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너무 늦은 이웅렬 코오롱 회장의 퇴진
입력 2018.11.30 07:00|수정 2018.12.04 10:16
    • 이웅렬 코오롱 회장이 28일 돌연 경영 퇴진을 선언했다. 이날 열린 사내 행사 말미에 연단에 올라선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덕분에 특별하게 살아왔지만, 그동안 금수저를 물고 있느라 이가 다 금이 간 듯하다”고 말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금수저를 내려 놓은 것은 아니다. 이 회장은 그룹 핵심 계열사를 지배하는 ㈜코오롱 지분의 50.4%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이 회장이 물러난다고 해서 그룹에 당장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내년도 그룹 인사에선 혁신을 위한 외부인사 영입 대신 내부 승진을 통한 안정을 택했다. 코오롱의 사업구조를 살펴보면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매출 기준으로 코오롱인더스트리로 대표되는 화학•패션•소재가 48%, 코오롱글로벌을 위시한 건설•부동산•무역이 40%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상 20년간 큰 변화가 없다. 상대적으로 '혁신'을 경험할만한 사업들은 아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안정적인 실적을 보여주지만 사업 전반의 하락세 기조가 보이고 있다. 화학 분야는 거시경제 상황에 연동돼 있고, 시장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패션업은 국내 의류업계 전반의 부진에 대비해야 한다. 그룹 사업위험을 높였던 건설업은 재무구조 개선 노력을 지속했지만 그만큼 존재감은 약해졌다. 잘 나가던 자동차판매업은 BMW 화재 관련 리콜 사태로 판매 부진 또는 ASP(평균판매단가) 하락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성장동력이라는 바이오•제약 부문은 세계 최초 골관절염 세포유전자 치료제인 '인보사'라는 결과물을 내기도 했지만 매출 비중은 2%대에 불과하다. 사업특성상 앞으로 들어갈 막대한 자금과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삼성, SK가 뛰어든 이 업계에서 코오롱이 ‘롱런’할 수 있을지 예단하기 어렵다.

      한 때 코오롱은 IT, 금융, 기계 등 손을 안 댄 사업이 없을 정도로 여러 기회의 끈을 쥐고 있었다. 그런데 이웅렬 회장이 수장을 맡은 20여년간 코오롱은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매각 일변도의 모습을 보여줬다. 새 기회를 찾기 위한 혁신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경영 무대에 올라서자마자 외환위기를 경험한 이웅렬 회장은 26개 계열사를 15개로 줄이고 부채비율을 대폭 낮추는 구조조정을 진행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화낙, 코오롱메트생명보험, 코오롱전자를 매각했다. 그룹의 미래라고 불렀던 신세기통신 지분도 전량 매각했다.

      2000년대 들어선 코오롱캐피탈(현 하나캐피탈)의 지분 15%를 하나은행에 넘기고 위탁경영을 맡겼다. 그 과정에서 코오롱캐피탈은 단일 금융회사로는 사상 최대 규모의 횡령 사건을 일으켰다. 이를 보전해 줄 수밖에 없었던 코오롱은 하나은행 지분을 매각했고, 한 때 보람은행 3대주주였던 코오롱은 금융업에서 손을 떼야 했다.

      신사업 진출은 큰 재미를 못봤다. 1999년 코오롱마트를 설립해 유통업에 진출했지만 2005년에 GS그룹에 매각했다. 15년간 육성했던 올레드 사업은 자본잠식에 빠져 2015년 사업 철수를 결정해야 했다. 2007년 환경시설관리공단을 인수해 도전했던 수(水)처리 사업도 사업이 지지부진하자 10년만에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이웅렬 회장은 취임하면서부터 ‘원앤온리(One & Only)’를 경영방침으로 정하고 유망상품, 기술, 지역을 선점해 질적인 측면과 효율성을 추구하고자 했다. 성과도 있었다. 슈퍼 섬유, 꿈의 신소재라 불리는 아라미드 섬유를 자체 개발했다. 하지만 세계적 화학•섬유 기업인 듀폰이 특허 침해 문제로 소송을 시작했고 2011년 미국에서 진행된 1심에서 패소해 9억1990만달러 배상과 제품 생산 및 판매 금지 조치를 받을 뻔 했다. 이후 5년간 항소를 통해 2억7500만달러의 합의금을 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외환위기 직후 각 그룹들은 선택과 집중을 해야했다. 그렇지만 그 이후 이른바 상위권으로 도약한 경쟁 그룹들은 새로운 사업을 찾는데 집중했고, 찾으면 그곳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20년전 각자의 선택은 이제 넘볼 수 없는 격차를 만들었다. 코오롱은 1997년만 해도 재계 순위 20위였지만 현재는 30위 바깥으로 밀려났다.

      특히 코오롱의 한국화낙과 신세기통신 매각은 지금도 회자한다. 한국화낙은 당시 국내 산업용로봇 시장 점유율 70%를 차지한, 외환위기 직후에도 그룹 내에서 흑자를 내는 몇 안되는 기업 중 하나였다. 신세기통신은 SK텔레콤에 합병돼 그룹의 중추가 됐다. 한국화낙, 신세기통신 지분 매각을 기점으로 코오롱은 섬유, 무역, 건설을 주력으로 삼아 그룹 구조를 바꿔 나가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4차 산업혁명을 앞둔 지금 산업용 로봇과 통신 기술은 가장 중요한 사업이 됐다.

      그룹을 살리기 위해 잘 하는 것에 더 집중하겠다는 이 회장의 ‘뚝심과 인내’는 변화의 속도를 체감하지 못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이번 퇴진에 대해 한 편에선 용단이라는 평가를 내리면서도 다른 한 편에선 너무 늦은 퇴진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코오롱은 이번에 주요 계열사 사장단 협의체인 ‘원앤온리(One & Only) 위원회’를 신설했다. SK그룹의 수펙스(SUPEX) 추구협의회와 닮았다. 이 회장의 아들인 이규호 상무는 그룹 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하는 동시에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아 본격적인 경영수업에 들어갔다. 이는 아버지는 경영에서 손을 뗀 채 전문경영인들에게 경영을 맡기고 아들은 경영수업 중인 현대중공업과 닮았다. 금수저를 내려 놓았다기 보다는 물려줬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이웅렬 회장은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그룹 임직원들에게 서신을 보냈다. "‘청년 이웅렬'로 돌아가 새로 창업의 길을 가겠다"며 ‘새로운 사업은 새로운 세대가 맡아야 한다’던 부친 고(故) 이동찬 회장의 말을 언급하기도 했다. 언뜻 이 회장의 돌연 퇴진은 새로움이 엿보이지만, 복심들의 컨트롤타워와 아들의 경영 수업은 재벌의 전형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