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발전 없는 상장사협, 대놓고 편승한 현대차
입력 2018.05.18 07:00|수정 2018.05.21 09:27
    • 3년 전인 2015년에도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똑같은 주장을 했다. 우리나라 인수합병(M&A) 법제가 불공정하고, 이로 인해 국내 상장회사의 경영권이 헤지펀드의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돼있다는 것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미국계 헤지펀드 앨리엇매니지먼트가 반대의사를 표명하자 내놓은 '호소문'을 통해서였다.

      당시에도 상장사협의회는 '경영권'의 의미를 과잉 해석했다.

      '경영권'은 법에 명시돼있진 않지만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례, 상법 등을 통해 실체를 인정받는 권리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경영권이란 '이사 선임권'에 가깝다는 게 복수 지배구조 전문가들의 결론이다. 최대주주로서 이사회를 구성할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면,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경영권이 위협받고 있다'라고 주장하려면 앨리엇의 '공격'이 최대주주의 이사 선임권을 방해했는지 따져봐야 한다.

      상장사협이 제시한 소버린-SK㈜ 사례는 물론, 삼성물산의 합병에 대한 앨리엇의 반대, 이번 현대모비스 사태 모두 '이사 선임권 방해'와는 거리가 멀다. 엄밀히 따지면 앨리엇의 '공격'은 이사회의 의결에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판단한 소수 주주의 '견제권 행사'에 가깝다. 소수 주주의 견제권은 상법에서 일정 지분 이상 보유 주주의 주주제안권(제363조의2)·이사 해임 청구권(제385조) 등으로 보장받고 있는 권리다.

      소수 주주의 견제권을 거부한다는 건 결국 '최대주주의 지배를 받는 이사회의 결정에 모든 주주는 군말없이 따라야 한다'는 주장과 같은 말이다. 주주 자본주의를 통째로 뒤엎는 위험한 주장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에 불투명한 지배구조가 큰 몫을 하고 있다는 점도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특히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미국·유럽 등 선진 자본시장과는 달리, 상장 주식회사의 사유화·전횡·월권·배임 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국내 자본시장엔 경영권 보호장치가 시기상조라는 비판이 훨씬 더 많다.

      최근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고 있는 대한항공이 대표적인 사례다.

      상장사협을 바라보는 투자업계의 시선도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산운용사 중견 운용역은 "삼성과 현대차를 핑계로 보유 지분보다 훨씬 많은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휘두르겠다는 욕심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헤지펀드는 투기 자본, 반한국적 자본이라는 여론의 인식을 악용한 성명서"라고 비판했다.

      이런 상장사협의 입장문 발표에 대해 3년 전 삼성그룹과 올해 현대차그룹의 대응은 완전히 극과 극으로 갈렸다.

      3년 전 삼성그룹은 상장사협의 발표에 공식적으로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이용하지도 않았다. 거리를 두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은 상장사협의 자료를 수령, 이를 자사에 출입하는 기자단에 다시 배포했다. '참고 위해 송부드립니다'는 코멘트와 함께였다. 상장사협의 주장과 현대차그룹의 이익이 사실상 일치한다는 뉘앙스를 주기에 충분했다.

      상장사협의 주장은 주주 자본주의를 부정하면서 외국인 투자자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내용이었다. 외국인 주주 지분율이 47%에 달하는 현대모비스와 46%인 현대자동차가 굳이 이 시점에 상장사협과 한 배를 탈 이유가 있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이원희 현대자동차 대표가 17일 입장을 발표한 데 대해서도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현대자동차는 현대차그룹의 핵심 계열사이자 중추지만, 현대모비스 주주들에게는 엄밀히 말해 '자회사 중 한 곳'일 뿐이다. 현대자동차 대표가 '모회사' 현대모비스의 분할합병에 대해 왈가왈부 한 것에 대해 '자본시장의 관점에서는 월권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지경이다.

      결국 현대차그룹은 이번 분할합병 이슈를 '애국 vs. 국부유출', '친(親) 현대차그룹 vs. 친 헤지펀드', '미래 투자 vs. 근시안적 주주자본주의'의 찬반구도로 끌고 가려는 게 아니겠느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주주들이 원하는 건 투명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과 한쪽 주주의 희생이 따르지 않는 공정한 분할합병 비율이다. 이런 일련의 대응이 글로벌 기업인 현대차그룹 최고경영자급 인사의 판단으로 보기에는 아무래도 아마추어적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