令 세우기 혈안된 금융당국...시장에선 '종이 호랑이' 신세
입력 2018.02.22 07:00|수정 2018.02.23 10:03
    "관치 폐해 끊자"금융사들 버티기
    전문성 갈수록 떨어지고 신뢰 하락
    • KB금융지주ㆍ하나금융지주와 금융감독원간 힘겨루기가 '채용비리' 논란으로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결국 마음에 들지 않는 금융회사 CEO 문책이 최종 목표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게다가 금융당국은 지난해 김정태 회장의 3연임을 막지 못하고 물러서면서 체면을 구겼다. '이번에는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비장함이 느껴지는 상황이다.

      반면 민간 금융회사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서슬 퍼런 감독당국의 의혹제기에 주눅들지 않고 조목조목 반박하고 따져묻고 있다. "이번 기회야말로 관치(官治)금융의 오랜 폐해를 끊어내자"며 대동단결하는 모습까지 연상된다. 이미 자리를 잃은 다른 은행장들도 좀 더 버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정도다.

      결과와 무관하게 지금 금융 감독당국은 '권위'를 상실한 모양새다. 지난 정권들에서 금감원의 파워와 서슬 퍼런 칼날 앞에 벌벌 떨던 금융회사들은 보이지 않는다. 말 그대로 '종이호랑이'. 이러다 보니 이번 KB-하나금융지주 채용비리를 대하는 감독당국의 태도는 단순히 금융사 CEO 문책 수준이 아닌, 잃어버린 영(令)을 세우기 위한 작업으로 풀이된다.

      왜 이렇게 권위를 잃었을까. 시장에서는 여러 원인이 거론된다. 첫째는 감독당국이 자랑해야 할 정교함과 전문성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들은 "순환보직이 오래됐고, 전문성이 점점 떨어진다" 며 "예전 같으면 감독원 관계자들이 먼저 알고 이행사항을 미리 던져줄 정도였는데, 지금은 규정 이해에도 급급한 모습이다”라고 입을 모은다.

      새 정부가 출범하는 과정에서 '적폐청산'이 감독당국의 소위 '기술자'들을 몰아낸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오랜 경륜이 있는 주요 인력들이 뒤로 밀리고, 그간 한직에 있던 인물들이 대거 중용되면서 전문성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금감원 조직이 ‘비리’의 온상으로 지적되다 보니 소위 말하는 ‘명분’에서도 밀린다. 이번 KBㆍ하나금융 사태를 보는 금융권에선 ‘본인’들이나 잘하지 하는 비아냥마저 들린다.

      직원들의 자긍심도 예전 만 못하다. 요즘 직원들은 임원으로 승진해 봤자 국장으로 있는 것만 못하다고들 한다. 정권이 바뀌면 언제 잘려 나갈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 임원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모 인사는 임원으로 승진한 지 채 일년도 안돼서 옷을 벗기도 했다.

      금융사를 다루는 방식은 ‘아마추어’다. CEO 망신주기, 채용비리 등 흠집내기 등을 통해 낙하산 식 인사 못지 않은 폐해를 만들고 있다. 금융사 CEO 입장에선 금감원의 주장을 인정하면 본인의 죄를 인정하는 꼴이 되니 끝까지 버틸 수밖에 없다. 차라리 낙하산으로 찍어 내려 보내달란 말이 나온다.

      이러니 일이 틀어지면 금감원을 탓하는 일이 잦아졌다. 각종 인허가에서 탈락하면 일단 금감원에 밑 보인 것 없느냐란말이 돌아온다. 오죽하면 국토교통부가 관장하는 주택기금 사업자 선정에서 하나은행이 탈락하는 일에도 금감원 탓을 한다. 금감원은 그만큼 신뢰받지 못하는 조직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