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견제하는 나이키…반사이익 얻는 국내 신발 회사들
입력 2018.04.18 07:00|수정 2018.04.19 09:48
    대만 기업들 글로벌 신발 시장서 수십년 득세
    글로벌 회사, 대만 견제 위해 한국 기업 띄우기
    태광·화승 등 제조사는 물론 소재 기업도 부상
    VIG, 유영산업 인수…동진섬유는 MBK 등 관심
    • 우리나라와 대만은 글로벌 신발 제조 산업에서 오랜 라이벌 관계다. 1980년대 부산을 거점으로 대규모 생산 설비를 갖춘 한국이 앞섰으나 1990년대 이후부터는 대만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인건비와 인력난에 허덕이는 사이 대만 기업들은 중국에 대규모 제조 단지를 만들어 경쟁력을 키웠다.

      대만 파우첸(Pou Chen, 寶成工業)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브랜드의 제품을 제조자설계생산(ODM),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만드는 세계 최대 신발 제조사로 세계 스포츠·캐주얼 신발 시장에서 20%의 점유율을 차지한다. 다른 대만 기업 펭타이(FENG TAY)도 글로벌 업체로 성장했다.

      매출이나 이익 규모, 직원 수 등 모든 면에서 국내 기업과 격차가 벌어졌다. 파우첸은 작년 매출 10조원(2786억타이완달러)을 올렸고, 종업원 수도 수십만 명이다. 파우첸 자회사 유원공업(Yue Yuen Industrial, 홍콩 상장)의 시가총액만 해도 6조원에 달한다.

    • 대만이 장기간 신발 산업의 패권을 쥐면서 글로벌 브랜드들의 입지는 좁아졌다. 하청업체 수준을 넘어선 대만 기업들의 목소리는 커졌고, 글로벌 브랜드들의 가격 협상력은 줄어들었다.

      이런 역학 관계가 우리나라엔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글로벌 회사들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다시 키우기 위해 대만 기업의 대항마가 필요해졌다. 과거부터 라이벌 관계인 우리나라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남은 우리 기업들은 기술력이나 신뢰도 면에서도 다른 나라 기업들보다 앞서 있다.

      글로벌 브랜드의 전략적 선택에 힘입어 국내 신발 제조사인 태광실업과 화승엔터프라이즈의 실적도 지난 수년간 개선세를 보이고 있다. 받아 오는 물량이 많다 보니 매출은 늘고 비용 절감 효과도 나는 상황이다.

      태광실업의 신발부문 매출은 모두 나이키로부터 나온다. 2016년 기준 나이키 OEM 업체 중 세 번째(12%)로 많은 일감을 받았다. 아직 선두 그룹과 격차가 있지만 앞으로 간극을 줄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화승엔터프라이즈는 아디다스와 리복이 주요 고객이다. 베트남 자회사 화승비나는 2016년 아디다스의 운동화 부문 점유율 2위(약 13%)를 차지했다.

      두 기업 모두 생산 설비 자동화율이 높다. 신발 산업이 점차 다품종 소량 생산되고 패스트 패션화 한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M&A 업계 관계자는 “신발 산업도 패션 트렌드가 꺼지기 전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해졌는데 우리 기업들은 대만 기업보다 제품화 하는 기간이 월등히 짧아 앞으로도 좋은 실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최근 신발업계에선 패스트 패션, 동물 보호, 접착 기술 발달 등의 이유로 섬유가 가죽을 대체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앞서 대만 신발 회사가 득세했듯, 그에 납품하는 신발섬유 제조사의 위상도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파우첸 협력사 롱존그룹(LONG JOHN GROUP)이 세계에서 가장 큰 운동화용 섬유 공급 업체 중 하나로 알려졌다.

      국내에선 유영산업과 동진섬유 등이 신발용 섬유를 만들어 공급하고 있다. 우리나라 신발 제조사에 힘이 실리게 된다면 국내 섬유 회사들의 입지도 커지게 된다. 사모펀드(PEF)들도 이들 기업의 성장성에 주목했다.

    • VIG파트너스는 올해 초 2200억원을 들여 유영산업 지분 100%를 인수했다.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대비 10배 가치를 인정 받았다. 유영산업은 1993년 나이키의 협력업체로 등록된 후 다른 글로벌 브랜드에도 납품을 이어가는 우량 회사다. PEF는 성장성이 크고 회수 부담이 덜한 투자 기회를 잡았고, 회사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게 됐다.

      업계 1위는 동진섬유다. 2위 유영산업이 좋은 가치를 인정 받으며 팔리자 3대째 이어온 동진섬유도 매각을 검토했다. 관계회사 경진섬유와 묶어 팔고 유영산업 정도의 거래 배수를 인정받는다면 거래 금액이 7000억~8000억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MBK파트너스나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 등 대형 바이아웃 PEF들이 인수를 검토하기도 했다. 다만 대주주들은 최근 매각을 추진하지 않기로 마음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