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무능(無能)에 제 밥그릇 챙긴 대우건설
입력 2018.02.09 07:00|수정 2018.02.12 09:43
    호반, 모로코 빅배스에 '인수 포기'
    산은 몰랐다 변명에 '관리 무능' 비판
    대우건설, 다시 산은 품으로
    "매각 무산 가장 반길 것"
    • 매각 성사를 눈 앞에 둔 대우건설은 빅배스를 단행했고, 부담감을 느낀 호반건설은 결국 대우건설 인수를 포기했다.

      매각 파행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매각자인 KDB산업은행의 무능, 대상인 대우건설의 이기심이 기저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는 비판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산은은 대우조선해양 사태 당시의 관리 부실을 되풀이했고, 대우건설 경영진은 제 밥그릇을 지켰다.

      메가 딜(Deal)을 처음으로 진행해 본 호반건설도 디테일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대우건설 관리 못한다' 보여 준 산은

      산은은 대우건설 매각 파행과 관련해 공식 자료를 내놓고 있지 않지만, 대우건설의 실적 발표 전까지 모로코 사피(Safi) 복합화력발전소 손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매각 논의는 작년 3분기까지의 자료를 기반으로 진행해 지난 달에 발생한 손실에 대응이 늦었고, 대우건설의 해외 사업지 현황을 24시간 점검하지는 않기 때문에 즉각적인 대응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자본시장에서는 산은의 관리 부실을 지적한다. 대우건설에 ‘경영관리단’이라는 산은 직할 부서를 만들어 인력을 파견, 보고를 받고 있음에도 손실을 사전에 감지하지 못했다는 변명이 말이 되느냐는 비판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산은은 대우건설의 최대주주로서 기업 가치를 개선해 값을 올려 팔아야 하는 입장임에도 '정상 기업인 대우건설에 이래라 저래라 하기가 편치 않다'는 얘기를 해왔다"며 "산은이 이번 사태에 대해 몰랐다고 말하는 것은 '대우건설 관리가 불가능하다'고 시인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산은은 인수 후보들과 매각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대우건설 통제에 어려움을 겪었다. 대우건설의 해외 사업 위험을 향한 시장 우려가 큰 만큼, 인수 후보자들은 "관련 정보를 공개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했다. 산은도 정보 공개 필요성에 일부 동의했지만, 인수 측은 결국 자료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대우건설은 산은의 지시가 있었음에도 “양해각서(MOU)를 작성, 보증금을 걸고 정밀 실사하기 전까지 가상데이터룸(VDR) 등 초기 수준 이외의 영업 비밀은 공개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 후보들은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산은은 “지난 2016년에 빅배스를 한 차례 단행했고, 이후 작년 3분기까지의 실적에는 문제가 없다”며 남은 매각 절차를 빨리 진행하자고 종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매각 측 회계 자문을 맡은 EY한영도 책임을 회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다시 '주인 없는 회사' 됐지만, 미소 지을 대우건설

      비록 매각은 무산됐으나 대우건설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다. 호반건설은 인력 효율성을 중시하기에 대우건설을 인수한 뒤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됐다. 대우건설 노동조합이 호반건설에 매각되는 것을 반대했던 주된 이유다. 대우건설 임원 일부가 회사의 약점을 누설하고 다닌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일각에서는 대우건설의 빅배스 시점(2017년 4분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대우건설은 모로코 발전소 시운전 과정에서 문제가 된 고압급수가열기를 다시 주문제작하기로 결정하고 3000억원가량의 관련 손실을 한꺼번에 인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부품 고장으로 인한 공기 지연·원가 추가 투입 등은 시간 흐름에 따라 나눠 반영해도 될 것"이라면서 "매각을 앞두고 기업 가치를 올려도 모자랄 상황에 대규모 적자를 선 반영해 매각가격의 할인 요인을 자진 제공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우건설 특유의 조직 문화가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대우건설 차장 급 이상 직원들은 대부분 옛 ㈜대우 건설부문 시절 입사자들이다. 의사결정권을 지닌 상급자들의 호반건설에 대한 반감이 컸다는 후문이다.

      아직도 '대우가 어떤 회사인데'라는 생각을 가진 직원들이 "주택 시장에서 맞붙는 경쟁자에게 영업 비밀을 내줘도 되느냐"며 정보 공개에 강하게 반발했다는 얘기다. 대우건설 경영진의 지나친 자부심은 지난 2006~2010년 금호그룹 산하에 있었을 당시에도 인수 후 통합(PMI)을 가로막았던 요인으로 작용했다.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특혜 의혹 및 헐값 매각 논란이 일었으니 대우건설 매각은 당분간 다시 추진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면서 "다시 주인 없는 회사가 돼 2019년까지 시간을 벌게 된 대우건설 경영진들은 속으로 웃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해외 플랜트 무지 드러난 호반건설…"차라리 잘됐다" 평가도

      첫 메가 딜 성사를 눈앞에 뒀던 호반건설은 결국 발을 뺐다. 목표했던 대우건설 인수는 물론 M&A 참여 시 가외(加外) 소득으로 여겨지는 '장부 열람'에도 실패했다. 특혜의 수혜자로 낙인 찍힌 탓에 실무자들은 마음고생을 해야 했고, 실사 등 입찰 절차 이행에 따른 비용도 지출했다.

      특히 국내 기반의 호반건설이 해외 플랜트 시장에 대한 정보에 너무 어두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M&A업계 관계자는 "호반건설은 모로코 발전소 손실 반영 소식이 알려진 뒤 부랴부랴 대책 회의에 돌입했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위험이 아니다'라는 결정을 내렸다"면서 "이는 호반건설이 까다로운 해외 사업의 잠재 부실 위험에 안일하게 대처한 결과"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일찌감치 발을 빼 다행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다른 관계자는 "대우건설 M&A 절차에 참여하는 내내 각종 논란에 시달려 온 호반건설은 예상보다 빠르게 발을 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며 "대우건설의 해외 사업장은 모로코를 포함, 10여개에 이르는데 추가 손실이 얼마나 발생할 지 모르는 상황이라 차라리 지금 손을 떼는 편이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호반건설의 의지와 무관하게 끝난 딜이기 때문에 회사 평판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면서 "인수금융 조달 과정에서 호반건설이 국내 자본시장에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를 준 측면은 어느 정도 무형 자산으로 남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