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목마른 현대상선, 정부는 지원도 결단도 미온적
입력 2018.11.13 07:00|수정 2018.11.15 09:46
    금융조달 어렵고 고가 용선계약 부담
    1兆 지원했지만 근본적 개선엔 턱없어
    대규모 지원이나 회생…확실한 선택 필요
    정부, 후폭풍 부담에 ‘연명’ 지원 가능성
    • 현대상선이 신뢰와 사업성을 회복하고 네트워크를 재건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투입돼야 한다. 이런 자금 지원이 어렵다면 법원의 힘을 빌어 부담을 줄이는 편이 낫다는 지적도 나온다. 어느 쪽이든 후폭풍은 불가피하다.

      반면 정부는 해운업 부활을 위한 근본적 대책보다는 회사를 연명시키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대상선은 지난달 25일 1조원을 수혈 받았다. 산업은행을 대상으로 6000억원 규모 신주인수권부사채(BW)와 4000억원 규모 사모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향후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사채의 절반을 떠안는 구조다. 당초 지원을 검토했던 금액보다 2000억원 늘었다. 지원금은 초대형 선박 확보와 부산항 터미널 지분 인수, 컨테이너 박스 구입 등에 쓰인다.

      그러나 실효를 거두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는 평가가 많다. 현대상선은 2분기까지 13분기 연속 적자를 냈다. 올 상반기 영업손실만 4000억원에 달한다. 9월 3조원대 초대형 컨테이너선 건조 계획을 밝혔는데, 여기에도 일부 자금을 집행해야 한다. 사실상 손실을 메우고 착수금 주는 정도에만 1조원이 소진되는 셈이다.

      현대상선은 고강도 자구노력과 용선료 인하로 겨우 살아남았으나 향후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진해운 파산 여파가 길어지며 화주들은 물론 선사들의 신뢰도를 회복하기도 쉽지 않다. 화물 적치율은 상당 부분 회복했으나 다른 선사가 맡지 않는 저수익 화물이 많다는 평가다. 3분기 흑자 전환을 점쳤던 유창근 사장도 시기를 뒤로 물리는 분위기다.

      현대상선 회생을 위한 다양한 안들이 거론 또는 검토는 되고 있다.

      해양진흥공사가 선박을 보유하고 현대상선이 빌려 쓰는 방안이 있다. 정부 신용도가 받침이 되기 때문에 위험도가 낮다. 선박금융을 일으키는 데도 용이하다. 그러나 현대상선의 위험이 곧바로 정부로 전이될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현대상선을 대신할 회사를 세우는 방법도 거론된다. 새 회사에 정부와 해양진흥공사, 조선사, 해운사 등이 투자해서 선박을 조달하고 이를 현대상선에 빌려주는 식이다. 장기적으론 현대상선의 좋은 자산을 넘겨 받고, 현대상선엔 안 좋은 자산만 남겨 소멸시킬 수도 있다.

      이 모두 현대상선이 자체적으로 선박금융을 일으키기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들이다. 다만 정부가 확실한 노선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어딘가로는 확실하게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데 미봉책만 내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해운업계에서는 이번 지원을 놓고  ‘1등 선사로 키우기엔 부족하지만 먹고 살 정도는 된다’라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라고 여긴다.

      현대상선은 2016년에 향후 지급할 용선료 약 2조5000억원을 조정해 일부는 출자전환하고 일부는 장기채권으로 바꿨다. 그러나 여전히 남아 있는 고가 용선계약이 적자의 주요 원인이란 평가가 나온다.

      현 상태로는 가까운 시일 안에 흑자전환을 기대할 수 없다. 정부는 남은 계약을 어찌할 방도가 없다고 본다. 결국 손실이 누적될 때마다 찔끔찔끔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회사 내부에선 이도 저도 아닌 방식에 피로를 호소하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럴 바에야 극단적이지만 차라리 법원의 힘을 빌리는 것이 나을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또 한번의 충격파가 불가피하지만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도 답이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란 것이다. 빠르게 재무상태를 개선하는 편이 자금 지원 효과를 극대화하고 화주들의 신뢰를 찾는데 유리할 수 있다. 주력 사업 차이는 있지만 팬오션처럼 회생절차를 거쳐 빠르게 영업력을 회복한 사례도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현대상선의 가장 큰 문제는 고가 용선계약인데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조정할 방법이 없다”며 “프리패키지드플랜(P플랜)을 활용하면 수 개월만에 악성 계약을 정리해 미래 결손을 없앨 수 있기 때문에 고려할 만 하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가 결단을 내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나 남은 대형 컨테이너 선사까지 위험에 빠뜨렸다는 비판을 감내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일자리 정부’가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지금처럼 다소간의 자금 부담을 감내하고 후폭풍을 피하려 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정부 관계자는 “해운업은 중장기적인 예측이 매우 어려운 산업이기 때문에 다양한 가능성을 두고 현대상선 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P플랜에 대해선 전혀 논의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