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거래소 놓고 ‘사행산업’ vs ‘블록체인 생태계’ 논란
입력 2018.09.21 07:00|수정 2018.09.27 09:27
    벤처 지원 사업서 거래소 제외
    세계 각국, 관련 입법 서둘러
    • 정부가 가상화페 거래소를 벤처기업 지원 산업에서 제외하면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정부는 가상화폐 거래소를 사행산업으로 규정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크다. IT 업체뿐 아니라 지방정부는 블록체인 생태계를 파괴한다고 반발하고 있으며 정부 내에서도 이견이 존재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달 4일 암호자산(가상화폐) 매매와 중개업을 벤처기업에 포함하지 않는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이 확정되면 가상화폐 거래소는 벤처기업 인증을 받을 수 없다.

      법인세와 소득세, 취득세 감면에서부터 정부의 벤처투자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게 된다. 이번 벤처기업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업종은 사행시설 관리 및 운영업, 무도장, 유흥주점에 불과하다.

      가상화폐에 대한 정부 규제가 모호한 상황에서 정부가 이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중기부는 “가상화폐 매매와 중개에 관련된 투기 과열과 유사 수신, 자금 세탁, 해킹 등의 불법행위가 나타나고 있다”라며 “벤처기업에 포함되지 않은 업종에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화폐 매매와 중개업을 추가해 우리 산업의 구조조정을 원활히 하고 경쟁력을 높이려 한다”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블록체인 관련 협회와 단체들은 반발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과 가상화폐가 따로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인데다, 가상화폐 거래소로 자금유입이 막히면 블록체인 생태계가 생성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한 블록체인 업체 관계자는 “블록체인 기술을 보급하기 위해선 가상화폐라는 엔진(유인)이 있어야 한다”라며 “가상화폐 거래소가 블록체인 생태계의 핵심인데 이를 막고 4차 산업을 독려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기업 자금조달 창구로 암호화폐공개(ICO)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컨설팅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지분을 희석하지 않고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으로 ICO를 검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라며 “ICO 니즈는 큰 반면 국내에선 길이 막혀있어 이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방정부에서도 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정부와 날을 세우고 있다. 제주도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에선 블록체인 특구지정 요구 등을 주장하고 있다.

      원희룡 제주도 지사는 지난달 정부 혁신성장회의에서 “특별자치도인 제주도가 갖고 있는 이점에 섬이라는 공간적 특성을 묶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규제를 설계하고 시행함으로써 우리나라가 글로벌 생태계 육성 추진의 시작점이 될 수 있게 해 달라”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추세를 살펴보면 각 국 정부는 가상화폐 거래소 규제에 대한 입법을 서두르고 있다.

    • 미국은 가상화폐 거래를 금융의 한 수단으로 간주하고 입법 절차를 진행 중이다. 증권거래선물위원회(SEC)는 가상화폐를 유가증권으로 간주하고, 증권법을 포괄적으로 적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가상화폐 파생상품들을 공개적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친가상화폐 정책을 추진 중이다. 북미증권관리자협회(NSAA) 등이 주도로 미국, 캐나다 가상화폐 사기 공동단속반을 통해 가상화폐 투자 프로젝트 단속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싱가포르, 일본 등은 가상화폐 거래를 인정하고 이에 대한 법제화에 나서고 있다. 싱가포르는 정부 승인 하에 가상화폐 거래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자금세탁방지(AML) 및 테러 자금 지원 방지법(CFT)을 적용해 관리 감독한다.

      일본은 법제화를 통해 가상화폐 거래를 금융상품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과거 지출서비스법(Payment Service Act) 대신 금융 상품 거래법(FIEA)에 의해 규제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가상화폐 거래에 있어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스위스다. 스위스는 가상화폐 거래소에 기존의 금융법을 적용해 운용하고 있다. 가상통화의 허브국가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스위스의 작은도시인 주크시는 이더리움 재단 등 블록체인 관련 회사만 250개~300개가 위치한다.

      이에 반해 중국은 가상화폐를 엄격하게 단속하고 있다. 가상화폐거래소 폐쇄 명령을 내림에 따라 많은 거래소들이 해외로 이전했다. 일부 해외 거래소의 경우 웹 사이트에 대한 인터넷 액세스를 중단하기도 했다.

      정부 내에서도 이번 결정을 두고 벤처투자를 담당하는 실무진들의 의견이 갈리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행성 조장 등 부정적인 측면을 고려해 거래소 활성화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해외사례처럼 가상화폐 거래를 제도의 틀 내에서 규제하는 입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 벤처금융업계 관계자는  “무조건 막자는 방식보단 어떻게 건전하게 규제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게 현실적이다”라며 “청와대 내에 정보통신(ICT) 컨트롤 타워가 없어 이렇다 할 정부 정책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