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SI업체 상장 러시…왜 이제서야?
입력 2018.11.27 07:00|수정 2018.11.29 14:32
    지난해까진 고작 3곳…올해 2곳에 내년 최대 5곳 상장 채비
    생산성 향상 '열쇠'로 떠올라…올해 FAANG 투자 영향도
    • 대기업 계열 시스템통합(SI)업체의 기업공개(IPO)가 줄을 잇고 있다. SI업체 상장이 화두가 됐던 2010년 초반엔 큰 움직임이 없던 SI계열사들이, 지금은 먼저 증권사의 문을 두드리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IT부문이 그룹의 수익성과 생산성을 높일 핵심 화두로 등장하며 SI계열사들의 덩치를 키울 유인이 생겼다는 분석이다. 올해 미국 나스닥에서 기술주 주가가 급등하며 새 투자 트렌드를 만든 것도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다.

      2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롯데정보통신·아시아나IDT등 올해에만 대기업 SI계열사 두 곳이 상장을 완료했고, 내년엔 3곳에서 최대 5곳의 SI계열사가 상장할 예정이다. 지난해까지 상장한 대기업 SI계열사가 신세계I&C, 옛 SK C&C, 삼성SDS 단 세 곳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장 러시'라고 할 만하다는 평가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 현대오토에버가 22일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하며 내년 상반기 상장 준비를 시작했고, 한화그룹 계열 한화시스템은 최근 NH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씨티를 상장 주관사로 선정했다. 현대그룹 계열 현대무벡스(옛 현대유엔아이)도 계열 내 합병 절차를 마치고 이르면 연내 상장예심을 청구할 예정이다.

      LG그룹 계열 LG CNS의 장외 거래가도 꿈틀대고 있다. 지난해 연말까지만 해도 주당 2만5000원선에서 움직임이 없던 LG CNS 장외 거래가는 롯데정보통신이 상장을 본격화한 올 상반기 한때 3만3000원까지 뛰었다. 하반기들어 아시아나IDT 상장은 물론, 다른 대기업 SI계열사 상장 준비 소식이 잇따라 들려오자 10월 한때 52주 최고가인 5만4500원까지 거래가가 오르기도 했다.

      SI계열사의 상장을 바라보는 그룹의 눈이 바뀌었다는 게 복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내부 시스템 발주나 정보 보호 업무를 주로 담당하는 '백 오피스' 개념에서 미래 핵심 사업을 선도하는 전략 사업부로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 제조업·유통업의 생산성이 한계에 이른 상황에서 인공지능(AI)·빅데이터·자율화가 돌파구로 떠오른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SI계열사 매출처가 그룹 내부거래로 치우친 상황에서 현 정부가 공정거래위원회에 힘을 실어준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강화로 SI계열사가 그룹 매출 비중을 줄이며 지배구조를 양성화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여기에 신규 기술 개발 및 응용을 위한 자금 조달과 규모·영역 확장까지 생각하면 IPO가 최선의 해답이 된 것이다.

      한 증권사 IPO 담당 임원은 "SK C&C나 삼성SDS가 상장을 준비하며 SI업체 상장이 이슈가 됐을 때에도 대부분 대기업들은 지배구조와 관련된 해당 그룹만의 이슈라는 시각이 강했다"며 "지금은 시장의 분위기가 어떤지, 기업가치를 어느정도로 받을 수 있을지 먼저 문의하는 경우도 생겼다"고 말했다.

      올해 내내 미국 나스닥에서 이른바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이 각광받으며 기술주의 시대를 연 것도 주목할만한 점이라는 지적이다. 기술주 투자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기업들의 확장 욕구와 투자자들의 투자 욕구가 맞아 떨어지며 SI계열사들이 큰 부담 없이 상장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평가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중소업체가 난립한 상황에서 시대의 변화를 따라갈 수 있는 소프트웨어 기술 개발은 결국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 SI계열사나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내 블록체인 기술도 결국 삼성SDS가 가장 앞서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SI계열사들의 상장 러시가 결과적으론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SI업체는 개발자와 기술에 투자하기 때문에 제조업처럼 공모 자금 조달·투자 확대가 곧바로 매출로 연결되지 않는다. 경쟁력을 어떻게,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지, 혹은 확보해 나갈지 점검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상반기 상장을 진행한 롯데정보통신 역시 공모 과정에서 이 같은 업종의 특성을 투자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렸다. 당시 롯데정보통신은 설명자료 및 증권신고서를 통해 "IT산업의 특성상 제조물품처럼 출시 후 바로 경제적 효과가 발생한다고 전망하기 어렵다"며 "(공모 자금으로 투자할) 시스템과 사업은 초기 단계라 이로 인한 매출 추정액을 신뢰성 있게 산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삼성SDS 역시 상장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분에 대한 관심으로 주가가 폭등했다가, 이 부회장이 지분 일부를 매각하고 삼성전자로의 합병설이 잦아들며 다시 주가가 급락했다. 성장성이 뛰어난 것으로 여겨지는 IT업종임에도 불구, 상장 직후인 2015~2016년에는 매출액 증가율·이익 증가율이 한 자릿 수에 머물기도 했다.

      한 연기금 주식운용 담당자는 "투자자들의 기대감에 힘입어 SI업체들이 잇따라 상장했다가 기대 이하의 실적을 내며 주가가 하락하는 패턴이 반복되면 시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며 "특정 업종의 상장 러시는 투자자들에게 일종의 편견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