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 column]
産銀, 이제 구조조정도 맡기기 어려워졌다
위상호 기자 | wish@chosun.com | 2018.02.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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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존재의미 찾고 있지만 강점이던 기업 구조조정도 흔들
관리 안 된 대우건설 매각 실패…옛 대우그룹 망령 현재진행형
한국GM 등 앞으로 구조조정도 먹구름…보신주의 강화 우려

그간 산업은행은 존립근거 강화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왔다. 변화된 시장환경에서 살아남고자 과거처럼 산업 구조조정 역할이 주목받는 것을 경계했다. 신산업 육성 등에서도 활약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 대우건설 매각 실패로 장기인 '구조조정'도 믿고 맡기기 어렵다는 인식을 남겼다. 이래서야 한국GM 사태 등을 제대로 다룰 수 있겠느냐는 우려만 커졌다.

호반건설은 대우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 8일만에 산업은행에 인수 포기 의사를 전달했다. 대우건설이 지난 4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모로코 사피 복합 화력 발전소에서 발생한 3000억원가량의 부실을 공개한 여파다.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지분 50.75%를 보유한 최대주주지만 대우건설은 '주인 없는 회사'로 취급 받았다. 이번 매각때도 산업은행은 회사가 발표하기 전까지 모로코 부실을 까맣게 몰랐다. 지난해 ‘재무통’ 송문선 전 산업은행 부행장이 사장 자리에 오르며 부실을 철저히 관리할 것이란 기대도 있었으나 효과가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산업은행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늦어질 때도 호반건설의 책임을 거론하는 등 시간에 쫓기는 모습을 보였다.

금호타이어 매각 때도 마찬가지였다. 상표권 사용 계약을 면밀히 검토하지 못한 채 매각이 추진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수후보들에 상표권 사용 희망 조건을 받았다. 여기에 박삼구 회장의 우선매수권까지 박탈하겠다고 압박하자 갈등의 골이 깊어졌고 결국 매각은 실패했다.

산은이 지닌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없지는 않았다. ‘반드시 비싸게 판다’에서 ‘반드시 판다’로 기조를 바꿨다. 심리적 저지선으로 여겨지던 ‘주당 1만원’ 문턱도 한참 아래로 낮췄다. 매각을 결정하는 시점에서 인수후보들의 다양한 제안을 검토할 수 있는 길도 미리 열어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관리회사 컨트롤'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이런 노력들이 물거품이 됐다. 그간의 시도들이 매각 성공을 위한 기여라기보다는, 성공 후 책임 회피를 위한 장치로 돼 버렸다.

문제는 앞으로다. 대우건설 매각 무산으로 인해 '대우3사'(대우건설·대우조선해양·한국GM)의 숙제들이 모두 원점으로 돌아왔다. 대우그룹의 '망령'이 부활한 모습이다.

우선 대우건설은 주인 없는 회사로서의 신분이 연장됐다. 고위 경영진들엔 임기연장이라는 여유가 주어졌다. 그러나 회사 자체로는 더 깊은 암흑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지금보다 재무사정이 악화하더라도 산업은행이 관리를 못해온 곳에 추가로 지원할 수도, 지원할 리도 없다.

대우조선해양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한진해운과 형평성 논란을 감수하고서도 지금까지 회사를 이끌어 왔지만 조선 빅3 유지에 대한 당위성은 약해지고 있다. 1등 그룹 후광이 있는 삼성중공업이나 그룹이 백방으로 뛰고 있는 현대중공업만큼의 경쟁력을 기대하긴 무리다.

시작도 안한 한국GM 구조조정은 아예 선수조차 빼앗겼다. 글로벌 GM 본사는 산업은행이 수조원 규모 한국GM 유상증자에 참여하며, 대출도 재개하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GM이 꺼낼 것으로 예상됐던 수긴 하지만 산업은행이 대응에 나설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 외에 덩치가 커서, 혹은 고용이 많이 달려 있어서 등 다양한 이유로 손대지 못했던 구조조정 대상 기업들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산업은행이 아니라 시중은행이었다면 이런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시중은행 채권단이 주도했던 하이닉스 매각은 대표적인 구조조정 성공 사례로 꼽힌다. 신한금융지주였다면 다소간의 손실과 비판을 감수하고라도 일찌감치 부실기업을 정리했을 것이다. KB금융지주는 카자흐스탄 BCC 손실로 교훈을 얻은 후에야 글로벌 진출에 다시 나서고 있다.

산업은행 임원들은 몇 년 전부터 ‘산업은행이 구조조정만 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강조하곤 했다. 구조조정은 어차피 산업은행만한 곳이 없고, 다른 역할도 잘 할 수 있다며 존재 의미를 부각시켰다. 매년 신년사에서 빠지지 않던 구조조정 계획도 올해는 그 비중이 줄었다. ‘4차 산업혁명’, ‘혁신성장’ 등 단어가 빈자리를 채웠다.

그러나 가장 전문성을 가지고 있던 중후장대 산업의 구조조정조차 시원스레 처리하지 못한다는 점이 드러난 상황에서 신사업 지원 역할을 잘 해낼지는 미지수다. 정부 정책을 가장 잘 이해한다고 평가 받는 이동걸 회장이 앉아 있지만 정부와 어떤 교감을 나누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산업은행은 앞으로도 특유의 보신주의, 윗선 눈치보기 문화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임원들에 대한 부족한 대우, 직원이 만족하지 못하는 성과 보상 체계, 과도한 책임 부과 등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산업은행이 구조조정에서조차 갈피를 못 잡는 사이 ‘조금만 믿어주면 조직이 금방 힘을 낼 것’이라던 직원들의 희망도 또 한번 멀어지게 됐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2월 09일 07:0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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