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부동산도 옛말…해외로 눈 돌리는 강남부자
입력 2018.08.14 07:00|수정 2018.08.17 11:43
    미국 투자이민 관심 높아져
    브로커들 영주권 내세우며 접촉
    강남아줌마들 관심은 베트남 부동산
    경제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도 해외투자 부추겨
    • “미국 투자이민 컨설팅 업체입니다”

      최근 한 중견그룹 오너가 받은 전화다. 내용인 즉 미국 투자이민을 통한 영주권 발급의 전 과정을 컨설팅 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미국 현지 법인 설립부터 한국에 역으로 투자하는 방안까지 알려준다고 했다. 지인들한테 물어보니 요즘 들어 이런 전화가 자주 오고, 이들 중에선 실제로 투자이민·해외 투자를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길 들었다.

      연일 서울 부동산 값이 오른다는 소식이 전해지지만, 실상 수백억원 이상을 가진 자산가들의 마음은 해외로 향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떨어지고, 투자할 곳은 마땅치 않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여기에다 부자들을 향한 부정적인 사회시선, 정부의 증세 등이 이들의 마음을 한국에서 떠나게 하고 있다.

      투자이민 컨설팅 회사들은 지금이 적기라고 이들을 부추기고 있다.

      가장 선호하는 투자이민 지역인 미국은 50만달러, 한화로 약 6억원 정도면 투자이민을 신청할 수 있다. 투자이민 프로그램에 따라 부동산 개발 등의 사업에 투자하고, 여기로부터 직간접 고용을 유발하면 미 정부에서 검토해 투자이민을 허용해준다. 먼저 조건부 영주권을 발급받고 약 2년 후 투자 및 고용이 제대로 이뤄졌다는 조건 하에 정식영주권 신청을 할 수 있다. 투자금 상환은 5~7년 정도 후에 원금에 일정 수익을 돌려받는 구조다.

    • 오는 9월 미국 연방의회가 투자이민 최소 투자금액을 상향 조정할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최근 투자이민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컨설팅 업체들은 트럼프 정부가 투자이민 ‘허들’을 높이기 전 때를 놓치지 말라고 적극 마케팅하고 있다. 지난달 코엑스에서 열린 해외이민 박람회에는 첫날 주최 측의 예상 인원 1.5배가 몰리기도 했다.

      한 투자이민 상담업체 관계자는 “예전에는 투자이민 사기가 빈번했지만, 이제는 과정이 상당부분 깨끗해졌다”라며 “트럼프 정부가 이민 정책을 어떻게 바꿀지 모르니 서둘러야 한다”라고 말했다.

      비단 미국뿐 아니라 스페인, 호주 등에서도 투자이민을 받고 있다. 이들 나라들도 조건은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에는 유럽 투자이민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지고 있다.

      국내 한 로펌에 문의해 보니 실제 이런 상담 전화가 최근 들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사모펀드(PE)에 회사를 매각한 중소중견 기업인들이 투자이민, 해외투자 등에 대해서 물어보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이들 상당수는 과거에 제조기반 사업체를 영위했으나, 한국에선 공장 운영해선 더 이상 답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비단 수백억원의 자산가들만이 이런 행렬에 동참하는 것은 아니다. 소위 말하는 강남 아줌마들의 관심사도 강남부동산에서 해외 부동산으로 옮겨 가고 있다. 주식시장은 코스피 2500선에서 내려 앉았고, 채권 금리는 미국 국채 금리보다 낮다. 그나마 믿을 건 부동산이지만 다주택자를 향한 규제가 쏟아지면서 국내에서 여유 자금을 운영할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해외 부동산 중에서 최고 선호지역은 요즘 뜨겁다는 베트남 부동산이다. 건설사, 증권사들이 너도 나도 달라 붙어서 베트남 부동산 투자 세미나를 여는 이유다. 베트남은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사실상 없고, 향후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호치민의 경우 2000년대 중국 상해와 견줄 만 하다는 평가다.

      이를 두고 경제가 안 좋아지는 대표적인 ‘신호’란 견해가 많다. 실제 투자이민이나 해외투자에 나서기 위해선 제약요건이 많다. 각 나라마다 세제와 법이 다르다 보니 검토해야 할 사항이 많다. 그럼에도 해외로 눈을 돌린다는 것은 그만큼 국내 경기전망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방증이란 설명이다.

      정부가 이 흐름에 기름을 붓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자들이 국내에서 돈을 쓰게 해도 모자랄 판에 각종 규제를 쏟아내며 이들을 해외로 내몬다는 비판이다.

      한 국내 대형 로펌 관계자는 “대규모 자산을 해외로 이전시키기 위해선 검토해야 할 사항이 많음에도 이런 문의가 온다는 것은 국내에 그만큼 투자할 곳이 없다는 의미다”라며 “과거 IT버블이 꺼진 2000년대 초반에도 투자이민에 대한 문의가 크게 는 바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