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도 신한도…국내 증권사, '기회의 땅' 베트남 잇딴 진출
입력 2017.08.18 07:00|수정 2017.08.18 07:00
    경제규모 커지고 금리 내리며 증권업 매력 부각
    국영기업 수백곳 상장...정부 차원 부양 의지
    시총 100조원에 아직 '영세'...리스크 크다는 지적도
    • KB증권이 현지 증권사 인수를 타진하며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증권사는 6곳으로 늘어나게 됐다. 경제 성장성, 증시 부양에 대한 정부의 의지, 국내 투자업계의 높아진 관심 등이 어우러져 베트남이 증권업계에 '기회의 땅'으로 부각되고 있다.

      KB증권이 메리타임증권을 인수하면 베트남은 삼성증권을 제외한 국내 5대 증권사가 모두 진출한 유일한 동남아시아 국가가 된다.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대우는 지난 2007년, NH투자증권은 우리투자증권 시절인 2009년 베트남에 진출했다. 신한금융투자는 현지 법인 지분을 100% 인수해 지난해 2월 '신한금융투자 베트남'을 출범했다.

      증권사들이 베트남을 주목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의 성장성이다. 베트남은 2014년 이후 매년 6%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올해와 내년에도 각각 6.3%, 6.4%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신한금융그룹이 인수한 베트남 ANZ은행은 이런 성장세에 힘입어 2020년 베트남 중산층이 44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경제 규모는 커지고 있지만, 베트남의 기준금리는 2012년 14%에서 지난 7월 기준 4.25%로 계속 떨어졌다. 5년 만기 베트남 국채 금리 역시 5%대 중반에 머물고 있다. 이런 가운데 베트남의 주가지수인 VN지수는 올해 초 이후에만 20% 이상 상승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경제가 성장하며 금융서비스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는 게 베트남의 가장 큰 매력"이라며 "아직은 은행을 통한 예금·직불카드 위주로 금융시장이 성장하고 있지만, 증권 상품 시장도 꾸준히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정부의 의지도 뚜렷하다는 평가다. 베트남 정부는 2015년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에 한해 49%로 묶여있던 외국계 투자자 지분 한도를 100%로 완화했다. 최근 5년간 500개 이상의 국영기업을 증시에 상장시키기도 했다. 2006년 총 10조원 안팎에 불과했던 베트남 증시 시가총액은 현재 100조원 규모로 10배 이상 커졌다.

      지난 5월에는 하노이거래소 파생상품시장에 시장조성자제도를 도입했다. 증권사와 은행 및 지정 참가회사가 매수와 매도 양방향으로 일정량 이상의 주문을 유지해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임무를 맡았다. 이후 개인들이 주로 참여하던 주식 선물거래 시장이 빠르게 기관투자가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

      메리츠자산운용이 지난해 10년 폐쇄형 베트남 펀드를 내놓는 등 베트남이 새로운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는 점도 증권사들이 베트남에 무게를 싣는 이유로 꼽힌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베트남 상장기업들의 평균 연간 이익상승률이 20%를 훌쩍 넘는다"며 "현지 법인 등을 통해 지역형 상품을 전문적으로 만들수 있는 곳이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메리타임증권 인수를 추진 중인 KB증권은 여기에 '그룹 시너지'라는 목적을 하나 더 가지고 있다.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 투자에 실패한 아픔을 지닌 KB금융그룹은 베트남·캄보디아·미얀마 등 동남아시아 신흥국 시장을 중심으로 해외 거점을 구축하고 있다.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은 지난 2014년 취임 당시부터 메콩강 주변 동남아 국가 등 해외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겠다'고 의지를 피력했다. 국내에서 쌓은 금융 노하우와 자본력을 활용 가능하고, 금융서비스산업의 성장성이 큰 지역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복안이었다.

      KB증권은 이전까지 미국과 홍콩, 싱가포르에만 해외 거점을 보유하고 있었다. 금융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낮았고, 6000억원 안팎에 불과했던 자기자본으로는 해외 거점 투자가 쉽지 않았다.

      현대증권 합병 이후 업계 3위권으로 덩치를 불리며 그룹 내 위상도 높아진 이후로는 해외 투자를 더이상 외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1월 열린 간담회에서 전병조 KB증권 공동대표가 직접 "베트남 증권사를 인수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발언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다만 베트남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만은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우선 증권업 자체가 영세하다. 현지 1위 증권사인 사이공증권의 자기자본이 3600억원 안팎에 불과하다. 사이공증권의 지난해 연 매출은 1100억원, 당기순이익은 437억원이었다.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증권사 중 NH투자증권과 신한금융투자는 적자를 내고 있다. 그나마 성공적으로 안착한 한국투자증권 베트남 법인도 지난해 연간 매출액이 133억원, 순익이 19억원에 불과했다. 환전 제한 등 규제와 주식만 갚으면 되는 주식담보대출 등 제도적 허점으로 인해 현지 진출은 리스크가 크다는 시각도 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결국 베트남도 은행이 먼저 고객군을 확보한 뒤 보험이나 증권 등 후선의 계열사로 이를 공유하는 전략을 활용해야 한다"며 "한국·미래 등 먼저 진출해 기반을 닦은 독립계 증권사 계열과 은행과 함께 진출한 KB·신한 등 금융그룹계 증권사 계열 중 어느 쪽이 승리할 지도 관심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