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 숙원사업, 현대차는 GBC 건립을 포기할 수 있을까
입력 2018.11.21 07:00|수정 2018.11.22 09:32
    끊임없이 제기되는 GBC 부지 매각설
    공기 길어지며 손실액은 불어나는데 어닝쇼크 지속
    살 곳도 없고 팔아도 '손해' …사업실패 자인하는 꼴
    "당장 팔진 못할 것", 정부 압박용 카드 평가도
    • 현대자동차그룹이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통합사옥(글로벌비즈니스센터; 이하 GBC)의 연내 착공은 사실상 무산됐다. 정부의 승인이 여러 차례 연기되는 동안 현대차그룹은 기회비용을 포함해 수 천 억원대의 손실을 입었다.

      삼성동 부지를 10조원 넘게 주고 매입할 당시와 사업환경은 크게 달라졌고, 완성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으며 실적 또한 곤두박질 쳤다. 현대차그룹 본원의 사업과 기업가치를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최악의 상황에선 GBC 사업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이란 이야기까지 돈다.

      ◇ 인수 당시도 비싼값, 가격 낮춰도 '2~3조원+α' 손해

      2014년 현대차가 옛 한국전력공사 부지를 인수할 당시 금액은 10조5500억원. 전체면적(7만9342㎡)을 고려한 평당 인수금액은 1억3300만원 선이었다. 현대차가 부지를 인수할 당시 공시지가는 1㎡당 1950만원이었다. 현대차의 부지 인수 이후 해당 지역 인근의 공시지가는 꾸준히 상승했고, 해당 부지의 올해 공시지가는 4000만원까지 치솟았다. 인근 부동산의 실제 거래금액은 이보다 더 높게 책정되고는 있지만 현대차의 1㎡당 거래금액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한다.

      현대차가 현 시점에서 GBC 건립을 포기해 부지를 외부에 매각할 경우, 인수할 당시 제값을 받기란 어렵다는 평가가 유력하다.

      10조원이 넘는 현금을 지출할 여력이 있는 기업이 사실상 없을 뿐 아니라 차입을 통해 자금을 마련해 부지를 인수한다 한들 규제에 발이 묶인 상황에서 원활한 사업추진을 보장받기도 어렵다. 재계 맏형 뻘인 현대차의 대관(對官) 능력으로도 풀지 못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인수가격에 크게 못 미친 7~8조원에 판다고 해서 현대차의 손해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사업추진에 매년 약 1000억원 이상의 비용이 투입됐고, 10조원이 넘는 자금을 4년 가까이 부동산에 묶어놓았던 점을 고려한다면, 현대차의 손해는 단순히 '10조5500억원-재매각 가격'이 아니라 훨씬 웃돌 것이란 전망이다.

      인근지역의 지가상승은 사실상 현대차의 초고층 빌딩 건립 이후 지역 개발에 대한 기대감에 기댄 것이지만, 현대차가 발을 뺀다면 상황이 달라질 여지도 크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당시 현대차가 써낸 가격은 산술적으로 계산하기는 어렵다"며 "현대차가 단순히 투자대비 효용가치를 따져 인수에 나섰다기 보단 상징적인 의미에 큰 비중을 뒀던 거래이기 때문에 재매각은 사실상 어렵다고 본다"고 했다.

      ◇ 재매각 추진?…  '숙원사업 실패' 자인하는 꼴

      현대차의 GBC 건립은 단순한 통합사옥 건립이란 취지, 그 이상이다. 단일 건으로는 그룹의 설립이래 가장 큰 규모의 투자였고, 정몽구 회장의 사업보국(事業報國)의 명목아래 진행된 숙원사업이었다.

      현대차가 삼성동 부지 인수를 발표했을 당시, 하루 만에 그룹계열사 시가총액이 8조원이 증발했을 정도로 외국인을 비롯한 투자자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현대차는 통합 사옥을 얻었지만, 반대급부로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투자자들은 실망감을 나타냈지만, 현대차의 GBC 건립 의지는 매우 강했다.

      당시만 해도 현대차가 10조5000억원, 공시지가 대비 10배에 가까운 금액을 시원하게 베팅하며 정부에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탓에 사업 추진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전망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다만 정권교체와 더불어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정책이 시행되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고, 현대차는 마지막 정부 승인(수도권정비위원회)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수차례 고배를 마셔야 했다.

      첫 삽도 뜨지 못한 채 4년이란 세월이 지나는 동안, 잘나가던 현대차의 실적은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다. 한국과 중국 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THAAD)를 둘러싼 갈등은 심화했고, 제 1시장인 중국의 판매는 바닥을 쳤다. 정치적인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도 중국 시장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미국이 수입산 자동차와 부품에 대한 관세부과 정책을 고수하면서 현대차는 이중고(二重苦)에 빠졌다.

      4%대를 유지하던 영업이익률은 2%가 고착화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올 3분기 또다시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투자자들은 불안감은 증폭했다. 국제 신용평가사를 비롯한 신용평가 기관들은 현대차의 신용등급 전망을 일제히 낮추기 시작했다. 현재와 같은 분기실적이 1~2차례 지속하면 트리플A(AAA)의 신용등급을 유지하긴 어려울 듯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당장 현금이 부족한 상황은 아니다. 다만 실적부진이 지속해 현금 창출력이 떨어지면 현재의 재무여력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미래차 시장 선점을 위한 기술개발과 추가적인 대규모 M&A를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GBC 부지 매각을 추진한다면 사실상 현대차가 그동안의 전략적 실패를 자인하는 꼴이 될 것이란 설명이다.

      현대차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 GBC 건립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명하복(上命下服)의 문화가 고착화한 현대차의 특성상 회장이 직접 추진한 사업을 접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며 "손해가 쌓여가고 추후 비용이 더 들더라도 현대차의 근간을 흔들 정도가 아닌 이상, 회장의 재가를 받아 직접 사업을 접게 할 인사도 없는게 사실이다"고 했다.

      ◇ 현대건설과의 불협화음?…정부 압박용 카드?

      GBC 부지 매각설이 자꾸 제기되는 이유는 향후 수익성에 대한 의문 때문이란 의견도 있다. 또한 시공을 맡은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의 손실이 계속 늘어가는 상황에서 최근 일부 태스크포스(TF) 인력이 원대복귀 한 것도 'GBC 회의론'에 힘을 보탰다.

      GBC는 정부의 승인만 받으면 언제든 착공에 돌입할 수 있다. 하루빨리 착공에 돌입하는 것이 시공사들이 조금이나마 손실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착공 지연에 따른 시공사의 손실액은 연 1000억원가량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현대차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현대차 입장에선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사업이지만 수주를 받은 시공사 입장에서는 공기가 길어지면서 손실액이 커져 '이럴거면 굳이 사업을 진행할 필요가 있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기존 계획했던 공사비 2조5000억원에 추가적인 비용이 계속 투입이 되면 개발 후 수익성도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에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매각설이 자꾸 제기되는 상황이 현대차 입장에선 정부를 압박하는 카드로 쓰일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최악의 경우 현대차가 GBC를 포기할 경우 세금을 비롯해 기부채납을 약속 받은 서울시의 손실도 무시할 수 없다.

      IB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가 이 같은 상황에 묵인하는 것은 사실상 정부에 빨리 허가를 내달라는 시그널로 해석할 수도 있다"며 "당장 매각에 추진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이지만 앞으로 수차례 승인이 미뤄지거나, 사업 계획을 또 수정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면 궁지에 몰리는 현대차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확언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