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빌려 의결권 행사해도 '합법' 판결 나와…주총 표대결 '비밀무기'?
입력 2018.09.27 07:00|수정 2018.09.28 09:43
    MKIF 분쟁서 법원, 플랫폼·부국證 손 들어줘
    법원 "대차 의결권, 행사 막을 근거 없다"
    삼성물산이 2015년 지분 10% 빌렸다면 하루 6000만원꼴
    분쟁 소지 있는 주총서 활용 가능…규제 여부 관심
    • 맥쿼리자산운용과 플랫폼파트너스의 분쟁은 일단락됐지만 이로 인해 자본시장에는 큰 불씨가 하나 남았다. 플랫폼파트너스의 '의결권 대차'가 '적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한 사실상 첫 판례로 알려진다.

      법원은 '주주총회를 위한 명부 폐쇄일 하루동안 주식을 빌리면 이때 빌린 주식의 의결권까지 빌린 사람에게 귀속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에 따라 주주총회에서 표대결을 앞두고 대차거래를 활용하는 방안이 널리 쓰일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0민사부는 지난 18일 맥쿼리자산운용이 플랫폼과 부국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의결권행사금지 가처분신청(2018카합21274)에 대해 '기각' 판결을 내렸다. 플랫폼과 부국증권측의 손을 들어줬다.

      앞서 플랫폼과 부국증권은 19일 열린 임시주총의 주주명부 폐쇄일인 지난달 21일을 기준으로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MKIF) 주식을 대규모로 빌렸다. 그리고 22일부터 이를 대부분 상환했다. 대차 규모는 플랫폼이 40만여주(지분율 0.1%), 부국증권이 560만여주(1.6%) 수준이었다.

      맥쿼리는 이에 즉각 반발했다. 주주명부 폐쇄일을 기준으로 주식을 빌려 의결권을 확보하는 일은 상법상 1주 1의결권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주식을 빌려 비교적 소액으로 의결권만 대규모로 확보하는 행위를 용인하면 자본시장의 질서가 무너질 거라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주식 대차를 통한 의결권 확보를)규제하는 명문의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의결권 행사가 금지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오히려 법원은 "차입자의 의결권 행사를 금지하면 해당 주식에 대해 차입자와 대여자 모두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어 부당하다"며 "이는 1주 1의결권 원칙에도 반한다"고 적시했다. 맥쿼리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이어 법원은 "(주주라고 해서) 회사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게 의결권을 행사해야 할 의무도 없으며 행사 대신 대여함으로써 수익을 취할 수도 있다"며 "뚜렷한 법률적 근거 없이 (대차 주식의) 의결권 행사를 금지하면 재산권 행사에 부당한 제약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MKIF 분쟁은 의결권 대차가 주주총회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첫번째 사례다. 이번 가처분 판결은 의결권 대차를 법적으로 용인한 첫번째 판례이기도 하다.

      법적 근거가 생긴 이상, 앞으로 주주총회를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전략적으로 '의결권 대차'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평가다.

      이전까지 기업들은 백기사를 섭외해 자사주를 매각하거나, 총수익수왑(TRS) 등의 방식으로 고비용 부담을 떠안으며 주총에서의 우호표를 확보해왔다. 의결권 대차를 활용하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부국증권이 MKIF 주식 500억여원어치의 의결권을 확보하며 지불한 대차 수수료는 하루 400만원 수준인 것으로 파악됐다.

      예컨데 지난 2015년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먼트의 공격을 받았던 삼성물산의 경우, 삼성그룹이 당시 시총 기준 의결권 대차를 통해 10%의 우호지분을 확보했다면 하루 예상 비용은 겨우 6000만원에 불과하다.

      당시 삼성물산 직원들은 직접 개인투자자의 집을 방문해 의결권 행사를 권유했다. 의결권을 대차했다면 이 같은 행위도 필요없었다. 상당수 개인투자자는 증권사 계좌에 가입할 때 수수료 수익을 위해 유후 주식에 대한 대차거래에 동의하는 까닭이다.

      한 지배구조 전문가는 "현대모비스 분할합병 등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주주들의 반대로 무산되는 사례나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의결권 대차는 기업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것"이라며 "크게 이슈화하고 법적 근거까지 생긴만큼 이를 이용하는 사례가 앞으로 적지 않게 일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물론 의결권 대차 행위가 아예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차입자는 소액의 수수료만 부담하고 의결권을 행사하는 반면, 대여자는 주식 가치나 배당 수익의 변동 등 경제적 이해관계는 그대로 가지면서 의결권만 행사할 수 없는 까닭이다.

      플랫폼의 손을 들어준 법원 역시 "주주들의 의사결정이 왜곡되고 회사 전체 이익과 부합하지 않게 의결권이 행사될 수 있다"며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규제의 필요성을 부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이번 MKIF 분쟁을 통해 의결권 대차에 대한 신규 입법이나 규제에 대한 논의도 시작될 전망이다.

      맥쿼리는 "그동안 금융시장에서 암암리에 이뤄졌던 의결권만을 매수하기 위한 대차를 통한 의결권 행사 사례가 처음으로 드러났다"며 "이 부분에 대해 감독 당국에 제도개선을 공식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