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되는 집, 안되는 집 어디?"…재계 현실 묻어나는 그룹 인사
입력 2017.12.15 07:00|수정 2017.12.18 09:35
    삼성, 비전자 부문 인사 적체 현상
    SK, 수펙스 위원장 보임으로 긴장감 유지
    LG, 조용한 분위기 속 신상필벌 단행
    갈길 바쁜 현대차, 보수적 인사 예상
    롯데, 3년째 정상적 연말 인사 안돼
    • 연말은 대기업 인사 시즌이다. 지난해엔 재계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엮이면서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인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올해엔 다시 정상적으로 연말 인사가 진행됐거나 있을 예정이다. 다만 현재 오너의 입지와 그룹 사정에 따라, 또는 본래의 그룹 이미지에 따라 그 양태는 크게 다르다. 내년 그룹의 전략 방향성과 해결하기 어려운 고민들도 인사에 묻어 나온다.

      ◇ 삼성'후(後)'자 한계 드러낸 삼성…긴장감 속 안정 택한 SK

      삼성그룹은 권오현 부회장이 사퇴를 통해 후속 인사에 대한 물꼬를 텄지만, 삼성전자 등 전자 계열사를 제외하면 인사가 지지부진하다. 그룹 인사에서도 오너 부재에 따른 권력 진공 상태, 그리고 삼성’전(前)’자와 삼성’후(後)’자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그룹 차원의 인사를 주도할 주체가 사라지면서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비전자 계열사들은 말 그대로 손을 놓고 향후 인사만 바라보는 상태”라며 “몇몇 계열사들은 해를 넘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룹 안팎에선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 때문에(?) 비전자 계열사의 전반적인 인사에 제동이 걸렸다는 풀이를 내놓고 있다. 최치훈 사장의 하만 대표 등판설과 이후 무산설 등 최 사장 거취가 정해지지 않으면서 삼성물산·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엔지니어링 인사가 적체 현상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 여파로 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카드 등 금융계열 인사도 멈춰있다.

      그룹 내부에 정통한 관계자는 “구조조정 전문가이자 미국 기업 문화에 밝은 최치훈 사장이 하만 대표가 되면 삼성전자와의 합병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경영관리 능력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자동차 전장 전문가가 아니고 혁신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하만 이사회에서 반기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분위기가 가장 좋아 보이는 곳은 SK그룹이다. 사장단에 대한 변화는 최소화했다. 지난해에 이미 대대적인 단행으로 세대 교체를 했고, 성적표 상에서도 큰 불만이 없다. 대신 수펙스에서 위원장 이동으로 각 위원회에 변화를 주는, 나름 의미있는 조치가 있었다. 에너지·화학위원장에 유정준 SK E&S사장(전 글로벌성장위원장), ICT위원장에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전 커뮤니케이션위원장), 글로벌성장위원장에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전 ICT위원장), 커뮤니케이션위원장에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전 에너지·화학위원장)을 각각 보임했다.

      박정호 사장이 ICT위원장이 되면서 본격적인 그룹 ICT 총괄 작업이 예상된다. 내부 조직은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MNO), 미디어, 사물인터넷(IoT) 및 데이터, 서비스플랫폼 4 부분으로 나눠 각 부분장을 임명했다. '유니콘랩스'라는 사내 M&A 조직도 재편해, M&A 핵심 인력인 노종원 실장이 부문장이 됐다.

      박정호 사장이 1년차엔 사업에 대한 이해에 집중했다면, 2년차부터는 M&A 및 비통신 강화, 중간지주 설립 등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설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박정호 사장은 평소 "SKT는 통신업에 가려서 비통신 부문 성과가 제대로 평가돼지 못한다"고 말해왔다.

      유정준 SK E&S 사장이 에너지·화학 수장이 된 것도 의미가 있다. 최재원 부회장이 경영에 본격적으로 복귀하면 사이가 돈독한 유정준 SK E&S 사장과 손발을 맞출 가능성이 크다. 최재원 부회장은 구속수감 이전 SK E&S 대표이사를 맡았기 때문에 안팎에서 SK E&S로의 복귀가 유력하다는 평이다. 그룹 차원에서 에너지 사업 관련 투자와 신사업 발굴에서 최 부회장과 유 사장의 시너지를 기대할만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다른 그룹들과 비교하면 SK그룹은 가장 안정적인 인사 구조를 갖추고 있다”며 “절대 권한을 가진 2인자 없이, 조대식 수펙스 의장과 각 부문 위원장들의 협력과 경쟁이 이뤄지고 있어 적정 수준의 긴장감이 유지되는 것도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 보수적 이미지 속 신상필벌 LG…승계구도 향방에 주목하는 현대차

      LG그룹은 보수적인 그룹 이미지와 비슷하게 큰 변화는 없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조준호 LG전자 MC사업본부장(사장)이 LG인화원으로 이동했고, HE사업본부에서 OLED TV를 개발하던 황정환 부사장이 임명됐다. 조성진 부회장의 역점 사업인 '시그니처’, ‘OLED TV' 성공 DNA를 휴대폰 사업에도 접목시켜 위기에서 탈출하겠다는 의사로 읽힌다. 다만 시장에선 TV와 스마트폰은 전혀 다른 사업이기에 LG 스마트폰 부활에는 여전히 물음표를 붙이고 있다. 오너가 구광모 상무는 ㈜LG에서 LG전자로 이동했다. 신성장사업 중 하나인 정보디스플레이(ID) 사업부장을 맡으면서 B2B사업에서 경영능력 검증대에 올랐다.

      그룹 M&A를 담당할 전문가가 보이지 않는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삼성은 안중현 부사장이 사업지원 TF로, SK와 한화는 노종원 전무와 민구 전무의 승진 등 각 그룹 M&A 인력들이 중용되고 있다”며 “반면 LG그룹에선 IB업계에 대응할 카운터파트너가 사실상 없어 여전히 그룹 차원의 M&A에는 소극적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듯 하다”고 전했다.

      재계, 시장의 관심은 인사를 앞두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에 쏠린다. 핵심은 정의선 부회장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확대할 수 있느냐다. 정의선 부회장이 승계 1순위이자 그룹 서열 2위이긴 하지만, 이를 뒷받쳐 줄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는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차그룹 담당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대차는 올해 실적이 좋지 않아 성과주의 인사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하고 키워드는 ‘세대교체’여야 하는데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정몽구 회장의 사람들이 여전히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의선 부회장이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이번 인사에서도 대대적인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정의선 부회장은 SUV 라인업 강화 등 글로벌 판매 확대를 위한 여러 방안들을 내놓고 있지만, 지배구조 개편과 더불어 내년부턴 승계작업에도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그룹 내 입지 강화가 우선시될 수 있다. 시장에선 사업적 측면뿐만 아니라 인사 측면에서도 현대차의 혁신 속도가 느려지고 있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롯데, 오너 공백 장기화 가능성에 플랜B·플랜C 가동해야

      이재현 회장 경영복귀 이후 단행한 CJ그룹 인사는 세대교체, 그에 따른 미래 먹거리 조직 확대에 방점을 찍었다. 젊은 CEO급을 승진시켰고,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는 기획실을 신설했다. 오너가에도 힘을 실었다. 이재현 회장 맏딸인 이경후 상무와 남편인 정종환 상무가 상무대우에서 상무로 나란히 승진했다. 이 회장 복귀 이후 그룹 내부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고 그에 대한 자신감을 과감한 인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는 평이다.

      이에 반해 롯데그룹은 분위기가 좋지 않다. 롯데그룹은 매년 12월 정기인사를 실시했지만 2015년 ‘형제의 난’ 이후 3년째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경영권 분쟁으로 2015년 인사 폭이 최소화했고, 2016년에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며 인사가 아예 미뤄져 올해 2월 실시됐다. 올해 역시 경영비리와 관련해 신동빈 회장의 1심 선고를 앞두고 있어 제대로 인사가 이뤄질지 장담할 수 없다. 특히 올해는 그룹 창립 50주년과 롯데지주 출범 후 첫 인사인데 이미 퇴색됐다.

      롯데 인사는 신 회장의 1심 선고 결과에 따라 갈릴 전망이다. 신 회장의 부재가 현실화할 경우 누가 경영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황각규 경영혁신실장이 2인자로 꼽히지만, 황 실장 역시 징역 5년을 구형받은 상태여서 이제는 황 실장의 부재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동시에 신 회장이 누구에게 황 실장 역할을 맡길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IB업계 관계자는 “올해 2월 인사에서 BU(비즈니스유닛)사업부 체제를 도입해 책임경영을 강화하면서 일정 부분 대비를 하긴 했지만 여타 그룹들에 비해 오너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