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거듭한 유료방송 M&A…통신3사 물고, 물리며 '딜레마'
입력 2018.11.07 07:00|수정 2018.11.09 09:32
    연내 매각 못박은 딜라이브…KT·CJ와 계약조건 조율 중
    LG는 CJ헬로 인수 '현재진행'…LG그룹 명분 만들기 주력
    SKT, '낙동강 오리알' 될까 아니면 '최후의 승자'될까?
    • 유료방송(SO) 업체 M&A를 둘러싼 매도자ㆍ매수자 간 눈치싸움이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싼 가격에 인수하거나, 적어도 상대가 싼 가격에 인수하지 못하도록 견제에 돌입한 통신3사간 공방(攻防)이 한창이다.

      문제는 이들 3사의 공방전이  마치 '죄수의 딜레마'처럼 서로 엉켜있다는 점이다. 누구도 먼저 나서지 못하고, 자칫 상대방의 움직임만 신경써야 하는 형국이다. 한 발 물러나 있는 SK텔레콤도 애매한 입장에 처했다.

      ◇딜라이브로 치고 나선 KT “우리도 있다"… 판세 또 흔들리나?

      최근 들어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딜라이브다. CJ헬로에 이어 KT스카이라이프가 실사를 마치고 딜라이브측과 주식매매계약(SPA) 초안을 둔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CJ헬로의 딜라이브 인수 시도는 시장에서 자사 매각가를 높이기 위한 '블러핑'으로 평가돼 왔다. 오히려 관계자들은 연내 매각을 못 박은 채권단과 불안한 규제 공백을 활용하려는 KT가 매각 합의를 이뤄낼 가능성을 더 높게 본다.

      KT는 최근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을 통해 계열사 스카이라이프를 통해 딜라이브 인수를 검토 중이라고 공식화했다. 실제 스카이라이프는 국내 한 증권사를 자문사로 선정해 실사를 끝냈다. 양측은 진행중인 SPA 마크업(Mark-upㆍ수정제안) 협상에서 합의를 이끌어 낼 경우 이달 말까지 구속력있는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다만 인수자가 'KT' 다보니 거래종결까지는 험난한 과정이 예상된다는 평가도 있다.

      일단 해묵은 '합산규제' 이슈가 남아있다. KT와 KT스카이라이프는 특정 기업이 전체 점유율 3분의 1(33.3%)을 넘지 못하도록 정한 유료방송 합산규제에 따라 유료방송 M&A가 원천적으로 차단돼 왔다.

      해당 법안이 올해 6월 일몰되며 M&A에 참여할 문호가 열리기는 했다. 그러나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규제 재도입이 꾸준히 언급되고 있다. 지난 달 열렸던 국정감사에서 박선숙 바른미래당 의원은 “합산규제 일몰로 유료방송시장이 혼탁해지고 있다”라며 “KT와 KT스카이라이프가 시장을 확대하고 유선방송사업자까지 인수하려는데, 유료방송 합병 문제는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여기에 이번 정부 출범 이후 황창규 현 KT회장의 거취를 둘러싼 외풍도 거세진 상황이다. 쉽사리 M&A 결단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란 관전평도 나온다.

      다만 KT로서는 딜라이브 인수를 통해 '명분쌓기'가 가능하다는 장점도 활용가능하다.

      채권단 관리로 어려움을 겪었던 딜라이브를 인수, 유료방송 산업 구조개선에 기여했다는 명분을 쌓을 수 있다. 딜라이브는 내년도 7월이면 기존 차입금의 만기가 도래한다. 늦어도 올해 말까지 매각을 둔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또 한 번 리파이낸싱을 단행해야 한다. 하지만 채권단의 합의를 다시 이끌어내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대주단 사이에서도 입장차가 크기 때문에 리파이낸싱이 쉽진 않을 것으로 본다”며 “이번에 거래 종결이 안되면 각 금융사 내 투자금융부에서 관리 중인 딜라이브를 구조조정부서로 이관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KT가 노릴 수 있는 지점도 이 부분이라는 의미다.

      ◇새 수장 등극 이후 첫 빅딜 앞둔 LG, 명분 마련에 ‘신중 또 신중’

      다른 한 축에서는 여전히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 작업이 한창이다.

      LG유플러스는 올해 초 CJ헬로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다른 인수후보나 다른 매물을 찾지 못하도록 한 협상 독점권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LG유플러스가 이제 와서 딜라이브 인수전에는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다.

      LG와 CJ  양측은 가격 차이를 두고 막바지 대치를 이어왔지만 최근들어 격차를 일정 정도 좁힌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M&A에 정통한 관계자 사이에선 오히려 가격차이보다 LG그룹 내부 의사결정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즉 지주사인 ㈜LG와 LG유플러스가 CJ헬로의 인수가격이 높지 않다고 어떻게 합리화 할 것이냐를 우선 고민하고 있다는 것. 여기에 인수 이후 시너지 방안을 조율하는 과정 등에서도 그룹 내부 의사결정이 미뤄지면서 결단이 늦춰진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자칫 내년 초까지 또다시 합의가 미뤄질 가능성도 LG그룹 내부에서 언급되고 있다.

      게다가 LG입장에서는 'KT-딜라이브 협상 결과'를 곁눈질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행여 'KT-딜라이브'에서 체결된 매매가격이 'LG-CJ헬로'에서 마련된 매매가격과 현격한 차이가 날 경우. 자칫 KT-딜라이브 매매가격이 일종의 유료방송 M&A '기준가' 혹은 '시장가'로 받아들여지면서 LG로서는 "비싸게 샀다"라는 비판을 감내해야 할 수도 있다.

      거꾸로 CJ헬로 입장에선 높은 가격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도 딜라이브 보다 빠른 가격 합의에 나서야 한다. CJ헬로가 딜라이브 인수 가능성을 시장에 선보인 것도 LG 측에 언제든 협상 테이블을 이탈할 수 있다는 신호를 주는 배경이다.

      LG로서는 이번 M&A가 누구의 '작품'으로 평가받을 것이냐 문제도 있다.

      과거 지주에 하현회 부회장, LG유플러스에 권영수 부회장이 재직하던 때 LG유플러스를 통해 CJ헬로 인수 시도가 시작됐다. 지금은 두 부회장의 자리가 바뀌었다. 거래에 대한 성공 혹은 실패 평가가 누구에게 귀속될지도 애매하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구광모 회장이 총수로 등극한데다  권영수 부회장이 지주사 경영을 맡은 이후 첫 대형 M&A인 만큼 임원 등 내부 사이에서도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며 "이 거래가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올 경우 임원진도 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에 사안 하나하나에도 신중을 기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자연 구조조정’ 원했던 SK텔레콤…예상치 못한 전개?

      의도적으로 유료방송 M&A와는 한 발 떨어진 모양새를 취했던 SK텔레콤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SK텔레콤은 이미 지난 2015년 CJ헬로 인수에 합의했지만 공정위 판단으로 최종 무산됐다. 같은 회사 인수를 3년만에 다시 공식화하기엔 부담이 큰 상황이다.

      업계에선 3위권 사업자 LG유플러스가 CJ헬로를 인수해 어느정도 여론 형성이 이뤄진 후 SK텔레콤이 딜라이브를 다소 싼 가격에 인수해 대응하는 전략을 세웠을 것으로 내다본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공식석상에서 CJ헬로 M&A에 대해 “LG유플러스가 하든지 SK텔레콤이 하든지 산업 발전의 관점에서 필요하다고 본다” 두 업체를 언급한 배경으로도 꼽힌다.

      실제 SK텔레콤 내에서도 LG유플러스와 CJ헬로 인수 진행상황을 유심히 살피며 딜라이브 가치를 낮추는 데 집중해 왔다. 관계자들 사이에선 SK텔레콤 측이 딜라이브 채권단에 "공정위 판단이 불확실한 만큼 LG유플러스의 M&A 이후 진행상황을 살펴본 후 본격적인 실사에 나서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SK텔레콤 내부에서도 유료방송 M&A는 콘텐츠 분야 매물 확보에 비해 우선순위를 미룬 채 시간끌기에 돌입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딜라이브가 향후 추가 리파이낸싱에 실패해 구조조정에 돌입할 경우, 통신 부문 지배력을 활용한해 수월하게 이탈 소비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전략을 염두했을 것이란 평가다.

      그러나 이런 전략의 성사 여부와 별개로 KT가 딜라이브 인수에 나서며 SK텔레콤의 구상도 틀어진 상황이다. 이로 인해 티브로드 등 잠재 매물들의 인수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태광 측이 최근들어 재무적투자자(FI)에 지불한 가격이 높은 수준인 데다 태광그룹의 오너리스크가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SK텔레콤 입장에서 KT까지 유료방송에 뛰어들어 격차를 벌리는 상황은 어떻게든 막아야 할 것"이라며 "만약 KT 측의 딜라이브 인수 계약이 본격화 될 경우엔 SK텔레콤 주도로 또 한 번 여론전이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