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가 매각설'은 차단했지만…홀로서기 가능할까
입력 2017.12.14 07:00|수정 2017.12.15 09:53
    "그룹 지원 없다" 일찌감치 못박은 SK
    경쟁 심화에 안정적 수익 창출까지는 험난
    방만한 조직 개선·경영권 요구하는 원매자들
    • 11번가가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올 한해 유통업계를 뒤흔든 이슈였던 롯데·신세계와의 투자유치 및 매각설은 잠잠해졌지만, 홀로서기가 지상 과제로 내려졌다.

      SK그룹 차원의 지원 가능성은 단절된 상황에서 투자자 확보까지 넘어야 할 산은 많다. G마켓·옥션을 보유한 선두 업체 이베이코리아와의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데다, 경쟁 강도는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주어진 시간은 촉박한 상황에서 존재감 드러내기에 실패할 경우, 그룹에서도 시장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계륵’ 신세가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 9월 롯데, 신세계 측과 11번가를 운영하는 자회사 SK플래닛의 투자 유치를 두고 협상을 진행했지만 성과 없이 끝났다. 이후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대외적으로 “11번가를 한국의 ‘아마존’으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해 그룹에 잔류하는 방향으로 가닥 지었다. SK플래닛은 현재 사업군 구조 개편과 비용 감축 등을 통해 적자 폭을 줄이는 작업에 매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유치는 그대로 추진하면서 적자 폭을 전년 대비 1000억원 정도 줄이는 방향으로 목표를 세웠다"라며 "그룹에서 SK플래닛 경영진에게 회사 정상화 및 외부 투자유치를 '미션'으로 남겨놓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선 SK플래닛이 적자를 줄이는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체 유통망을 확보하고 재고를 쌓아야하는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유통 업체와 달리 플랫폼 중개(C2C)만을 담당하는 오픈마켓 특성상 마케팅 비용 축소를 통해 대응이 가능할 것이란 분석이다.

      문제는 '미래'다. 다시금 사세를 확장하기엔 자체 현금창출로는 빠듯한 상황이다. 결국 외부에서의 추가 자금 조달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SK텔레콤은 증자 같은 그룹 지원은 없다고 일찌감치 못 박았다. 그룹 측의 부인에도 독자적 생존 혹은 유의미한 투자자 유치가 성사되지 못할 경우, 온라인 사업 강화를 노리는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재매각이 언제든 현실화할 수 있다는 예측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SK는 지난 2008년 11번가를 통해 오픈마켓 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들었지만, 선두 업체인 이베이코리아(G마켓·옥션)에 경쟁력 측면에서 열위한 상황이다. 사업 초기만해도 그룹 차원의 공격적 마케팅을 통해 7년만에 2위권 사업자로 도약했다. 하지만 계속된 적자에 뚜렷한 브랜드 가치를 확보하지 못하며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는 데 실패했다. 그룹에서도 꾸준히 매년 1600억원 가까운 현금을 창출해 11번가를 후방지원해온 ‘T맵’ 사업부를 지난해 SK텔레콤으로 다시 편입하며 지원책을 끊었다.

      SK플래닛은 이후 중국계 FI 등을 통해 꾸준히 외부 투자 유치를 추진해왔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매년 1000억원에 달하는 영업현금을 꾸준히 창출해내는 이베이코리아와 달리 ▲규모의 경제 ▲조직 효율성 ▲안정적 재무구조 측면에서 기반이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고속 성장 과정에서 지나치게 많은 인력을 수혈한 점과, 수수료가 낮은 저마진 사업자 비중이 경쟁사보다 큰 점도 언급된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거래액이 15조원에 육박하는 이베이코리아의 직원 수가 1000여명이 안되는 데 반해 거래액이 8조원 수준인 11번가를 운영하는 SK플래닛의 총 직원수는 2500명에 육박한다”라며 “이 같은 비효율적인 구조를 해결하지 않은 채 외부 투자유치를 추진하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온라인 사업 강화가 과제인 롯데 및 신세계 등 오프라인 유통 업체들에 오픈마켓은 여전히 매력있는 매물로 평가된다. 다만 원매자들은 지난 협상을 통해 SK가 경영권에서 손을 떼야 하는 점을 단호히 드러냈다. 제 값을 받기 위해선 안정적 수익 창출 능력을 보여야 하지만 쉽지 않다. 내년엔 마지막 생존 경쟁을 펼치는 소셜커머스들의 도전이 예고됐고 밖에선 아마존의 국내 진입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M&A 업계 일각에선 "11번가 대신 G마켓, 옥션 등의 통매각 출회를 기다리는게 더 낫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한 유통담당 애널리스트는 “예를 들어 이마트몰도 매년 30%씩 성장하지만 거래액은 1조3000억원 수준으로 낮은데다 품목이 생필품 위주로 구성돼 공산품을 늘려야 하는 숙제는 남아있다”라며 “11번가 인수가 시너지는 있겠지만 양쪽의 접점을 찾기 위한 물밑 조율은 계속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