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들, 부동산 투자 붐?…"경쟁은 늘고, 테마는 겹치고"
입력 2018.08.14 07:00|수정 2018.08.20 09:15
    신바람 내던 부동산신탁업계, 신규 사업자 진입에 우려
    거래 기근에 투자 선택지도 축소…‘돈의 힘’ 충돌 격화
    시장 악화로 앉아서 자산가치 손해…공모 리츠는 미지수
    • 부동산 시장은 얼마 전만 해도 돈을 벌 수 있는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지만 갈수록 기대감이 사그라지고 있다. 투자자들이 앞다퉈 시장에 뛰어 들며 자산 가격이 올라가고 위험 부담도 커지는 상황이다.

      경쟁 강도는 심화되는데 뻔한 투자 테마만 이어지고 있어 부동산 투자업계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하반기 중 신규 부동산신탁사 인가 절차를 진행한다. 신설 회사들은 부동산 개발을 하는 토지신탁보다는 담보신탁ㆍ관리신탁ㆍ처분신탁 등 비토지신탁 사업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은 기존 부동산 신탁사의 먹거리에 미칠 영향이 크지 않지만 장기적으론 경쟁 심화가 불가피하다.

      일단 폐쇄적 과점 구도 속에서 신바람을 냈던 기존 회사들의 불만이 크다. 이미 11곳이나 되고 시장 전망도 밝지 않은데 굳이 추가 인가가 필요하냐는 것이다. 금융사들이 신규 인가를 따낼 가능성이 큰데 이 경우엔 정부의 일자리 창출 목적과 썩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장 규모와 필요 인력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기존 시장 쟁탈전만 커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시중은행이나 증권사, 연기금 등 부동산 투자 ‘큰손’들도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단순 대출로는 큰 돈을 벌기 어렵기 때문에 점차 시행사 역할로까지 거슬러 가고 있지만 전체적인 거래 기근 상황에선 별 도리가 없다.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정부 규제도 걸림돌이다.

      대형 기관투자가 부동산 투자 담당자는 “대규모 부동산 사업 시행을 맡고 싶지만 목 좋은 수도권엔 개발할 땅이 없고, 땅 많은 지방은 위험 부담이 크다”며 “재개발 사업 정도만 보이는데 그나마도 경쟁이 심해 손에 쥐는 것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틈새 시장에서 먹거리를 찾던 중소형 증권사들의 아우성은 더 커졌다.

      한 증권사 사장은 “부동산 PF 선순위 대출을 독식하다시피 했던 메리츠종금증권조차 트랜치 불문하고 거래를 쓸어가는 다른 대형 증권사에 치이는 형국”이라며 “신규 거래는 없는데 돈의 힘을 앞세운 대형사까지 가세하며 중소형 증권사들의 설 자리는 더 좁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관들에 재매각(Sell down)되는 상품은 단순화하고 있다.

      최근 부동산 투자 시장에 풀리는 거래 중 상당 부분이 유통기업과 관련돼 있다. 롯데마트, 홈플러스, 이랜드 등 유통기업들이 매각이나 유동화, 매각후임차(sale and leaseback) 하려는 자산들이다. 유통사들의 재무구조 개선 수단으로 각광받다가 한풀 인기가 꺾였음에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만한 투자건도 찾기 어렵기 때문에 거래는 항상 성사된다.

      ‘이랜드 자산엔 절대 투자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던 대형 기관도 최근 관련 유동화 거래에 참여하기도 했다.

      대형 손해보험사 투자담당 팀장은 “유통사에서 만든 부동산 투자만 급증하면서 내부 심의위원회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급히 망가질 사업은 아니고 그 전까진 안정적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임에도 유통업 전반의 성장성이 둔화한다는 점에선 일말의 불안감이 있다”고 말했다.

      공실률 부담도 만만치 않다. 알아서 임차인이 들어오는 중심가의 일부 신형 건물은 투자 수요가 몰리지만 나머지 건물들에 대한 관심은 저조하다. 부영그룹이 인수한 옛 삼성화재 을지로 사옥(부영을지빌딩)조차 공실률 부담에 다시 매물로 나왔다.

      전체적으로 공급 우위의 시장이기 때문에 부동산에 투자한 기관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확실한 임차인과 수익 보장 약정으로도 불안감을 완전히 지우긴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 종로의 한 오피스빌딩은 몇 년 전 공실률이 3%에 불과할 정도로 우량 자산이었지만 최근 주요 임차인이 계약 만료로 이탈했다. 투자 기관들은 다른 임차인들도 재계약에 실패해 나갈 경우 기대했던 수익을 거두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근근이 부동산 사업 관련 대출로 먹고 사는 기관들도 어렵긴 매한가지다. 경쟁사가 많은 데다 금리 변동은 어떤 경우에도 득보다 실이 많다.

      금융회사 투자 담당자는 “금리가 조금이라도 오르는 모양새면 차주들이 대출 만기까지 버티고 내릴 기미가 보이면 금융사들이 리파이낸싱 하자고 먼저 달려 든다”며 “중도상환 수수료율이라도 높으면 좋겠지만 경쟁이 심한 상황에선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공모 리츠(REIT's; 부동산투자회사)가 기관들의 투자 욕구를 해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리츠 시장은 사모 중심으로 이뤄져 있는데 정부는 공모 리츠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상장 업무를 따내려는 증권사나 새 기회를 찾으려는 투자자들 모두 관심을 가질 만 하지만 아직은 썩 매력적인 시장으로 보긴 어렵다. 공모 리츠의 경우 사모로 기관들의 선택을 받지 못해서 추진된다는 인상이 있었다.

      금리 상승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공모 리츠 상장에 관여한 한 증권사 관계자는 “배당 수익은 그대로인데 시장 금리가 올라가면 기관들의 조달 비용이 증가하고 이익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며 “금리 상승기엔 공모 리츠가 투자자의 외면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