고 전담해온 사업으로도 알려졌다. 지난 2010년엔 직접 전기차 배터리 'VIP 마케팅'을 자처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협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본업의 대규모 적자가 겹쳐 배터리 사업의 우선순위에서 점차 밀렸다. 지난 2015년엔 삼성SDI로의 사업부 매각까지 진지하게 검토됐지만 최종 부결돼 무산되기도 했다. 최 부회장은 이번에도 직접 서산 공장 증설 발표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등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시장에선 향후 전기차 시장 확대에 따른 핵심 부품 배터리의 성장성, 그룹 내 현금 여력이 충분한 SK이노베이션의 투자 방향성에 대해선 일부 공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최근 쟁점이 된 원재료 가격 상승에 대한 대비책 등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격차 벌린 LG·삼성…완성차 고객사 확보·기술력 추격 "쉽지 않아"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국내외 배터리사들은 최대 시장인 중국 내 전기차 보조금 정책이 끝나는 오는 2020년을 목표로 수주전이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내연기관차 대비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가격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 하락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LG와 삼성 모두 수년째 적자를 감수하며 연간 매출의 10% 이상을 연구개발(R&D)에 쏟고 있다.

      자동차 업계 특성상 수주 이후 본격적인 공급까지 2~3년의 시간이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이후부터 본격적인 경쟁이 펼쳐질 예정이다. 지난해부터 배터리 업체 간 치열한 수주전이 펼쳐진 폴크스바겐(Volkswagen)의 전기차 프로젝트 'MEB(Modular Electric Drive)'가 대표적이다. 9년간 총 640만대 물량이 쏟아질 계획으로 배터리 매출만 약 66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 SK 측은 독일 완성차업체 다임러(Daimler)로부터의 수주를 바탕으로 고객군을 점차 확장해가겠다는 전략이다. 연내 동유럽에 국내 설비와 유사한 규모(3GW)의 배터리 셀 공장 건설을 마친 후 내년도 가동을 목표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고객군을 확장해가는 LG, 삼성에 비해 다임러 외 뚜렷한 고객 확보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수익성 측면에서의 우려도 나온다. 배터리 사업 중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는 원재료인 셀 공급보다 셀을 고객 요구에 맞게 배열해 공급하는 '배터리 팩' 분야에 있다. 다임러는 배터리 팩 사업 부문의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해 직접 꾸려가고 있다. 셀 부문도 내재화를 꾀했지만, 사업성이 낮다고 판단해 외부 조달로 기조를 바꿨다. SK는 동유럽 공장을 통해 다임러 등 고객사에 셀을 공급할 예정이다.

      국내업체 중 상대적으로 패키징 기술이 뒤떨어진 SK의 한계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LG는 2000년대 초부터 미국 내 연구법인(CPI)에서 팩 기술 개발에 투자해왔다. 현재는 LG전자의 VC사업부에서 배터리 팩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삼성SDI도 지난 2015년 글로벌 전장업체 마그나로부터 배터리 패키지 사업을 인수해 유럽 내 생산기지를 구축했다. SK는 지난 2013년 중국 현지 업체(베이징기차, 베이징전공, SK이노베이션)와 합작해 배터리 팩 조립공장 ‘베이징 BESK 테크놀로지’를 설립했지만 성과 없이 올 초 생산 중단을 통보받았다.

      한 증권사 화학 담당 연구원은 "현재 팩 형태로 완성차에 배터리를 공급할 경우 같은 용량 대비 셀 공급에 비해 20% 이상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라며 "패키지 기술이 비교적 고부가가치인 만큼 다임러 측에선 저렴하게 원재료를 공급받길 원했고, SK가 요구 조건을 맞춰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 ◇”그룹 시너지 창출 가능?”…구체적 전략 요구하는 투자자들

      LG·삼성 등 경쟁사 대비 그룹 차원 시너지도 미미하다. LG그룹은 전기차 진입 초기부터 LG화학의 배터리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등 타 전장 부품 계열사의 공급망을 확대해가는 ‘패키지 전략’을 꾸려왔다. GM으로 11종의 핵심 부품을 공급 중인 ‘GM볼트’가 대표적인 예다. 삼성SDI는 그룹 중추인 삼성전자의 전장 사업 진출에 따른 시너지가 점쳐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하만 활용법'을 각 전장사업 계열사에 요청하는 등 그룹 차원의 전기차 전략을 점차 구체화해가고 있다.

      상대적으로 SK의 그룹 차원 전략은 쉽지 않아 보인다는 지적이다. SKT의 5G, 사물인터넷(IoT)기술과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기술을 활용해 미래차 사업으로의 확장을 얘기하지만 어디까지나 장기적인 목표다. 결국 ‘투자비 부담이 비교적 적고, 성과를 보이는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 설비의 공격적 확장에 집중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SK가 진지하게 내연기관차에서 미래차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베팅’한다면 업황이 고점인 지금 SK루브리컨츠를 매각하고 보유 현금과 매각 대금을 활용해 하만 같은 글로벌 전장 회사를 M&A하는 등 유의미한 추격 전략을 보여야 한다"라며 "현 상황에서 배터리 셀 설비를 세계 3위 규모까지 늘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