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하기도 안 하기도…'증자' 표현에 담긴 교보생명의 고민
입력 2018.08.10 07:00|수정 2018.08.13 15:39
    자본확충 필요성 뻔해…거래 주도권 쥐기 어려워
    등 떠밀려 상장 나왔다는 인상 주지 않으려는 듯
    상장은 여러 옵션 중 하나라는 메시지 시장에 던져
    • 교보생명보험이 '상장 의지가 있느냐'는 의구심을 무릅쓰고 '증자 주관회사'라는 표현을 쓴 까닭은 무엇일까. 업황·규제·자본확충 필요성 등 교보생명이 들고 있는 '패'가 뻔한 상황에서, 등 떠밀려 시장에 나왔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는 전략적 판단으로 해석된다.

      자칫 재무적투자자(FI)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상장한다는 인상을 투자 시장에 준다면, 공모 흥행은 자연히 물 건너가는 까닭이다.

      지금 국내 증시는 생보사가 상장할만한 매력이 없다는 게 복수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7일 현재 KRX 보험업 지수의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7배지만, 생명보험사 5곳의 평균 PBR은 0.56배로 이보다 크게 낮다. 손해보험사 평균은 1배다. 같은 보험사지만 생보사들은 시장에서 매우 박한 평가를 받는 것이다.

      생보업의 자본부담 이슈가 부각하고, 사업 경쟁력은 떨어지고 있는 까닭이다. 당장 2분기 실적만 봐도 그렇다. 국내 생보사 2분기 경상이익은 삼성생명의 삼성생명 전자지분 매각이익을 제외하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7.6% 감소했다.

      한국과 미국의 금리 역전 현상으로 환헤지 비용이 증가했고, 주식시장 하락으로 변액보증준비금 환입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최근에 즉시연금 사태로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이런 분위기에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인구 감소 등으로 신규 보험계약을 늘기 힘든 상황에서 자산운용의 제약도 커진다. 국공채 투자를 제외하곤 기껏해야 안정적인 대출 정도가 투자처로 거론된다. 그만큼 자산운용수익을 거두기 힘든 환경이다.

      그럼에도 불구, 교보생명은 언제까지고 기업공개(IPO)를 외면하고 있기만은 어렵다. 새 국제회계기준(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K-ICS) 도입을 앞두고 상장이라는 대규모 자본확충 수단은 매력적이다.

      지난해 5억달러 규모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진단이다. 교보생명이 2021년 전면 시행되는 새 자본 및 지급여력 기준을 맞추려면 최대 5조원 가량의 자본확충이 필요하다. 올해엔 10억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준비하다 시장금리 급등으로 보류했다.

      FI에 투자를 회수할 통로도 만들어줘야 한다. 당장 지난해와 올해 진행한 자본확충 컨설팅도 FI의 압박이 배경이라는 후문이다. 주주들과 약속한 상장 기한은 애초 2015년 9월까지였다.

      문제는 교보생명을 지켜보고 있는 투자시장에서도 이런 맥락을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이다. 생보사 투자에 대한 유인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교보생명이 '상장을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배수의 진을 치고 나오면 공모가를 높게 쳐줄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한 자산운용사 공모주 담당자는 "생보사 주가는 전반적으로 박스권에 갇힌 지 오래돼 본질 가치보다 최대한 할인을 많이 해서 공모주를 받지 않으면 수익을 내기 어렵다"며 "매수 희망가를 공모희망가 밴드 아래로 써 내도 물량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면 값을 비싸게 쳐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보생명이 가장 경계할 수밖에 없는 게 바로 '주주에 등 떠밀려 억지로 상장하는 모양새'로 인식되는 상황이란 평가다. 거래의 주도권을 주주들이 잡고 있으면 교보생명은 운신의 폭이 더 줄어든다. 투자 시장에서도 '제값'을 쳐주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증자라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한 건 교보생명이 아직 선택권과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상장을 하더라도 '여러 옵션 중 하나'를 고른 것이지 유일한 길로 여기진 않고 있다는 메시지로 보인다"고 말했다.

      FI들은 이런 교보생명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들은 여전히 시늉만 하는 것 아니냐는 경계심을 갖고 있다. 주관사 선정만 진행하고, 시장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이전의 모습을 반복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한 교보생명 FI는 "회사가 자발적으로 주관사 선정작업을 진행하니 일단은 지켜보고 있다"며 "주관사만 뽑아 놓고 IPO가 진행이 되지 않는다면 FI들의 불만은 더욱 커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