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차에 약한 거래소?...주총 번복해도 "현대차는 괜찮다"
입력 2018.05.25 07:00|수정 2018.05.29 10:18
    모비스·글로비스 주총철회에 불성실공시 법인 지정 않기로
    2013년 외인 반대로 주총 철회한 곳엔 벌점·벌금..'이중잣대'
    삼성바이오 위한 별도 상장 규정 만들어낸 것도 여전히 회자
    '거래소 제재 규정 등 구체적 명문화 필요' 목소리도
    • 한국거래소가 현대모비스의 임시주주총회 철회에 대해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주총 같은 큰 사안을 번복하는 경우 불성실공시 법인 지정 조차가 뒤따랐던 것과는 상반된 결과다.

      과거 유사한 사안으로 주총을 철회한 다른 기업들에는 '벌점ㆍ벌금'을 내렸다. 자연히 '이중잣대' 논란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거래소는 23일 내부 심의를 거쳐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 관련 임시주주총회 철회에 대해 불성실법인 지정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유가증권시장 공시규정 시행세칙 제11조의 '불가피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동기 자체가 정부의 지배구조 정책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근거가 됐다"며 "임시주주총회가 주가를 띄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철회할 것이라는 걸 현대차그룹이 애초에 예상하기 어려웠다는 것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증권가에서는 놀랍다는 반응들이 나온다. 이전까지 주총 철회는 곧 공시번복이었다. 이는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으로 당연히 연결되는 사안이었다.

      2013년 대구백화점 임시주총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외국인 주주 반대로 정관변경 등 안건 통과가 불투명해지자 회사측은 주총을 철회했다. 이번 현대모비스 사례와 비슷하다.

      그러나 거래소는 당시에는 예외를 인정치 않고 대구백화점을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했다. 벌금 1000만원과 벌점 4점도 부여했다.

      2010년 중국원양자원도 비슷한 사례다. 임시주총 철회로 인해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다.

      이외에 코스닥시장에서도 엔알디·엠젠·테라움 등 주총 철회로 인해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 수많은 사례가 있다.

      애초에 거래소의 관련 규정이 모호하게 돼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거래소의 재량권이 크다보니 거래소의 판단에 따라 지정 여부가 갈린다.

      현행 규정으로 보면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주총 철회는 유가증권시장 공시규정 제30조에 규정된 '공시번복' 행위다. 제32조에 '적용예외'의 6가지 경우가 규정돼있지만 ▲타 법령 등으로 인해 불가피한 경우 ▲천재지변 ▲공익 또는 투자자보호를 위한 경우 등으로 구성돼 이번 사안과 큰 관계는 없다.

      다만 거래소는 공시번복의 경우 시행세칙에서 별도 심사원칙을 정해두고 있다. 유가증권시장 공시규정 시행세칙은 부도나 파산, 법정관리로 인한 공시번복은 '적용예외'로 정해두고 있다. 이밖에도 '내용이 경미하거나 그 불이행 등이 불가피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도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을 피할 수 있다. 현대모비스는 '불가피한 경우'라고 근거를 들어 불성실공시가 아니라고 봤다.

      거래소 관계자는 "정확히 조항으로 정해둔 건 아니고 철회 사유가 합당한지, 절차적 문제는 없는지, 주주 이익과 투자자 보호에 문제 없는지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며 "주총 철회를 악용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이는 건별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논리대로라면 주총 사안 통과가 어렵다고 예상되는 다른 기업들도 상황에 따라서 '주총 철회'를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거래소는 이를 악용하는 경우는 엄중 제재하겠다는 입장이다.

      거래소가 대기업-중소기업 사이에서 엇갈리는 의사결정을 내렸다고 비판받는 경우는 이번만이 아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과정에서도 거래소의 '특혜 논란'이 일었다. 2015년 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가 신설한 '대형성장유망' 상장요건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적자기업이면서도 상장이 가능했다. 이후에도 이 혜택이 적용된 곳은 전무하다

      신라젠을 비롯,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상장 당시 비슷한 적자형 재무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헬스케어·바이오 업종 기업들이 기술성 평가 등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을 준비해야 상장할 수 있었던 것과는 상반된 모양새였다.

      한 증권사 임원급 관계자는 "주주도, 자본시장 유관기관도 아닌 공정위의 지지를 근거로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릴 줄은 몰랐다"며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을 비롯해 상당수 거래소의 제재 권한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으로 뭉뚱 그려져 있는데, 보다 구체적으로 명문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