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금융 구조조정 숙제 받은 금융당국, 심드렁한 자문사들
입력 2018.05.17 07:00|수정 2018.05.18 13:53
    정부, 신남방정책 핵심인 베트남 금융산업 개선 조력
    일감 내려 온 금융당국, 자문사 찾지만 반응 시큰둥
    ‘정부 일 돈 안되고 금융시장 안정성 장담 어렵다’ 지적
    • 정부가 추진하는 신(新)남방정책의 핵심 협력국인 베트남은 우리나라의 선진 금융기술을 이어받길 원한다. 협력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금융당국은 외부 자문사로부터 의견을 구하고 있다.

      반면 자문사들은 의례적인 협조는 하지만 적극적이진 않은 분위기다. 고생에 비해 얻어갈 과실이 많지 않은 데다 아직 베트남 금융 시장의 안정성을 신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남방정책은 정부 100대 국정 과제 중 하나다. 동남아시아 국가와 관계를 강화해 우리나라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전략이다. 베트남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에 이어 3월에도 방문할 만큼 중요한 파트너다. 올해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본격적인 협력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의 발걸음은 빨라졌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3월과 4월 잇따라 딩 띠엔 중 베트남 재무부 장관과 만나 금융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베트남은 금융 구조조정에 한국의 조력을 요청했고, 정부는 상반기 중 부실채권 관리, 금융사 구조조정 등 교육 프로그램을 제안하기로 했다.

      금융감독원이 실질적인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이다. 금감원은 최근 실무선에서 외부 자문사들을 불러모아 의견을 구하고 검토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 법무법인과 회계법인들의 파트너들이 회의에 참석했다.

      이전부터 금융당국과 손발을 맞춰온 자문사들은 있었다. 한 대형 법무법인은 일찍부터 금융당국, 국회, 국무총리실, 민간 전문가 등과 함께 부실채권(NPL) 유동화 등 우리나라 금융기법을 베트남에 이전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러나 다른 자문사들은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 모습이다. 금융당국 요청을 무시할 순 없기 때문에 얼굴은 비추지만 가욋일을 맡는 것은 달갑지 않다.

      과거엔 각 자문사 고위층과 금융당국과 관계 때문에라도 자발적으로 일을 나눠 맡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은 모든 자문사들이 수익성에 목을 매는 시대다. 자문사 입장에선 크게 돈이 되지 않는 정부 일을 맡는 것은 인력 자원 낭비로 여길 수 있다. 금융당국의 위신도 예전만 못한 상황이다.

      정부가 단순히 자문사들에 의견을 요구하는 것보다는 자문사들이 베트남 정부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자문사 관계자는 “언제나처럼 윗선 의중에 따라 금융당국도 일 맡길 곳을 찾은 셈”이라며 “부르니 가긴 했지만 참석자들은 별다른 발언 없이 자리만 채우다 돌아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열위한 베트남 금융시장의 현실도 자문사들을 머뭇거리게 하고 있다.

      베트남은 난립한 금융사를 정리해야 할 필요성은 크지만 아직 부실채권의 개념조차 없다. 가치가 없어진 자산도 장부에 써진 대로 값을 받으려 하니 평가 자체도 어렵거니와 가격 협상이 파행을 겪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금융사가 참여한 개발 사업도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간혹 국내 금융사와 베트남 진출을 위한 ‘포괄적 협력 협약’을 맺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은 자문사들이 얻어갈 실익은 많지 않다는 평가다.

      자문사들은 언제 선진화될 지 모르는 금융보다는 일반 산업에 더 눈독을 들이는 분위기다. 주요 대형 법무법인들은 모두 베트남에 진출했다. 회계법인들도 베트남 담당 파트너를 두고 사업 기회를 찾고 있다.

      베트남은 정부 기관들이 우량한 기업들을 많이 거느려 왔다. ‘공무원은 알아서 자기 먹을 것을 챙기라’는 호치민 주석의 유훈에 따른 것이다. 최근엔 이들 우량 기업들의 민영화나 매각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우량 독점 기업이 많아 대기업들의 관심도 높고 자문사에 일감을 맡기는 경우도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