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IPO 시장...기업은 고민 커지고 투자자는 '로또' 베팅
입력 2018.11.26 07:00|수정 2018.11.27 09:28
    10월 이후 공모주, 편차 크고 예상 어려워
    고 or 스톱? 발행사 고민 커져…4곳은 결국 철회
    폭락장서도 일부 공모주 100% 수익…투기성 커져
    •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 시장은 처음입니다. 수요예측 결과도 예상하기 어렵고 상장 후 주가 추이는 더더욱 감 잡기가 힘드네요. 외부 변수에 휘둘리다보니 발행사에 상장 절차를 계속 진행하자고 강하게 얘기하기도 어렵습니다." (한 대형증권사 기업공개 담당 실무자)

      기업공개(IPO) 시장이 4분기 들어 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증시가 급락과 반등을 반복하는 가운데 투심(投心)이 갈팡질팡대며 공모 결과를 예측하기가 어려워졌다.

      기업들도 시험에 들었다. 상장을 강행할지, 미룰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자주 몰리고 있다. 이 와중에도 일부 공모주는 시초가가 확정공모가 대비 2배 수준으로 형성되며 '로또 공모주'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20일 인베스트조선이 10월 이후 국내 증시에서 진행된 상장 공모주 수요예측 결과를 전수 조사한 결과, 30개 기업 중 절반에 달하는 15개 기업의 확정공모가가 공모희망가 밴드 최하단 혹은 그 이하로 나왔다. 이 중 4개 기업은 상장을 철회했다.

      반면 확정공모가가 밴드 최상단 혹은 그 이상으로 정해진 기업도 11곳이나 됐다. 이 중 에스퓨얼셀, 로보티즈 등 4개 기업은 상장 첫날 시초가가 확정공모가의 2배 수준으로 정해졌다. 밴드 내에서 안정적으로 공모가를 확정한 기업은 4개 기업에 불과했다.

      한 증권사 임원급 관계자는 "밴드는 큰 의미가 없고 그때그때 시장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 한 쪽으로 투심이 쏠리는 극단적인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며 "IPO 시장은 보통 일정한 추세가 있고 그 흐름에 따라 예측도 이뤄지는데, 지금은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상장 여부를 확정해야 하는 기업들은 큰 고민에 빠졌다. 특히 수요예측 흥행에 실패한 주요 기업들은 변동성이 심한 장세에서 기대 이하의 공모가를 받아들고도 상장을 감행할 지 여부를 두고 주관사와 마찰을 빚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CGV베트남, KMH신라레저, 드림텍, 프라코는 철회를 택했다. CGV베트남의 경우 공모가 고평가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자존심을 구겨가며 헐값에 상장하지 않겠다는 CJ그룹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베트남법인의 성장성을 감안하면 내년 재공모에 나섰을 때 더 좋은 가치를 받을 수 있겠다는 전망도 판단의 근거가 됐다. 지난 9월 중순 상장 예심을 통과한 CJV베트남은 내년 3월 중순까지만 상장을 완료하면 된다. 내년 초 한 차례 더 상장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공모희망가 밴드 이하의 가격을 받아들고도 상장을 강행한 기업도 있다. 아시아나IDT, 나우IB캐피탈, 아주IB투자가 대표적이다.

      아시아나IDT는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일단 상장 후 주가가 상승하는 그림을 만들어가는 게 좋겠다는 주관사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모기업인 아시아나항공에 현금이 필요한데다, 계열사 상장을 통해 사실상의 자산재평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3분기 말까지 아시아나IDT 지분 100%의 가치를 장부가인 230억원으로 반영해왔다. 공모 후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아시아나IDT 지분 76%의 시장 가치는 공모가 기준 1270억원을 훌쩍 뛰어오른다.

      아주IB투자 역시 내부적으로 수요예측 이후 공모 철회를 검토했다가, 모기업인 아주산업과 주관사의 설득에 상장 절차를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기존에 상장한 벤처캐피탈들이 공모가 고평가에 시달리다 상장 후 주가가 급락한 사례에 비추어볼때, 욕심을 낼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증시 혼란 속 공모주의 투기성은 더욱 커졌다는 지적이다. 10월 폭락장에서도 일부 소수 공모주가 상장 이후 100% 이상의 수익을 기록하면서다. 이렇다보니 공모주 눈치보기는 더욱 심해졌고, 눈치보기와 단타가 판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중견 운용사 공모주펀드 운용역은 "밴드 하단 이하로 공모가가 결정됐음에도 시초가는 갑자기 30% 이상 급등하더니, 곧바로 급락해 현 주가는 공모가를 밑도는 회사도 있다"며 "증시 자체가 외부변수에 휘둘리고 있긴 하지만 지금 IPO 시장이 건강한 시장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