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 전망, '수급' 보다 '기술 통찰력'
차준호 기자 | chacha@chosun.com | 2017.08.31 07:00
Edited by 이도현 팀장 | dohyun.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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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스마트폰 등 주력제품 출하량을 통한 사이클 예측 수명 다해
치솟는 가격에도 주문 밀리는 서버용 반도체 시장
클라우드·AI·IoT 등 예상 불가능한 수요 비중 점차 커져
"몇몇 리서치 자료에 의존하는 '전문가' 시대 끝나"

'4차 산업혁명'의 판도 변화를 가장 먼저 체감하는 곳은 반도체 업계다. 기존 논리로는 일찌감치 찾아왔을 업황 하락 사이클이 클라우드·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자율주행 등 예상치 못한 분야의 수요로 대호황을 맞았다.

일각에선 PC·스마트폰·서버 등 최종 제품의 출하량에 기반해 반도체 업체들의 수익성을 예측해온 기존 '수급 공식'이 수명을 다했다는 평가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투자자, 애널리스트 등 산업 전문가에게도 기술 변화 방향을 읽는 통찰력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간 주요 반도체 업체의 실적을 추정해온 주요 변수는 ‘완성 기기 출하량과 이에 탑재되는 메모리량’으로 요약된다. 이를 토대로 수요량과 공급량을 분석해 가격 동향을 예측해왔다. 최종 제품의 판매량 추이 등 각 변수가 반도체 업체들의 수익 및 기업가치에 즉각적으로 영향력을 미쳤다. “아이폰·갤럭시 등 주력 스마트폰의 판매량이 예전 같지 않으면 언제든 반도체 호황도 끝날 것“이란 분석이다.

여기에 더해 과거 각 메모리반도체 업체가 경험했던 치킨 게임의 기억은 가격에 영향을 끼칠 변수 하나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산업 환경의 배경이 됐다. 매년 반복되는 업황 고점 논쟁이 대표적이다.

올해 초 외국계 증권사 UBS를 시작으로 반도체 사이클 논쟁이 펼쳐졌다. 치솟은 반도체 가격에 ‘큰 손’인 중국 IT 완성업체들이 구매를 줄이는 신호가 감지되면서 점차 비관론이 확산됐다. 지난해 오포(OPPO), 비보(VIVO)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깜짝 호황을 맞아 반도체 수요량이 급등했지만, 올해 판매량이 꺾일 경우 고스란히 재고로 남을 것이란 예측도 이어졌다. 이로 인해 올해 하반기 이후 가격 하락이 이어져 호황이 꺾일 것이란 평가였다.

하지만 수급에 기반한 사이클 예측이 빗나갔다. 주력 시장인 PC·모바일에 밀려 '기타'로 취급을 받던 기업용 서버(Enterprise server) 시장에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며 기존 시장 둔화에 '안전판' 역할을 담당했다.

최근엔 각 기업들의 서버 설치 경쟁이 끝나면 서버 수요마저 둔화 될 것이란 우려가 팽배해지기 시작했다. 실제 각 기업들의 서버 수요 둔화가 숫자로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통계가 '착시'에 불과하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일부 글로벌 리서치 업체들이 통계로 집계하는 기업 서버용 반도체 수요는 각 기업들이 자체 전산실 등에 도입하는 ‘눈에 보이는 증설’이고, 이는 역성장하는 게 맞다"며 "각 기업들이 아마존·구글 등 선두 글로벌 IT 업체의 데이터 서버를 빌려 쓰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는 추세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오히려 선두권 업체들이 데이터 센터 증설을 위해 요구하는 메모리 수요 증가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평가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페이스북, 아마존, 구글 등 글로벌 IT기업들의 메모리 반도체 수급 경쟁은 더욱 치열해 지고 있다. 클라우드 시장을 주도하는 아마존은 자사의 내년도 D램 수요가 올해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메모리업체들도 보다 고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는 글로벌 IT기업향(向) 설비 비중을 점차 늘려가며 고객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이렇게 높은 가격이면 수요가 꺾일 것'이라는 기존 경제 논리로 해석이 불가능한 수요 증가라는 평가도 나온다. 데이터 처리량이 기하급수로 늘어나면서, 서버에 탑재되는 D램과 낸드플래시의 사소한 성능 차이가 곧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웃돈을 주고라도 메모리를 선점하려는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부품 단가가 올라가면 판매수익이 떨어져 가격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는 스마트폰, PC 시장과는 다른 환경이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 아직 본격적으로 개화하지 않은 시장 수요도 예상보다 빠르게 성장 동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한 증권사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는 "최근 중국 정부가 데이터 통제를 목적으로 인텔과 협력해 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ADAS) 개발에 나섰는데, 여기에 들어갈 D램, 낸드의 수요는 국내 업체들이 전담할 수밖에 없다"며 "이처럼 시장에서 예상치 못했던 공공투자 성격의 수요 증가가 단기간에 빠른 속도로 증가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애널리스트 업계에서도 위기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기술 변화에 대한 통찰력, 방향성에 대한 추론 없이 수급에 의존한 산업분석의 시대가 곧 끝날 것이란 평가다. 한 반도체 업계 애널리스트는 “산업이 복잡해질수록 몇몇 글로벌 리서치 업체 등의 자료를 받아쓰면서 산업 동향을 쉽게 예측해온 ‘전문가’들의 수명은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8월 25일 14:14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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