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로펌, '52시간' 정책 후폭풍…"운전기사부터 줄였다"
입력 2018.08.30 07:00|수정 2018.08.31 09:05
    제도 시행 두 달 지났지만…여전히 해법 못 찾아
    운전기사들 '유탄'…계약 해지 돌입한 로펌도
    美 로펌은 유례없는 호황…기업 실적 호조에 로펌업계도 '북적'
    • “수요일쯤 어소시에이트 변호사(Associate Lawyer; 소속 변호사) 들이 '법정 근로시간'이 다 차서 죄송하다며 협상장을 나가면 어떻게 될까요. 고객들도 순순히 이해해 주실까요?”(대형 로펌 파트너 변호사)

      로펌들이 52시간 규제를 두고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300인 이상 사업장은 지난 7월 1일부터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 이내로 맞춰야 한다. 김앤장법률사무소‧광장‧태평양‧세종‧율촌을 포함 총 7곳이 적용대상이다. 정부가 6개월간 사업주의 처벌을 유예하는 계도기간을 뒀지만,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대형 로펌 중 뚜렷한 대책을 발표한 곳은 없다. 재량근무제 도입이 현실적인 해법으로 꼽히지만 내부 반발이 문제다. 재량근무제는 실제 근로시간 대신 노사의 사전 합의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어소시에이트 변호사 입장에선 노동 강도와 관계없이 임금이 정해지다보니 반발 기조가 강하다.

      로펌 중 가장 먼저 재량근무제를 도입한 A사는 절차적 문제가 논란이 되며 속앓이를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어소시에이트 변호사 중 파트너 승진이 가까워진 소수 변호사가 대표로 사측과 합의하며 나머지 변호사들의 반발이 거세졌다는 전언이다.

      업계에선 합의 문서의 효력 등을 두고 법적 다툼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재량근무 도입으로 가닥을 잡았던 B 로펌은 정부가 계도 기간을 두면서 논의를 좀 더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내부에선 선진국처럼 정해진 시간 내 업무를 끝내는 근로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여러 시도가 이어진다고 전해진다.

      B로펌 소속 파트너 변호사는 “어소시에이트 변호사들에게 본보기가 되도록 아침 9시부터 사무실로 출근해 솔선수범하라는 선배 변호사들의 압박이 강해지고 있다”며 “사측과 노측 사이에서 중간에 낀 상황이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국내 로펌들의 ‘벤치마크’가 돼 온 C사도 아직 별다른 대책 마련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경쟁 로펌 사이에선 “C사가 우린 ‘법무법인(Law-Firm)’이 아닌 개인공동사업자이자 조합일 뿐‘이라 주장해온 점이 드디어 빛을 보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정부가 연간 1조원씩 버는 C사만 좋은 일 시키나”라는 푸념도 나온다.

      하지만 C사 내부에서도 52시간 도입을 두고 고민하는 분위기다. 이미 수많은 어소시에이트 변호사를 고용하고 있는 데다 일반 직원도 천 명이 넘는다. 형식적으로 300인 미만이 되더라도 법의 실질을 따지거나 대외적 시선을 고려하면 법 적용을 회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주당 근무시간이 줄면 그 부족분을 고용 확대로 대응할 것이란 정부의 선한 의도는 법률시장에서도 여지없이 빗나가는 모양새다.

      한 대형 로펌의 경영을 이끄는 변호사는 “시장 성장은 한정돼 있다 보니 우리뿐 아니라 경쟁로펌도 전년 대비 유의미한 인력 확충 계획을 마련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반면 미국 로펌 시장은 각 사들이 경쟁적으로 신입 변호사 유치에 나서는 등 유례없는 초호황이 이어진다. 근로 시간을 규제해서가 아니다. 트럼프 정부가 출범 이후 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 정책을 이어온데다 현지 투자까지 유도하며 법률시장도 수혜를 톡톡히 본다는 평가다.

      변호사들의 대우도 쏟아지는 일감에 비례해 상승 중이다. 최근 미국 내 신입 변호사들의 초봉은 2억1000만원~2억7000만원(19만달러~24만달러)에 육박한다. 양 국을 선택할 수 있는 최상위 수준 인력이라면 굳이 52시간에 맞춰 근무시간을 줄인 만큼 초봉을 줄이려는 국내 로펌에 입사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최근 심슨대처바틀렛(Simpson Thacher & Bartlett LLP) 등 외국 로펌들이 속속들이 한국을 떠나는 점도 국내 로펌들의 경쟁력이 강화했다기보다는 한국이 매력없는 시장이 됐기 때문이란 평가도 있다. 정책상 본사 수준의 자문료를 책정해야 하는 글로벌 로펌들의 한국 지사가 덤핑이 만연한 국내 로펌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시각이다.

      다른 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20년 차 기준 국내 파트너들의 시간당 자문료가 90만원(800달러) 수준이라면 현지 로펌 파트너들은 170만원(1500달러)를 청구한다”며 “한국이 전략적으로 그만큼 중요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외국 로펌들이 굳이 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정작 제도 도입의 ‘유탄’은 운전기사 등 로펌 내 사각지대에 향하고 있다. 또 다른 대형로펌 D사는 최근 운전기사들에게 대규모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운전기사 수요가 가장 큰 분야 중 하나인 송무에선 시간에 맞춰 법원으로 향하는 셔틀버스를 계약하기로 결정했다. C사는 운전기사 고용을 유지한 대신 1인당 주간 근로 시간을 대폭 줄였다. 임금도 이와 비례해 축소됐다.

      대형 로펌 E사는 경영을 이끄는 운영위원회에서 직접 정부에 운전기사들의 특례직종 해당 여부에 대한 질의를 검토 중이다. 특례직종에 속할 경우 근로기준법(제59조 제1항 '기타 운송 관련 서비스업')에 따라 노사합의로 주 52시간보다 오래 근무하더라도 위법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E사 소속 파트너 변호사는 “로펌 내 운전기사 분들의 경우 특히 주중 근로시간 외 주말 변호사들의 고객 접대 등 가외 업무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이 만만치 않는 만큼 특수성이라도 정부가 인정해줬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