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 배 타면 일사천리? 시장·주주와 소통해야
입력 2018.05.24 07:00|수정 2018.05.24 09:23
    더이상 정부 승인만으로 성공 못해
    주주와의 조율, 주총 표심 가를 것
    • 이번 현대모비스 분할합병 실패가 남긴 또 다른 교훈은 더 이상 정부의 긍정적인 'OK 신호'가 성공을 담보하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상장 주식회사라면 결국 자본시장과 주주와의 소통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전례'가 만들어졌다는 평가다.

      현대모비스 분할합병안을 두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수 차례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그는 "현대차 기업집단의 지배구조 개편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주주제안에 대해선 "금산분리에 위배된다"며 현대차그룹의 손을 들어주는 모양을 취했다.

      결과적으로 공정위의 긍정적 평가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외국계 의결권 자문기관은 물론, 국내 주요 자문기관 3곳도 모두 '반대 권고'를 내놨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의 분할합병안을 두고 '정부의 대기업 정책에 따라 지배구조를 선제적·자발적으로 개편하는 것'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웠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수도 있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불구, 2대 주주인 국민연금마저 '중립' 의결권 행사 카드를 만지작거렸다는 점에서 이미 한계가 뚜렷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의 '승인'만 받으면 성공이 담보됐던 과거와는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현대모비스가 분할합병을 철회한 직후 일부 비난의 화살은 공정위로 향했다. 그간 공정위가 보여준 '그린 라이트'는 무슨 의미였냐는 지적이다. 공정위는 순환출자 해소 등 지배구조 개선을 자발적으로 늦지 않게 진행한 것이 긍정적이며, 구체적 내용은 기업이 주주와 소통해 시장에서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공정위의 메시지에 대해 투자업계에서는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공정위의 메시지는 시장을 존중하겠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며 "정부 설득을 위한 '대의명분'보다는 이해관계가 다른 주주들의 입장을 얼마나 충실히 조율했느냐가 주주총회의 표심을 가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공정위의 입장은 앞으로의 대기업집단 지배구조 개편의 '이정표'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정부의 긍정적 평가와 시장의 긍정적 평가는 별개의 이야기임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주주와의 소통은 아예 회사 몫으로 넘겼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때 같은 논란을 더 이상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물론 이런 변화가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일각에서는 정책적 신뢰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만약 현대차그룹이 이후에 내놓을 2차 개편안마저 시장에서 가로막힌다면 섣불리 'OK' 싸인을 낸 공정위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한 연기금 투자담당자는 "앞으로 공정위의 말에 영(令)이 설지가 걱정"이라며 "먼저 지배구조 개편을 시작한 현대차그룹을 지렛대삼아 삼성그룹의 변화를 촉구하려던 김 위원장의 전략에도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 외에도 현재 한화, 효성 등 주요 대기업집단이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고 있다. 삼성그룹 역시 '조만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결단을 내리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모비스 분할합병안 철회가 대기업 지배구조 개편을 '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역할을 할지, 대기업들을 움츠리게 만들어 개혁 속도를 더디게 만들지는 지켜봐야 할 거란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