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 시장에 떠넘긴 '혁신투자'...BDC, 제2의 코스닥벤처펀드 우려
입력 2018.11.16 07:00|수정 2018.11.20 16:55
    '고위험' 투자, 정부가 일반투자자에게 '정책'으로 권장?
    증권사·운용사, 비상장기업 투자·운용·컨설팅 역량 부족
    벤처기업 투자회수 시장도 좁아…정책 믿은 투자자 손실 우려
    • 정부가 혁신·벤처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겠다며 내놓은 '비상장기업 투자전문회사'(BDC) 도입 방안이 벌써부터 금융시장의 걱정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현실을 무시한 탁상공론식 정책의 또 다른 사례라는 평가다.

      도입 6개월만에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은 '공모 코스닥 벤처펀드'처럼, 결국 정책을 믿고 상품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들만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초 정부-여당간 당정협의 과정에서 자본시장 혁신과제의 일환으로 BDC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BDC는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과 유사한 특수목적회사로, 공모 상장 후 비상장기업에 모집한 자금을 투자하는 걸 목적으로 삼는다.

      정부를 이를 통해 비상장 혁신·벤처기업에 신규 자금이 투입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전히 비상장 혁신·벤처기업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일반투자자들도 높은 진입장벽으로 인해 비상장 기업 투자가 쉽지 않은만큼 BDC를 통해 둘을 이어주겠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미국이 지난 1980년 투자회사법을 개정해 도입한 BDC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현재 미국에는 96개 BDC가 운영되고 있으며, 이들의 총 자산은 900억달러(약 100조원)에 이른다. 미국의 BDC 역시 비상장기업 혹은 시가총액 2억5000만달러(약 2800억원) 미만 상장 중소기업에만 투자할 수 있다.

      문제는 정부가 도입을 고려중인 BDC가 국내 금융시장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BDC를 도입하며, 증권사나 자산운용사를 발기인(스폰서)으로 참여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스팩 도입 때처럼 자본력과 투자·운용 라이선스를 가진 금융회사가 주도해 BDC라는 상품을 국내 자본시장에 안착시키겠다는 복안으로 분석된다.

      복수의 전문가들은 증권사와 운용사를 통한 BDC 도입이 정부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라고 지적한다.

      본고장인 미국에서 BDC는 사실상 '종합 투자·컨설팅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성장 잠재력이 뛰어난 비상장사를 발굴해 투자를 집행하는 것은 물론, 투자를 회수(exit)할 때까지 동거동락하며 인력과 기술을 지원하는 등 책임을 진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미국에서 BDC 운용이란 필요한 인력을 알선해주기도 하고 마케팅·홍보를 대행하거나 직접 판매하는 것까지 지원하는 종합 비즈니스"라며 "특히 운용사의 경우 비상장기업 발굴·투자·컨설팅을 전담하는 조직을 아예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현실화 가능성이 크게 낮다"고 말했다.

      그나마 증권사는 비상장기업 영업을 전담하는 기업공개(IPO) 부서와 연계해 구상해볼 수 있다. 그러나 비상장기업과 계약을 맺은 후 추후 상장을 주관하는 작업과, 비상장기업에 투자 후 이를 회수해 BDC의 수익률을 만드는 작업은 전혀 별개의 사업이라는 지적이다.

      한 대형증권사 IPO 담당 임원은 "IPO부서는 비상장기업 대상 네트워킹, 코넥스 기업 공시대행, 스팩 합병 컨설팅 업무 등을 담당하고 있는데, 비상장회사 투자 펀드 운용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며 "BDC 도입 가능성에 대해서 전혀 검토해본바 없다"고 말했다.

      비상장기업 투자 전문가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벤처캐피탈(VC)업계는 현재 정부가 발표한 도입안에서 배제돼있다. BDC 제도의 도입 취지 자체가 'VC에 쏠린 비상장사 자금조달 통로 다변화'인 까닭이다.

      한 VC 관계자는 "지난해 금융투자협회가 주도해 정부에 건의한 자본시장 청사진 중 하나를 정부가 받아들인 모양새"라며 "정부는 새 정책, 증권사는 새 먹거리가 필요한 상황에서 큰 고민 없이 '그럴싸한 제도'를 서둘러 발표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시장의 특성도 다소 차이가 있다. 미국의 BDC는 주로 인수합병(M&A) 시장에서 투자를 회수하고, 이 수익을 BDC 주주들에게 배당한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 등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미국 벤처기업의 투자 회수 방법 중 M&A를 통한 회수가 89%에 달했다. IPO는 물론, 세컨더리마켓도 활성화돼있다.

      반면 한국은 같은 해 단 3%만이 M&A를 통해 자금을 회수할 수 있었다. IPO 비중이 37%로 미국(6%)은 물론, 유럽(7%) 대비 압도적으로 높았다.

      IPO는 일부 경우를 제외하면 기업이 양적·질적 요건을 충족해야 하며, 상장까지 시간도 오래 필요하다. 2016년 기준 국내 벤처기업이 투자를 받은 후 상장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13.1년에 달했다. 코넥스나 K-OTC 등 제3시장을 통한 세컨더리마켓도 여전히 활성화가 요원하다.

      투자회수를 진행하지 못하면 BDC는 수익을 낼 수 없다. 투자자들의 자금이 '대책없이' 묶일 수도 있는 것이다. BDC는 상장돼있기 때문에 언제든 주식을 팔 수 있지만, 수익 기대가 떨어지면 주가도 떨어져 손실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상장 BDC인 메인스트리트캐피탈·프로스펙트캐피탈의 경우 매달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배당한다. 지난해 기준 이들이 투자자들에게 지급한 배당의 연 수익률은 메인이 6.0%, 프로스펙트가 11.2%였다. M&A를 통한 빠른 회수와 포트폴리오 교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분석이다.

      전형적인 고위험 고수익 상품인 BDC를 공모 시장에 내놓는 데 대한 저항도 상당하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일반적인 BDC는 '공정가치를 주관적으로 측정하며, 포트폴리오에서 갑작스럽고 빠르게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투자자들에게 고지한다. BDC는 유동성이 늘어나고 M&A가 활성화하는 경기 확장기엔 시장 평균 대비 고수익을 낼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 유동성이 얼어붙으며 쉽게 자본 부족 상태에 빠질 수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지난 2016년 5월 미국 BDC 시장이 과열되자 '일부 BDC의 채무불이행 위험이 증가했다'며 투자 주의를 환기하는 레포트를 내기도 했다.

      한 중소형 운용사 운용역은 "국내 자본시장의 한계로 인해 한국의 BDC는 미국처럼 매월 수익을 배당하는 상품으로 자리매김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개인투자자의 자금을 초고위험 상품에 직접 투자하도록 만들겠다는 발상 자체가 이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