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실적에도 웃지 못한 삼성전자, 어깨 무거워진 사업지원TF
입력 2018.01.16 07:00|수정 2018.01.18 09:24
    최대 실적 냈지만 반도체 의존 높아…새 먹거리 필요성
    사업지원TF가 핵심…정현호·안중현 등 옛 미전실 인사 주축
    에스엘시디로 눈에 든 안중현 부사장 등의 M&A 역할론 커져
    CES서 하만과 시너지 과시했지만 총수 부재 부담 여전
    • 삼성전자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지만 동시에 미래 먹거리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실적을 견인한 반도체 부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고, 휴대폰 사업의 경쟁강도 역시 갈수록 심화하고 있어서다. 이재용 부회장 부재 장기화로 회사의 운신의 폭이 좁아진 상황에서 M&A를 주도할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의 임무는 막중해졌다.

      삼성전자는 지난 9일 지난해 4분기 연결기준 매출 66조원, 영업이익 15조10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연간으로는 매출 239조6000억원, 영업이익 53조6000억원이다. 분기 실적으로는 3분기 연속 새 기록을 썼고, 창사 이래 처음으로 연간 영업이익 50조원 벽을 돌파한 것이다. 반도체 수퍼 사이클이 이를 견인했고,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 예상치가 11조원에 달할 정도로 사업 편중도가 높다는 점은 꾸준히 지적되고 있다. 또 다른 주력인 스마트폰 사업을 하는 IM 부문도 경쟁 심화로 고전을 겪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자연스레 새로운 사업, 그것도 일거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대형 M&A에 대한 필요성이 거론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스스로를 ‘데이터 회사’로 칭하며 새로운 전략 방침을 드러내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해외 스타트업이나 하이테크 업체에 대한 M&A는 미국에서 수행하곤 하지만 이를 제외한 대형 거래는 한국 본사가 주도한다. 과거 그룹 살림을 총괄하던 미래전략실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사업지원TF가 핵심 조직으로 꼽힌다.

      사업지원TF는 지난해 전자계열사의 사업간 공통된 이슈에 대해 협의하고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취지로 삼성전자 내부에 설치됐다. 내세운 명분 때문에 그룹 경영 전반에 나서긴 어렵지만, 계열사의 굵직한 의사결정에는 여전히 영향을 미칠 것이란 평가가 많다.

    • 정현호 사장이 사업지원TF를 이끌고 있다. 지난해 미래전략실이 해체되며 사임했던 정 사장은 그 해 11월 인사에서 ‘CEO 보좌’ 역으로 다시 복귀했다.

      정현호 사장은 미국 하버드 MBA 유학 때부터 연을 맺은 이재용 부회장의 최측근 중 하나다. 삼성전자 비서실부터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0년대 초반엔 경영지원팀 임원(상무보)으로 경영기획팀 임원이 된 이재용 부회장과 지근거리서 일하기도 했다. 2011년 이후엔 미래전략실에서도 핵심인 경영진단팀(부사장)과 인사지원팀(사장)을 거치며 그룹 전반의 사업을 조율했다.

      M&A 업무에서는 안중현 사업지원TF 부사장이 핵심으로 꼽힌다. 그도 미래전략실 해체 후 기획담당 임원으로 있다가 TF가 설치되면서 합류했다. 한화그룹 및 롯데그룹과의 빅딜도 이끌었다.

      안중현 부사장과 이재용 부회장의 인연도 십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전자는 2004년 일본 소니와 손잡고 에스엘시디(S-LCD)를 출범시켰다. LCD TV 시장을 선점하기 위함이었는데, 삼성전자 내부에선 이를 이건희 회장의 후계자 이재용 부회장(당시 경영기획팀 상무)의 치적으로 만들어주자는 의지가 강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에스엘시디의 이사로 합류하기 때문에 회사 설립 절차에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선 안 된다는 긴장감이 흘렀다는 후문이다.

      당시 부장이던 안중현 부사장이 에스엘시디 설립 실무를 챙겼다. 안 부사장은 에스엘시디 설립으로 이재용 부회장 눈에 들면서 2005년 상무보, 2008년 상무, 2011년 전무, 2013년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고, 미래전략실이 해체되는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안중현 부사장 등 M&A 전담 인력은 잘 유지할 것을 당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 사정에 밝은 재계 관계자는 “그룹의 굵직한 M&A를 도맡았던 안중현 부사장은 미래전략실이 해체 후 인사에선 그룹 계열사 사장 자리를 바랐을 것”이라며 “맡은 업무의 중요성 때문에 이재용 부회장이 돌아오기 전까지 자리를 옮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중현 부사장은 지난해 인사가 날 즈음 해서 주요 법무법인들에 M&A 담당 변호사 명단과 수행 실적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다. 평소에도 회계법인ㆍ법무법인 등 외부 자문사에 대한 관리가 철저하지만 이런 움직임 자체가 앞으로 업무를 함께 할 수 있는 인력을 파악해두겠다는 의도로도 시장에는 받아들여졌다.

      다만 이렇게 미래전략실 핵심 인력과 그 유사 조직이 남았지만 앞으로 얼마나 성과를 거두게 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 조단위 투자나 M&A에 대해 오너 부재 상황에서 "최종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다. 이재용 부회장의 운명도 내달 5일 예정된 항소심 선고 이후에나 겨우 예측이 가능하다.

      삼성전자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 CES 2018에서 하만과 함께 컨퍼런스를 열어 사업 구상을 밝히며 초대형 M&A의 성과를 과시했다. 그러나 하만 인수도 이미 1년 전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공백이 길어지면서 굵직한 M&A를 추진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를 방증하듯 김현석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 부문장(사장)도 M&A 재개의 필요성을 밝히면서도 총수 부재 상황에서 대형 거래를 결정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토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