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감사시간제' 도입 놓고 회계업계 우왕좌왕
입력 2018.01.17 07:00|수정 2018.01.16 19:06
    제도 적용 시기 '모호'
    구체적 가이드라인 발표는 미뤄져
    회계펌, 자체 표준감사시간 마련 중
    "감사 책임 강화되는데…제도적 환경 못 따라와"
    • 지정감사제와 함께 금융당국이 마련한 새 회계개혁안의 핵심 사안으로 다뤄지고 있는 '표준감사시간제'를 놓고 회계업계가 혼란에 빠졌다. 도입 시기를 두고 해석이 분분한 데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에 대한 공식 발표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어서다.

      지금보다 감사에 일정 시간을 더 들여야 하는 표준감사시간제는 올 11월 시행되는 외부감사법 개정안에 맞춰 법적근거가 마련된 상황이다. 공인회계사회의 자문기구인 표준감사시간위원회는 이르면 올 1분기 중으로 '업종별 표준감사시간'을 발표할 예정이다.

      회계업계는 제도 도입의 취지를 두고 반색하고 있다. 표준시간에 맞춰 감사 보수도 함께 오르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낮은 수준의 감사 보수를 끌어올리는 작업은 업계의 숙원 과제였다. 국내 기업들의 경우, 경영진들이 직접 회계법인과 협상해 감사 계약을 맺곤 한다. 독립된 권한을 가진 내부 감사 기구가 충분한 수준의 감사 보수를 책정하는 해외 기업의 감사 관행과는 대조적이다.

      제도를 둘러싼 환경적 요소를 놓고서는 혼선이 많다. 당장 도입 시기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표준감사시간제의 도입시기는 개정안이 적용되는 올 11월 이후다. 이를 두고 회계법인들은 내년 초 발표될 2018년 회계연도 감사보고서부터 표준감사시간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빅4 회계법인 파트너는 "외감법 개정안 시행과 동시에 감사인에 대한 각종 책임과 연관된 규제와 처벌이 강화된다"라며 "이런 환경에 발맞추려면 올 3월 맺을 감사 계약 상에 표준감사시간제에 준하는 감사 시간을 투입한다는 내용을 담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 금융위의 관련 테스크포스(TF)와 회계업계 간의 표준감사시간제 논의가 아직 초기 단계에 있는 만큼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실질적으론 2019년 발표될 1분기 분기보고서부터 표준감사시간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회계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감사 강화에 대한 법적 기반이 마련되고, 책임 부분이 커지고 있는 데 반해 제도와 관련된 환경 변화가 뒤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라며 "올해 감사를 놓고 회계법인과 기업들의 혼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상당수 회계법인은 자체적인 표준감사시간을 고안하고 있는 등 선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같은 업종이어도 연결회사 수 등에 따라 표준감사시간을 달리 적용해야 하는 등 천차만별의 요소를 표준화하는 작업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회계업계 또다른 관계자는 "표준감사시간에 대한 논의가 길어질 경우 일부 회계법인들이 자체적인 기준을 감사 계약에 반영하려 할 가능성도 있다"라며 "경쟁사와는 다른 수준의 표준 시간을 제시하거나, 추후 금융당국이 최종적으로 승인한 표준감사시간과의 차이가 클 경우엔 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당장 3월 안에 수많은 감사 대상 기업들과 계약을 체결할 대형 회계법인들이 서로 눈치를 보기보단 공조를 통해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만 기업들의 반발이 수그러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회계법인과 기업 간의 갈등은 당분간 불가피할 전망이다. 기업들은 예전처럼 낮은 수준의 감사 비용을 지급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표준감사시간제가 제도적으로 안착하지 않은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보수를 인상하려는 데 대한 반발이 클 수 있다.

      한 대형 회계법인 파트너는 "적절한 수준의 감사 비용 지불이 기업가치를 높이는 일종의 투자라는 기업들의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라며 "회계부실에 대한 기업 측 처벌도 강화되는 만큼 기업들도 변화되는 환경에 점차적으로 적응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