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지배구조 '일단 후진'...주주 이익 뒷전ㆍ불확실한 청사진 탓
입력 2018.05.24 07:00|수정 2018.05.25 09:39
    모비스·글로비스 합병 비율 논란
    현대차그룹과 정부만 좋은 개편안
    정 부회장 직접 내놓은 중장기 전략
    근거·현실성 떨어지는 '장밋빛 전망'
    재추진 땐 분할합병 비율 조절할 듯
    주주 이익되는 방안 나와야 통과될 것
    • 야심차게 추진했던 현대차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카드가 철회됐다. 시장의 목소리를 받아들여 재추진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방식·시기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여러 원인이 거론된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현대모비스 분할과 글로비스와 합병 비율이었다. 모비스 주주들이 손실을 볼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ISSㆍ글라스루이스와 기업지배구조원 등 국내 의결권 자문사들이 모두 반대했다.

      "승계를 앞둔 현대차 오너 일가나 조단위 세금수입을 기대할 수 있는 정부는 행복할지 몰라도 주주들은 소외된 개편안"이란 평가도 나왔다.

      여기에 현대차 그룹이 제시한 '청사진'의 불투명성도 원인으로 꼽혔다.

      ◆ 내년 전망치도 못내놓으면서..."수년 뒤 영업이익률 2배 이상"주장

      개편안에 대한 시장 반응이 시큰둥하자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모비스를 그룹 중심이자, 글로벌 부품 메이커 수준으로 키우겠다"고 전면에 나섰다. 정 부회장이 현대모비스 중장기 전략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모비스를 독일 보쉬(BOSCH), 일본 덴소(DENSO), 미국 델파이(Delphi)와 같이 키우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로써 현대차를 '완성차 회사'에서 '부품회사'로 탈바꿈 시키겠다는 의미도 됐다.

      지금 자동차 시장에서 부품회사들은 완성차 업체 이상의 영향력을 갖고 있다. 내연기관 중심이었던 자동차 시장이 미래차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된 탓이 컸다. 자율주행차ㆍ커넥티드카ㆍ친환경 전기차로 트렌드가 바뀌니 자연히 기술력을 갖춘 부품사 영향력이 절대적이 됐다.

      그래서 모비스를 글로벌 부품회사로 세우겠다는 계획만큼은 타당하다는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청사진을 뒷받침할 디테일이 부족했다. 현실성이 떨어졌고, 실현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다.

      당장 모비스의 '현대차 의존도'를 무시한 장밋빛 실적전망부터 비판을 받았다.

      현대모비스는 현대·기아차에 종속돼 있는 회사다. 내부매출 비중이 60%(현대차 33%, 기아차 28.7%)를 넘는다. 유통사업(AS포함)을 제외한 부품 사업만 보면 90~95% 달할 것이란 평가도 있다. 한마디로 현대·기아차에 부품을 공급하면서 먹고 사는 회사다.

      글로벌 부품사들은 다르다. 일본 덴소가 토요타와 관계가 돈독하다지만 타기업 매출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 델파이나 보쉬도 마찬가지. 이들의 영업이익률은 델파이 9.2%, 덴소, 7.3%, 보쉬 6.3%로 현대모비스(5.7%)를 훨씬 웃돈다.

      게다가 모비스를 먹여살렸던 현대·기아차 판매부진도 이어지고 있다. 야심차게 내놓은 제네시스는 글로벌 시장에서 자리를 못잡았다. 1분기엔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상황이 이런데 현대차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모비스 매출과 이익이 몇배나 뛸 것이라 주장했다. 이번 분할합병으로 알짜사업부(모듈·AS사업부)를 글로비스에 넘겨주고 남는 존속법인 매출이 더 커진다고 전망했다.

      올해 모비스 예상 매출액이 25조원인데 불과 1년만인 내년에 36조원이 될 것이라 했다. 또 2025년에는 44조원 매출을 달성하겠다고 했다. 영업이익률은 델파이보다 앞서 무려 10%를 넘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뒷받침할 근거는 뚜렷하지 않았다 .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불과 2년 뒤 모든 자율주행 센서를 '자체 개발'하겠다고 했다. 또 모비스에서 미래차 관련 매출의 전체 매출 비중이 25%, 핵심부품사업은 16%까지 된다고 강조했다.

      지금 모비스의 지위나 기술력을 감안하면 누가 봐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전망이었다. 이런 수치를 잔뜩 늘어놓고는 "이런 미래를 달성하려면 이번 분할합병안이 필수적이니 주주들은 동의해달라, 현대차의 미래가 달렸다"라고 강조하는 식이었다 .

      현대차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현대차는 최근 진행한 기관투자가 컨퍼런스콜에서는 미래차 시장이 불확실하다며 사업부 전망치도 발표 못했다"며 "이래놓고는 수년내 매출액과 이익이 몇배 뛸 것이라고 전망치를 내놓으니 누가 믿겠느냐"라고 지적했다.

      ◆불확실한 시너지ㆍM&A도 못해...주주이익 어떻게 설득하느냐 관건

      '시너지 효과'도 미미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모비스 글로비스의 합병으로 얻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현대차는 모비스 부품사업과 밀접한 해외법인은 존속법인에 남겨두면서 부품사업을 현대글로비스에 넘길 예정이었다. 자연히 모비스의 사업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다.

      모비스로부터 사업부를 넘겨받는 글로비스는 외형확장은 가능하지만 기존 사업과 연관성이 떨어진다. 이러니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면서 글로비스에 모빌리티 서비스를 내세워 미래성장동력 발판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쉽게 말해 '현대상선'과 같은 해운·물류업체가 '우버'와 같은 모빌리티 전문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고 밝힌 것과 마찬가지란 의미다.

      과거에 보여준 '실망감'도 작용했다.

      모비스가 그룹 전망대로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대대적인 M&A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중국 지리 자동차가 불과 2~3조원에 스웨덴 볼보(Volvo) 경영권을 인수할때, 현대차는 10조원을 들여 삼성동 부지를 산 회사였다. 그룹내 M&A를 전담할 인력과 조직의 한계는 여전하고 보수적인 그룹의 문화도 딱히 개선되었다는 평가를 못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주손실이 예상되는 분할합병안을 현대차의 미래로 연결지어 내놓으니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

      엘리엇매니지먼트의 합병 반대와 주주제안도 실패의 한 요인으로 거론되지만 반대의 근거는 '엘리엇의 논리'가 아니었다. 반대를 권고한 5대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 중 앨리엇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인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이번 개편안이 글로비스 최대주주인 정의선 부회장에게는 실익이 있지만 나머지 모비스 주주들에게 돌아오는 실익이 보이지 않거나 뚜렷하지 않다는 게 모든 반대의 원천이었다. 이러다보니 '투기자본'으로 낙인이 찍힌 엘리엇의 주주 환원책과 그룹 개편 방안에 오히려 기관투자가들과 현대모비스 주주들이 동조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정도였다.

      현대차그룹은 조만간 또 다시 지배구조개편 방안을 만들어 낼 전망이다. 일단 지주회사 전환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결국 문제가 됐던 분할합병 비율을 조정할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어떤 방식이 됐든 기존 주주들이 '이익'을 확신하는 방안이 나와야 통과가 될 것이라는 게 투자업계의 지배적인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