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시장 큰손 된 연기금·공제회
입력 2018.03.14 07:00|수정 2018.03.16 09:23
    벤처투자 시장에 1조 푼 연기금·공제회
    민간 중심 벤처 투자 생태계 기대감
    대형사에 유리한 출자사업 우려도
    • 연기금과 공제회가 벤처투자 시장의 큰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주요 출자자인 모태펀드보다 많은 자금을 풀었다. 민간 중심의 벤처 생태계가 조성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선 구색 맞추기식 출자사업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 조성된 신규 벤처펀드에 출자한 출자자 중 연기금·공제회가 차지하는 비중은 28.3%로 집계됐다. 최근 2년간 전체 신규 펀드 조성액 가운데 9% 안팎을 담당했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증가한 수치다.

      실제 연기금과 공제회는 벤처투자 시장에 푸는 자금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2015년 3263억원 수준이었던 출자사업 규모는 지난해 9210억으로 크게 늘었다. 1조원에 가까운 자금을 벤처자금으로 푼 셈이다.

      벤처투자 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벤처펀드 출자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연기금·공제회들이 최근엔 벤처펀드 운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올해도 예년 수준으로 출자사업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국민연금은 3000억원을, 군인공제회는 200억원을 출자한다.

      벤처·스타트업 활성화라는 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춘 결과다. 지난해 정부는 모태펀드를 통한 대규모 벤처펀드 조성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연기금·공제회의 벤처펀드 출자를 독려했다. 개별 펀드에 매칭할 민간 자금이 부족할 수 있다는 지적을 고려했다.

      수익률 면에서 재미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안정적인 자산운용을 추구하는 연기금·공제회를 움직인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1999년부터 2013년까지 해산된 벤처펀드의 평균 수익률(IRR)은 3.8% 수준에 그쳤지만 최근 3년간은 IRR이 7% 수준까지 크게 올랐다.

      생각보다 투자 리스크가 크지 않다는 점도 고려됐다. 한국벤처투자는 모태펀드가 출자한 펀드(청년창업·재기지원·지방기업·지식재산권·4차 산업혁명 분야)의 경우 모태펀드가 출자액의 10%까지 손실을 우선 충당한다는 조건을 두고 있다. 연기금·공제회가 참여한 이른바 추경 펀드 대부분이 이에 해당돼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일단 벤처투자 업계는 이 같은 분위기를 반기는 모습이다. 모태펀드 등 정책 자금이 주도하던 시장에 연기금·공제회 등 민간자금이 들어오면서 민간 중심의 투자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모태펀드 자금과 달리 공적 성격이 덜 하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인 투자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선 대형사만 유리한 시장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연기금·공제회가 벤처펀드 출자사업을 구색 맞추기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벤처펀드 출자사업을 진행한 경험이 적은 데다 최소한의 수익률은 맞춰야 한다는 점이 작용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연기금·공제회에서 돈을 받은 벤처캐피탈 업체들은 대부분 선두권 업체로 분류된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연기금·공제회는 벤처 경험이 없어 대형사 위주로 돈을 준다"며 "VC 중에서도 안정 투자를 하는 대형사에만 돈을 준다면 모험자본을 늘려 초기 스타트업을 육성하겠다는 당초 정부 목표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