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조달 진퇴양난 이랜드, 1兆 집착이 부른 참사?
입력 2018.12.11 07:00|수정 2018.12.12 09:36
    연내 1조 펀딩 고집하다 좌초…투자금 회수 잇따라
    무리한 자금조달 둔 잡음도…"직언 불가능한 구조?"
    엥커에쿼티, 20% 후반 수익 거둘 듯
    • 이랜드월드가 올해도 자본 확충을 둔 외통수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전망이다. 기존 투자금의 만기가 잇따라 돌아오지만 새로운 투자자 확보를 위한 유인책은 모두 소진한 상황이다. 대외적으로 자회사 이랜드리테일 기업공개(IPO) 의사를 보이지만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자본시장에선 무리한 조건을 감수하고 ‘1조원’ 조달을 내 건 목표가 무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성수 회장의 영향력 탓에 임직원의 직언(直言)이 불가능한 그룹의 고질적 한계가 언급된다.

      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앵쿼에쿼티파트너스는 이 달 중 콜옵션을 행사해 기존 투자금 2000억원을 회수할 예정이다. 올해 메리츠금융그룹의 3000억원 규모 상환우선주(CPS)를 갚은 데 이어 자금유출을 앞두며 회사의 자본 규모는 축소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이랜드월드의 연결기준 부채비율도 다시 전년 수준(198%)에 육박하게 됐다.

      여기에 더해 메리츠금융으로부터 조달한 4000억원 규모 사모사채의 상환 압박도 더욱 커지고 있다. 5년 만기 연장에 동의했지만 금리만 9%에 달하는 데다, 올해 이후 부대 조건이 점차 악화하는 일종의 스텝업(Step-up)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더해 메리츠금융그룹은 일부 담보 매각을 통한 부분상환을 불허하고 전체 상환만 가능한 점을 계약 조건에 명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룹차원의 상환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랜드측은 새 투자자 모집을 위해 연말에도 분주한 모습이다. 베인캐피탈크레딧 펀드 등 글로벌 PEF들과 협상이 무산된 데 이어 현재 미래에셋대우와 협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접점을 찾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랜드월드의 자체 담보여력이 대부분 소진됐다보니 투자자들은 주력자회사 이랜드리테일의 지급보증 등 직‧간접적 지원을 요구하고 있지만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이랜드리테일이 큐리어스·프렉시스 컨소시엄에 프리IPO를 유치하면서 기존투자자들의 동의 없이는 이랜드월드로의 자금유출이 불가능한 구조기 때문이다.

      유일한 해법은 투자자와 약정한 이랜드리테일 IPO를 예정대로 추진해 자본확충에 나서는 방법이다. 하지만 유통업 전반에 대한 투자심리를 고려할 때 이랜드그룹 측이 희망한 평가를 받긴 어려울 것이란 분위기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롯데‧신세계 등 주요 유통사들이 앞다퉈 조단위 금액을 투자해 온라인 사업 강화에 힘쓰고 있는 상황에서 이랜드가 틈새를 어떻게 공략할진 미지수”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외통수에 내몰린 상황이다. 자본시장에선 이랜드월드가 자초한 것이란 박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 대대적으로 “1조원”을 내걸고 무리한 자금조달에 나선 점부터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시장 상황을 먼저 살피기 보다 오너일가가 직접 보유한 이랜드월드로 직접 유입될 금액에 집착한 것 아니냐는 우려다. 금융업계에선 당시 모던하우스 매각으로 시급한 불은 껐던 만큼, 차라리 계열사 차원의 재무부담을 완화하는 데 집중하며 그룹 전체의 재무안정화에 무게를 뒀어야 했다는 설명이다.

      이미 알려졌듯 거래는 삐걱거렸다. 이랜드월드는 1조원 펀딩을 강행하며 후순위 에쿼티(Equity) 투자자로 엥커파트너스를 초청했다. 세전 보장수익률만 연 26%에 달하는 데다 주요자산에 대한 담보까지 제공됐다보니 “인수금융(Loan)과 다른게 무엇이냐”는 의구심이 나왔다. 비교적 수월한 선순위 투자자 모집에 실패하며 5000억원 조달에 그쳤고, 최근까지 상환 문제를 두고 그룹의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고질적인 그룹 내 의사결정 구조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메리츠금융그룹의 CPS를 상환한 이후에도 차입을 이어간 점도 의문을 샀다. 그룹 외부 관계자들은 “무리한 조건을 연장하느니 차라리 원점에서 시작하자”는 의견이 대다수였지만 그룹 차원에선 강행 의사를 고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박성수 회장 1인이 그룹에 미치는 영향력이 여전히 합리적 의사결정을 가로막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과거 이랜드리테일 프리IPO를 전담했던 이랜드월드 내 자금팀 인사들은 모두 퇴사하거나 그룹내 비주력 계열사로 적을 옮겨야 했다. 티니위니 매각을 주도한 M&A 인사도 그룹을 떠나야 했다. 회장의 의도를 거스른 인사들이 그룹을 떠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는 이유다.

      그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번 이랜드월드 자금조달 뿐 아니라 모던하우스‧중국 티니위니 매각‧점포 유동화‧외식사업부 매각 등 과거 모든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랜드는 ‘1조원’ 이상은 받겠다는 걸 시장에 먼저 공표하고 딜을 진행했고 항상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받아왔다”며 “외부에서 보기엔 시장에 대한 설명이 아닌 회장에 대한 말로 보였던 점도 사실”이라고 말했다.