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딜에 손댄 삼성물산…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한화종합화학' 매각
입력 2018.03.20 07:00|수정 2018.03.21 12:33
    삼성 측 까다로운 조건에 인수 후보 줄줄이 '백기'
    "삼성이 딜을 접을 명분을 만드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석방 후 현미경 경영 활동 나선 이재용 부회장
    • 삼성의 한화종합화학 지분 매각이 이재용 부회장의 석방 이후 삼성이 먼저 까다로운 조건들을 제시하며 꼬이기 시작했다. 단 한곳의 후보만을 남기고 모두 포기했다. 현재로선 거래가 성사될지도 미지수다.

      이 거래의 시작점이 되는 2015년 삼성ㆍ한화 빅딜은 사실 이재용 부회장의 첫 공적으로 평가받는다. 이건희 회장에 이어 집권(集權)한 이 부회장은 비주력 계열사들을 과감히 정리했다. 한화종합화학(옛 삼성종합화학) 매각도 같은 목적으로 진행됐다. 삼성그룹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회사였지만 한화는 이를 주력사업으로 성장시켰다. 삼성과 한화 모두 윈-윈(Win-Win)한 거래로 평가받고 있다.

      누구도 예상 못했던 빅딜은 오너가의 관계 덕분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건희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친분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아버지 세대에 이어 이재용 부회장과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도 같은 하버드 출신으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삼성은 자금력이 부족한 한화를 배려해 삼성종합화학 지분 일부를 남겼다. 그리고 이 잔여지분은 삼성과 한화를 연결하는 유일한 끈이기도 했다.

      이후 지난해 초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됐다. 빅딜의 주체인 미래전략실도 해체됐다. 그룹에 현안들은 쌓여갔지만 그룹의 컨트롤타워는 없었다. 그 와중에 삼성은 삼성물산과 삼성SDI가 보유한 조단위 규모의 한화종합화학 지분 매각을 결정했다.

      거래가 가시화될 무렵부터 재계와 투자시장에서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왜 지금 이 거래를 하려 하는가?" 였다.  삼성이 한화에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시기는 2022년, 앞으로 5년 뒤에 팔아도 무방했다. 오너간 관련 거래, 그것도 조단위 지분매각을 그룹 총수가 부재 상황에서 단행할 필요성이 무엇이냐는 점이었다.

      표면상 한참 석유화학 업종의 성과가 좋은 지금 지분 매각을 지금 단행,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신사업에 투자하겠다는 목표였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잔여지분의 소유자이자 그룹 지주회사격인 삼성물산의 어떤 특정 자금소요가 불가피한터라 이뤄진 거래라는 해석이 많았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물산과 옛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삼성SDI가 보유하게 된 삼성물산의 지분2.13%(404만2758주)을 두고 조사에 착수했다. 기존에 공정위는 삼성SDI가 보유하게 된 지분을 그룹의 순환출자고리 '강화'로 해석했는데, 지난달 순환출자고리가 '형성' 된 것으로 재해석했다. 결국 삼성SDI가 삼성물산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시가 기준 약 5000억원 상당이다.

      그리고 이런 처분이 나올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고 예측 가능한 수준이었다.

      사실 삼성물산은 삼성그룹 오너일가와 계열사가 지분의 40%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2.13% 지분을 팔아야 한다고 해서 경영권을 위협받을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이 지분이 외부에 풀리는 것은 삼성물산에도 부담이다. 자사주 매입으로는 사들일 수 없다보니 당장 삼성SDI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시간외대량매매(블록세일) 또는 장내 매각 정도다. 삼성SDI가 블록딜을 추진할 경우 할인율을 적용해 시가보다 싼 값에 매각되고 장내매각을 추진한다면 오버행 이슈를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한때는 20만원에 육박하던 삼성물산의 주가는 10만원 대 초반까지 떨어져 있다. 그리고 합병 이후 그룹 지주회사 성격이 된 삼성물산의 지분가치 상승은 많은 이들이 예측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삼성물산은 현행법상 SDI가 보유한 지분을 자사주로 사올 수 없지만 자사주 매입 결의를 통해 장내에서 매집할 수 있다. 싼값에 시장의 풀린 주식을 자사주로 사들인다면 주주가치 제고라는 명분을 세울 수 있고, 이를 소각할 경우 이재용 부회장과 오너가의 지분율이 높아지는 효과도 노릴 수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물산의 실적이 개선되는 시점에서 당장 급하게 필요한 자금은 없었지만 향후 자금소요를 대비해 한화종합화학 지분과 사옥을 매각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비상장 회사 지분(한화종합화학)을 보유하고 있으니 기회비용을 생각해 매각하자는 취지였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 거래에는 지금은 사업지원TF 소속인 안중현 부사장 등을 비롯한 옛 미래전략실 출신 인사들도 관여했다. 삼성은 이런 점이 부각되는데 대해 거래 초기부터 과민한 반응을 나타내기도 했다. 결국 오너 부재 상황에서 전략적 결정을 내부적으로 내린 것 아니냐는 해석인 셈이다.

      다만 삼성의 사정에도 불구, 파트너였던 한화그룹은 당황했다. 사전 교감이 없었을 뿐 아니라 매각이 결정된 이후에도 삼성은 한화에 공식적인 통보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화는 삼성이 보유하던  24.1% 지분을 까다로운 재무적 투자자(FI)가 인수하는 것이 달가울 상황이 아니다. 사사건건 경영에 목소리를 내고 이사회 자리를 요구하는 등 다양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

      어쨌든 거래가 추진되면서 한화종합화학의 성장성을 높게 평가하고 또 한화와 삼성과의 관계를 맺으려는 후보들이 나타났다. 본입찰에는 총 3곳의 후보가 참여했고 지분가치는 약 1조5000억원까지 거론됐다. 그러나 삼성이 갑자기 거래조건을 뒤흔들면서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인수전에는 베인캐피탈 1곳만 남았고 삼성은 내주 전후로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변화가 있다면 이재용 부회장의 석방 뿐이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애초에 매각작업을 시작할 당시부터 삼성물산 내부에서 조건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는데 최종까지 조율이 되지 않은 상황으로 보인다"며 "이재용 부회장의 석방이 한화종합화학 지분매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분위기가 다소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고 했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은 경영복귀 이후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등 주요 계열사 경영에 관한 세부적인 내용을 챙기는 것으로 전해진다. 공격적인 사업을 펼쳐오던 금융계열사 또한 최근 들어 위험성 높은 사업에선 손을 떼는 모습이다.

      결국 오너 부재 상태에서 진행된 결정을 무위화 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상황이다.

      IB 업계 한 관계자는 "한화종합화학 거래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경영에 복귀한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관여하고 지시하는 게 상식적으로 맞지 않겠느냐"며 "부회장이 없을 때 어설프게 매각작업을 진행하려다 삼성이 시장에 대한 부족함만을 드러낸 거래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