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공론 정책에 신뢰 거둔 금융시장...'이상'만 있고 '현장'이 없다
입력 2018.11.22 07:00|수정 2018.11.23 09:46
    대기업 옥죄려는 '금융 쇄신' 정책, 용두사미 꼴
    코스닥 활성화로 피해자 양산…KRX300은 찬밥신세
    카드업 조여 일자리 줄이고 금리 눌러 저신용자 내몰아
    • 집권 3년차를 향해 가는 현 정부의 금융정책에 대한 시장의 불만이 가중되고 있다. 이상(理想)에 치우친 나머지 현실을 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영향에 대해서는 별 고민없이 당위만 가지고 탁상공론식으로 정책을 입안하다보니 용두사미식으로 끝나거나,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 정부 출범 시점부터 예상된 시나리오라는 지적이 많다. 지난 대통령선거 공약집에서 금융정책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했다. 큰 방향만 열거하는 수준이었다. 대통령이 잘 알지 못하고, 큰 관심도 없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할 통로도 애매해 정책이 겉돌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현 정부의 금융정책의 얼개는 금융부문 쇄신, 생산적 금융, 포용적 금융, 금융산업 경쟁 촉진 등 크게 네 가지 부문으로 나뉜다. 지난 2년간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영역별 혁신 정책이 속속 도입됐지만, 실질적으로 '개선'이 있는 분야는 경쟁 촉진 하나 뿐이라는 게 복수 전문가들의 평가다.

      '금융부문 쇄신'과 관련한 현 정부의 핵심 정책인 금융그룹 통합감독 방안은 갈수록 힘이 빠지는 모양새다. 도입 초기부터 삼성과 미래에셋 등 일부 그룹의 '군기'를 잡기 위한 옥상옥(屋上屋) 규제라는 비판이 많았던 제도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7월 모범규준을 정식 도입하고 이달까지 주요 7개 복합금융그룹에 대한 현장점검을 진행했다. 계획대로라면 연내 금융그룹 통합감독법의 입법 절차가 진행돼야 했지만,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업 업종별로 이미 빡빡한 자본규제가 존재함에도, 이를 다시 상위에서 하나로 묶어 또 다른 규제를 가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동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평가다. 시뮬레이션 결과 규제 대상 그룹 중 자본적정성이 당장 문제가 되는 그룹도 없었다. 일부 대기업을 길들이기 위한, '규제를 위한 규제'라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 범위를 확대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일부 대기업 최대주주를 '타깃'으로 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지난 7월 대통령 직속 기구인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철회를 권고하며 또 다른 용두사미 정책이 됐다. 규제 범위가 과도하게 넓고 도입에 따른 영향에 대한 분석이 미흡하다는 이유였다.

      '생산적 금융' 정책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대표 정책인 코스닥 활성화 방안은 증시엔 큰 영향을 주지 못한채 피해자만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의욕적으로 만든 새 통합지수 KRX300은 일부 상장지수펀드(ETF) 상품에서나 쓰이는 실정이다. 국민연금조차 KRX300을 벤치마크 지수로 도입하지 않고 있다. 투자업계에서는 코스피200과 차별성이 떨어지고, 벤치마크 지수 대체에 비용 부담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모 코스닥벤처펀드는 출시 6개월만에 사실상 생명력이 다했다. 10월 폭락장에서 평균 20%의 손실을 내며 자금이 순유출되기 시작했다. 변동성이 큰 코스닥 시장에서, 그것도 고위험군인 벤처기업에 일반투자자의 투자를 독려하며 예상된 결과였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위는 오히려 혁신·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물꼬를 더 트겠다며 비상장기업 투자전문회사(BDC) 정책을 들고 나왔다.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 처럼 공모로 자금을 조달해 상장한 기업이 비상장 벤처기업에 투자를 집행하고, 이를 일반투자자들이 주식처럼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같은 이름의 미국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인데, 국내 실정에는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벌써부터 나온다. 스폰서로 나서야할 증권사나 운용사의 비상장 기업 투자 및 관리 역량이 검증되지 않은데다, 벤처기업 인수합병(M&A) 시장도 작아 투자 회수가 쉽지 않을거라는 지적이다. 국내 벤처기업 투자 자금은 상당수 기업공개(IPO)로 회수되는데, 2016년 기준 투자에서 상장까지 걸리는 평균 기간은 13.1년으로 집계됐다.

    • '포용적 금융' 정책의 핵심인 소상공인 카드수수료 인하정책은 카드업계를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다. 올해 들어 3분기까지 7개 전업계 카드사의 순이익 합계는 1조28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5% 줄어들었다. 금융당국은 내년에도 추가 수수료 인하를 예고하고 있다.

      카드사들은 잇따라 구조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현대카드가 최대 400명 규모의 희망퇴직 검토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신호탄으로 한계에 몰린 카드사들이 앞다퉈 일자리를 줄일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2010년 이후 최저 수준인 금융산업 부가가치 비중과 취업자 비중이 더 낮아질 거란 평가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정책 역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금리는 대출자의 신용에 따른 비용인데, 이를 인위적으로 누르면 저신용자는 밀려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상위 20개 저축은행에서 신규 신용대출을 받은 신용등급 7~10등급의 저신용자 수는 지난해 상반기 대비 20.5% 줄었다. 같은 기간 같은 저신용 등급의 대부업 신규 대출자 수도 22.7% 감소했다. 이들 중 일부는 불법사금융 시장으로 유입됐을 거란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반도체를 포함해 제조업 경쟁력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인 금융업을 육성해도 모자랄 판에 자꾸 찬물을 끼얹는 정책이 나오고 있다"며 "현 정부의 금융정책 중 시장을 제대로 읽은 건 부동산 신탁사 추가 인가 하나 뿐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