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증권 호사다마?…임원 이탈ㆍ위험 베팅에 증권가 우려 솔솔
입력 2018.11.27 07:00|수정 2018.11.28 10:03
    최고 실적ㆍ보너스에도 조직 이탈
    '내부 조직에 문제있나' 업계 관심
    인사적체ㆍ특정임원에게 쏠린 권한 논란
    오랜 성공에 취해 리스크 관리 능력 줄었다 언급도
    • 가장 성공적인 한국식 투자은행(IB) 모델로 꼽히는 한국투자증권이지만 최근 증권가 사이에서는 오히려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표면상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고액보수를 받던 인재가 회사를 떠나고 있다. 단순히 일부 임원 문제로 폄하하기에는 ▲새 임원이 배출되기 어려운 인사적체 ▲특정임원에 권한이 치우친 의사결정 구조라는 고질적인 내부 문제가 원인이라는 증권업계의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최근 12년간 최고경영자를 역임해온 유상호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키고, 정일문 부사장을 새 대표이사로 내정한 것은 인사적체에 대한 회사 나름의 고민의 결과로 추정된다. 일단 변화의 물꼬를 트긴 했지만, 누적된 적체와 불만을 완전히 해소하려면 시간이 다소 걸릴 거라는 평가다.

      여기에 업무적으로도 위험한 투자를 회피하는 '민감도'가 떨어졌다는 평가도 있다. 다년간 고수익을 누리다보니 성공에 취해 리스크 헤지에 무던해졌다는 언급들이다.

      한국증권은 올해 3분기까지 4100억여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지난해 기록한 사상 최대 순이익 5235억원을 넘을 기세다. 지난 2012~2015년까지만 해도 평균 2000억원대에 머물렀던 연간 순이익 규모가 두 배 수준으로 레벨업했다.

      부동산금융을 중심으로 한 기업금융(IB) 부문의 호조에 재테크계의 유행을 선도하는 자산관리(WM) 부문의 상품 전략, 트레이딩 부문의 호실적이 맞물렸다. 대형사 중 위탁매매(브로커리지) 수익 비중은 가장 낮다.

      균형있는 수익 포트폴리오는 타 증권사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다. 동시에 20억원이 넘는 보너스를 받는 임원과 직원까지 공개되면서 화제가 늘어났다.

      그러나 최근 핵심 일부 임원이 갑작스레 경쟁사로 이직을 선언하자 증권업계에서는 "한국증권에 무슨 내부사정이 있느냐"에 관심이 모였다. 그간 한국증권은 내부 로열티가 높은 조직으로 평가받았고, 능력있는 임원이 경쟁사로 이직한 사례도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는 한국증권의 고착화된 임원구조를 공통원인으로 꼽는다. 조직운영의 안정성을 마련했지만 동시에 이탈자가 발생할 정도로 독(毒)이 됐다는 평가다.

      한국증권은 지난 수년간 김남구 부회장-유상호 사장-정일문ㆍ김성환 부사장으로 고착된 최상위 임원 구조를 유지해왔다. 2014년부터 이번 승진 인사 직전까지 임원 현황을 보면 일부 직급변동을 제외하고는 전무급인 본부장과 부사장 등의 이동이 거의 없다. 특히 일부 임원은 보직을 독식하다시피 할 정도다. <아래 표 참조>

    • 좋게 평가하면 그만큼 조직이 안정적으로 운영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반대로는 실력있는 직원들이 상무 혹은 전무 이상의 타이틀을 달기 쉽지 않다는 의미도 된다.

      가장 자주 거론되는 임원은 김성환 부사장으로, 기획·전략·기업금융을 총괄하며 11년째 임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런 후계구도(?)가 이미 짜여있다보니 권한이 특정 임원에게 몰리고 집중됐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한 대형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김성환 부사장에게 너무 일찍, 너무 많은 권한을 주다 보니 조직에 김 부사장을 따르는 사람과 불만이 있는 사람이 공존하고 있다"며 "고위 임원의 이탈 과정은 이런 내부의 정황이 아주 관계없지는 않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한국증권에는 특정 임원과 그를 둘러싼 임원들이 이른바 십상시(十常侍)처럼 권한을 휘두른다는 언급이 증권사들 사이에서는 파다하다"라고 언급했다.

      이번에 물러난 유상호 사장도 10년 넘게 전문경영인으로 활동, 대외평판은 뛰어나지만 투자부문에서 내부적인 신뢰도는 높지 않다는 언급도 있다. 정작 실질 결정권자는 따로 있다는 평가 때문이다.

      오너의 임원 발탁 과정이 문제가 됐다는 사례도 언급되고 있다.

      과거 한국증권에 재직했던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는 "인사 적체도 그렇고 오너 기업이다보니 특정 인물이 오너가 뽑아 갑자기 발탁되는 경우가 있어 임직원 불만이 꾸준히 쌓여왔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증권 내부 및 외부 관계자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그간 한국증권 내부에서는 송상엽 전무가 김남구 부회장 라인으로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송 전무는 실질적인 권한을 지닌 김성환 부사장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는 법인본부 상무를 맡다가 계열사를 거쳐 지난해 12월 인도네시아 법인 단장으로 발령받았다.

      게다가 회사 실적은 좋지만 내부보상은 상대적으로 박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내부적으로 기대감이 커졌지만, 실제로 지급된 수준은 평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래에셋으로 이적한 스타플레이어 김성락 전 본부장도 사실은 연말 보너스가 매년 줄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상황이니 전체 수익 상당부분을 책임지며 오너보다 더 많은 보너스를 받는 인사조차도 조직을 떠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4~5년간 큰 실패없이 '성공가도'를 달려오다보니 리스크를 보는 감각이 무뎌진 게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다른 증권사들이 모두 투자심의위원회에 상정조차 하지 않은 웅진그룹의 코웨이 인수에 무려 1조3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하면서 나온 지적이다.

      다른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조건, 수익성, 안정성 등을 고려했을 때 코웨이 인수금융 주선을 검토조차 말아야 한다고 봤다"며 "아무리 한국투자증권이라고 해도 물량을 셀다운(기관 재매각)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물론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투자스킴이 있을수도 있지만 현재로선 전혀 찾아보기 힘들다"며 "제대로 된 리스크 관리가 되는 회사라면 자기자본 4조에서 특정 투자에 1조3000억원을 베팅하는 일은 없다"라고 지적했다. "한국투자증권이 큰 실패 없이 오랜 기간 리스크 테이킹(위험 부담)을 통한 고수익에 익숙해지다보니 벌어진 일 같다"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