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다시 꺼낸 코파펀드ㆍ러브콜 받을 SK·CJ, 응답은 미지수
입력 2018.03.19 07:00|수정 2018.03.21 12:34
    코파펀드 재활용 공식화…최대 1조 출자
    해외 성과 많은 SK·CJ 등 제안 이어질 듯
    국민연금 후광 퇴색…기업 화답할지 의문
    • 국민연금이 코퍼레이트파트너십펀드(코파펀드) 카드를 다시 꺼냈다. 앞서 큰 성과가 없었지만 최근 우리 기업들의 해외 진출 욕구가 커지며 코파펀드 재활용을 공식화했다.

      코파펀드는 전략적투자자(SI)의 의지에 따라 성패가 갈리기 때문에 운용사들은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국내 대기업들을 앞다퉈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인기가 많을 곳으로 SK나 CJ그룹 등이 꼽힌다.

      다만 이들 기업이 선뜻 국민연금과 운용사의 제안에 '화답'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7~8년전 코파펀드 도입시기와 달리 대기업의 선택지가 크게 늘었고,  국민연금의 위상과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코파펀드는 국민연금과 기업이 1대1로 자금을 매칭해 해외 기업에 투자하고 과실을 나눈다는 취지로 2011년 도입됐다. SK, 롯데, CJ, 포스코 등 기업들이 호응해 20곳가량의 코파펀드가 설정됐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까다로운 투자구조 때문에 기업들은 활용을 검토하다 중단하기 일쑤였고, 투자 한 번 못하고 청산하는 사례도 있었다. 사실상 거의 사문화한 제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 그럼에도 국민연금은 지난달 공고를 통해 올해 코파펀드에 최대 1조원을 출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 움직임이 커지는 흐름에 맞춰 코파펀드 활용 기회를 잡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코파펀드를 운용했던 GP 관계자는 “과거 코파펀드 운용 성과가 미미했지만 앞으로도 좋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국민연금은 이 전에도 좋은 제안이 오면 코파펀드를 하겠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이번 공고를 통해 의지를 공식화 한 셈”이라고 말했다.

      일부 운용사들은 반색하며 벌써부터 SI 물색에 나서는 분위기다. 코파펀드는 다른 펀드와 달리 GP의 역할보다는 SI의 거래 발굴 능력과 의지가 중요하다. 해외 진출 의지가 크고 성과가 있는 SI와 손을 잡는 것이 운용 성패를 좌우한다. 자연스레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 SK나 CJ, 롯데 등 그룹들에 눈길이 모인다.

      ‘딥체인지’를 표방한 SK그룹은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해외 사업 확장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글로벌’, ‘4차 산업혁명’을 키워드로 인수 업체를 물색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신년회에서 계열사에 M&A 속도전을 주문하기도 했다.

      과거 코파펀드(에스케이케이디비 글로벌투자파트너쉽) 성과가 전무했지만 당시는 최태원 회장이 부재라 투자 결정부터 쉽지 않았다. 지난해 SK㈜는 미국 유레카 투자 당시 한국전력의 코파펀드 자금 일부를 활용하기도 했다.

      CJ그룹도 이재현 회장이 돌아온 후 적극적인 글로벌 확장 의지를 보이고 있다. 물류, 엔터테인먼트 등 그룹 주력 사업에 공을 들이는 상황이다. CJ는 가장 적극적으로 코파펀드(스틱씨제이글로벌투자파트너쉽)를 활용한 그룹이기도 하다. 중국 룽칭물류, 브라질 세멘테스셀렉타, 베트남 물류사 제마뎁 등 거래에서 코파펀드 자금을 썼다. 기존 코파펀드 투자기간은 완료됐다.

      롯데나 한국전력 등도 적극적으로 코파펀드를 활용했거나 검토했었던 기업이다. 풀무원, 동원, 넥센 등 코파펀드를 결성했던 곳들도 운용사들이 관심을 가질만 하다. 국민연금엔 운용사는 물론 중소형 기업들의 문의도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모펀드(PEF) 운용사 관계자는 “코파펀드는 대기업과 연을 맺고 싶어하는 중소형 GP들의 관심이 특히 높은 것으로 보인다”며 “크로스보더 거래를 많이 하려는 SK, CJ, 동원 등에 제안하려는 곳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과거보다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코파펀드 도입기만 해도 대기업들의 존재감은 지금만 못했고 '세계적인 큰 손'인 국민연금 자금을 활용한다는 후광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국민연금과 함께 해도 약간의 안정성을 더하거나 금리 상승기에 쓸 선택지가 하나 늘어난 느낌에 그친다.

      우선 국내 대기업들의 선택지가 크게 늘었다. 당장 SK, CJ가 해외로 나간다면 돈을 대고 싶어할 유동성 많은 글로벌 PEF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다수의 PEF들이 최근 아시아 펀드를 조성한 터라 대기 자금만 수십조원에 달한다.

      게다가 이들은 글로벌 투자시장에서 쌓은 오랜 투자경험, 다양한 회사운영 노하우와 글로벌 네트워크까지 대기업에 제공할 수 있다. 국내 투자자들로서는 갖추기 힘든 역량들이다.

      국내도 마찬가지. SK의 경우 미래에셋증권 같은 자본금 8조원대 초대형 IB가 직접 해외 공동 투자를 제안한 이력도 있다. 대기업이 재무적투자자(FI)를 유치하는 사례는 늘지만 그 자금이 꼭 국민연금 돈일 필요는 없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국민연금이 시장 상황 변화를 감내, 과거보다 조건을 양보하기도 쉽지 않다. 국민연금은 ‘투자원금 손실 최소화 및 수익우선배분에 적합한 투자 구조’를 원한다. 국민의 노후자금 투자라는 명분상 불가피하다.

      하지만 투자 기업을 키우는 것은 SI 몫인데 수익은 국민연금이 우선적으로 가져간다는 점에 불만을 표하는 목소리가 과거에도 적지 않았다. 일부 대기업은 국민연금의 까다로운 투자조건 요구에 "차라리 채권을 찍는게 낫겠다"며 반발한 이력도 있다.

      또 그간 국민연금이 정치권 이슈와 엮은 '풍파'도 무시하기 어렵다.  총수가 있는 기업으로서는 행여 국민연금 돈을 투자받았다가 나중에 예상치 못한 어떤 건으로 '비난'을 받을지, 이른 바 '국민연금 리스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

      국내 유력 GP들에게도 코파펀드는 썩 매력적이지 않다. GP의 역할은 모니터링 수준에 그치고, 해외 거래는 기업공개(IPO) 등 투자회수도 어렵다. 대형 블라인드 PEF를 관리하는 것도 벅찬 상황에서 운용역량을 보이기 어려운 코파펀드에 힘을 쏟으려 할 리 없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역량이 안 되는 운용사들이 대거 지원하고, 성과도 더 떨어뜨리게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