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드십코드' 적용 첫 주총 ...이사 선임 공방 예고
입력 2018.02.23 07:00|수정 2018.02.22 21:35
    23곳 도입‐ 40곳 참여 계획 제출
    이사·감사 선임때 공방 치열할 듯
    주주 안건 반대율 높아질지 관심
    최대 변수 국민연금, 하반기 도입
    • 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의 주요 관전포인트 중 하나로 '스튜어드십코드'가 떠올랐다. 지난해 스튜어드십코드가 제정된 후 첫 주총인만큼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부각되고 있다.

      기관투자가들이 더 이상 '거수기'로 남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논란이 되거나 물의를 일으킨 사내·사외이사 선임때 기관 주주들의 큰 반발이 있을 전망이다. 다만 최대 기관 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의 스튜어드십코드 참여가 올해 하반기로 미뤄져 '파장'이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스튜어드십코드는 일종의 행동강령으로, 기관투자가들이 자산을 맡긴 수탁자를 위해 기업에 적극적으로 관여(engagement) 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수익률을 더 높이기 위해 기업을 편법 운영을 감시하고,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라는 지침이다.

      지난해 제정된 스튜어드십코드엔 현재 23개 미래에셋자산운용·한국투자신탁운용·큐캐피탈파트너스·스틱인베스트먼트 등 주요 운용사·투자사가 참여하고 있다. 삼성자산운용·KB국민은행·IBK투자증권 등 대형 운용사와 은행·증권사들도 40여곳의 기관도 참여 계획서를 제출한 상태다.

      주요 연기금 중에선 한국교직원공제회와 지방행정공제회, 한국투자공사(KIC)가 도입을 결정하고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이다. 행정공제회의 경우 올해 주총부터 스튜어드십코드에 의거해 의결권 자문사로부터 자문을 받고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방침이다.

      국내 기관 주주의 정기주총 안건 반대 비율은 2013년 0.7%, 2014년 1.5%에 그쳤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주도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정기주총 안건의 19.4%에 대해 반대를 권고한 2015년에도 기관 주주의 반대표 행사율은 1.5%에 불과했다.

      스튜어드십코드는 7개 원칙 중 5번 원칙으로 '충실한 의결권 행사'를 규정하고 있다. 의결권 행사 지침과 절차, 세부기준을 마련해 공개하고, 의결권 행사의 구체적인 내용과 사유도 공개해야 한다. '묻지마 찬성표'를 던지기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기관들은 공정한 '의결권 행사 사유' 기재를 위해 지배구조원, 서스틴베스트, 대신경제연구소 등 의결권 자문기관을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스튜어드십코드에 참여한 주요 기관은 대부분 이들 중 한 곳 이상과 자문계약을 맺고 있다. 행정공제회의 경우 세 곳으로부터 모두 자문을 받을 계획이다.

      회사와 기관 주주들의 표 대결이 가장 치열하게 펼쳐질 안건으로는 역시 이사회를 구성하는 사내·사외이사 선임이 될 전망이다. 그 중에서도 금융권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은 하나금융지주다. 김정태 지주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을 두고 각 기관별로 '표심'이 갈릴 전망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노사갈등에 이어 정부와도 마찰음을 내고 있는 김 회장을 재신임할지 여부에 대해 기관별로 의견이 다를 수 있다"며 "지난 2015년 연임 때에도 이례적으로 1586만여주의 반대표(의결권 있는 주식 수의 약 5.5%)가 나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백복인 현 사장이 단독 추천된 KT&G 차기 사장의 연임 여부도 주총에서 판가름날 전망이다. 주요 주주 중 하나인 IBK기업은행이 선임 절차에 이의를 제기하며 이슈가 불거졌다. KT&G는 53%의 지분을 보유한 외국인 주주를 중심으로 주주 설득에 집중할 것으로 전해졌다.

      KB금융그룹 노동조합이 추진 중인 노동이사 선임도 주요 관심사 중 하나로 꼽힌다. KB금융 노조는 이번 정기주총에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를 사외이사로 추천할 계획이다. 일부 의결권 자문사는 벌써부터 금융회사 사외이사로서의 전문성을 의심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임시주총에서 노조가 추천한 하승수 변호사는 정당활동 및 시민단체 활동 이력으로 인해 의결권 자문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헸다. 당시 ISS는 하승수 변호사 선임에 대해 반대를 권고했고, 실제 찬성표도 17.6%에 그쳤다.

      더욱 큰 이슈는 감사 선임이다. 감사 선임엔 최대 주주의 의결권이 최대 3%로 제한돼 기관 및 소액주주들의 발언권이 커진다. 지난해 국민연금 등 기관 주주들의 반대로 효성의 감사인 선임이 주총에서 무산된 일도 있었다. 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오는 3월 정기주총에서 감사인을 선임해야 하는 상장사는 530여곳에 이른다.

      한 상장사 IR 담당자는 "주주총회 안건이 상정되면 안건별로 주주들에게 최대한 상세한 배경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할 계획"이라며 "섀도우보팅제 폐지와 더불어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이 겹치며 이전처럼 무난한 주총은 점점 기대하기 어려워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정기주총 시즌에 '스튜어드십코드'가 최대 변수가 될지 회의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당초 올 1월 스튜어드십코드를 전면 도입할 것으로 예상됐던 국민연금이 굼뜬 모습을 보이고 있는 까닭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고려대 산학협력단에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위한 용역을 발주했다. 이르면 12월 결론을 내고 1월 기금운용위원회 결의를 거칠 전망이었지만, 현재 검토가 늦어지며 올해 하반기로 도입 시기가 미뤄진 상황이다.

      국민연금은 일단 올해까지는 기존의 내부 의결권 행사 지침에 따라 정기주총에 임할 계획이다. 이 때문에 이전 주총때의 모습과 크게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을 거란 전망이 많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국내 상장사 270여곳의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이 늦어지면 그만큼 시장에 미치는 파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지배구조 불확실성으로 인한 코리아디스카운트를 완화하려면 스튜어드십코드를 '어떻게·제대로·효과적으로' 도입할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야 한다"며 "도입 후 첫 해인 올해 주총 시즌에 기관 주주들의 움직임을 지켜볼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